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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Aug 05. 2022

03. 레이크 루이스 여행기

#2 등산을 합니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레이크 호수는 에메랄드 색을 띠며 캐나다 로키 산맥 여행지에서 가장 유명하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부지런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호수 입구 앞 주차장은 관광버스로 북새통이었다.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하이킹 시작.


 우리는 ‘플레인 오브 더 식스 글래이셔 트레킹 Plain of the Six Glaciers Trekking’을 따라 올라가서 ‘아그네스 호수 & 빅 비하이브 트레킹 Agnes Lake & Big Beehives Trekking’을 따라 하산했다.


 페어몬트 샤또 레이크 루이스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호숫가를 따라가다 보면 ‘플레인 오브 더 식스 글레이셜 트레일’ 시작 표지판을 찾을 수 있다. 이 길은 고도 588m, 길이 14.6km이며 난이도 ‘중’에 해당된다는데 우리에게는 최소 ‘중상’이었다. 하이킹, 워킹, 러닝까지도 가능하다는데 이 길을 어떻게 달리는 건지, 걷기만 해도 숨이 가빠오는데 말이다.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적극 추천한다. 말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다만 우리처럼 남의 다리 빌리지 않고 올라가야 한다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말 똥을 조심하자. 산 중턱에서 빙하로 추정되는 아주 큰 얼음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니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우리의 대화를 채운 건 ‘왜 하이킹을 시작했을까’하는 후회 섞인 한숨뿐. 겨우 정상에 올라 숨 고르기를 하는데 등산객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수박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이 큰 수박을 여기까지 들고 온 것도 대단한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그에게 따뜻한 인류애를 느꼈다. 그가 준 수박은 무척 달았고 시원했다.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_플레인 오브 더 식스 글래이셔 트레킹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

 하이킹은 늘 후회로 시작해서 자연의 고마움으로 끝나는 것 같다. 하이킹이 끝나고 마주한 호수는 유민상의 어록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네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만큼 아름다운 호수였다. 하늘색 물감을 풀어놓은 호수는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양옆으로 초록 나무들이 펼쳐져 있으니 윈도우 배경 화면이 따로 없었다.


 하산은 그나마 조금 나았다. ‘아그네스 호수 & 빅 비하이브 트레일’은 고도 647m이며 루프 형태로 길이는 10.3km이다. 우리는 아그네스 호수 한 바퀴는 포기하고 호수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했다. 물이 시원해서 흘린 땀을 식히기에 좋았다. 난이도는 중간이라고 하는데 역시나 노놉. 전혀요. 하이킹을 여행할 때만 하는 우리에게는 너무 버거웠다고요. 이 트레킹이 가장 강렬한 추억이 된 이유는 큰 가지뿔이 있는 사슴 한 마리를 100m 정도 되는 거리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가 걷고 있는 트레일에서. 떡하니 서서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는데 이 모든 상황이 동화 같았다. 짧은 눈 맞춤을 뒤로 사슴은 제 갈 길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본 것이 실존하는 동물인지, 상상의 동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야생 동물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는 이렇게나 흔한 일인 줄은 몰랐다. 심지어 차가 다니는 도로 옆을 사슴 무리가 지나갔다. 작고 귀여운 꽃사슴 아니고 근육 빵빵한 말 만한 사슴이랄까? 400kg가 넘는 ‘무스 Moose’에, 엄청나게 큰 뿔 때문에 머리가 무거울 것 같은 ‘엘크 Elk’까지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녔다. 그들의 덩치에 잔뜩 쫄아 차 안에서 구경을 했다. 대체로 야생 동물들은 제 갈 길 가거나 풀을 뜯어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만 가끔 사람에게 돌격하기도 한다니 차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사슴 무리가 저만치 가고 나서야 차에서 내렸다.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를 향해 방향을 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심장이 곤두박질치는데 사슴들은 굉장히 여유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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