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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Aug 08. 2022

00. 미국으로 가는 길

밤 12시 토론토에서 뉴욕행 야간 버스를 탔다.

우등 버스 아니고 일반 버스.

뒤로 시원하게 젖혀지지 않는 쿠션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한 의자.

이대로 몸이 굳을 것 같았다.




이뽈)

 내 옆에 앉은 미국 언니의 몸 1/3이 자꾸 내 좌석을 침범했다. 몸이 불편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인내심을 박박 긁는 여정이겠구나.


 메신저 내용까지 검사한다는 말이 돌아다니는 까다로움의 최고봉, 미국 이미그레이션에 도착했다. 미국 비자 승인서, 여권 사본, 뉴욕 숙소 예약증, 미국 여행 일정표, 아웃 티켓까지 꼼꼼히 준비했고 한껏 부처의 미소를 머금고 심사장으로 향했다. 입국심사관은 미국을 한 달 이상 여행하는 것에 놀라더니 우리의 다음 일정을 물었다. 이후 5개월간 남미 여행을 한다고 했더니 그녀의 대답 ‘Follow me. (나를 따라와)’ ‘헉! 왜지? 너무 사실대로 말했나?’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녀를 따라 한쪽 구석으로 갔더니 조용히 무언갈 적은 종이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여행 일정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특히 보유한 자금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말라.’

 

그녀는 단순히 세계여행을 하는 우리를 신기해했던 것이었고 혹여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 되어 우리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따로 불렀던 것이다.


 ‘괜히 쫄았네. 깐깐한 언니가 아니라 따뜻한 언니였어.’

 



삐래)

 미국 버스라 좌석 공간에 여유가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무릎이 거의 앞 좌석 등받이에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176cm의 내 키가 미국인 평균 키와 비교했을 때 크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묘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다리를 편하게 뻗지 못한 채 웅크리는 자세로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니 밀폐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이 점차 심해져 갔다.


 ‘Why’로 시작해서 ‘Why’로 끝난다는 악명 높은 미국의 입국 심사. 입 한번 잘 못 뗐다가는 여행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토론토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었다. 새벽 어스름 무렵 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 안 불이 켜졌다. 입국심사 시간이 왔다.


 버스에서 비몽사몽 내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 하다 정신 차려보니 이뽈은 이미 저 멀리 가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멀어지자 더욱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제발 깐깐한 사람이 걸리지 않길. 이뽈과 루나 언니가 입국 수속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고 여기서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핸드폰에 적힌 예상 질문과 답변을 보며 막판 벼락 치기를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타성에 젖은 출입국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나를 힐끔 쳐다보며 ‘미국에 왜 왔어?’라고 물었다. 예상 질문이 나오니 쿵쾅대던 가슴이 천천히 진정되었고 침착하게 여행이 목적이라고 대답했다. 다음 목적지가 유럽이라며 준비했던 영국행 E-티켓을 보여주니 군말 없이 내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어주었다. 입국 심사실을 등지고 나오는 길에 해냈다는 안도감에 그동안 바짝 긴장했던 몸이 이완되면서 다리가 풀릴 뻔했다. 이뽈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1분 전까지만 해도 잔뜩 쫄아놓곤, 서로 입국심사 썰을 풀면서 별거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도착 예정시간은 오전 11시. 현실은 여전히 고속도로를 달라는 중. 휴게소에 서더니 운전기사가 본인 근무시간이 지났다며 다른 기사가 올 거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떠났다. ‘뭐지? 이 신박한 근로기준법 준수는?’

우린 그렇게 오후 2시, 토론토를 떠난 지 14시간 만에 맨해튼에 도착했다.

미국 뉴욕_루스벨트 아일랜드 트램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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