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짜리 자유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온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내 방은 그대로다. 초등학생 때 읽던 만화 조선왕조실록부터 고등학교 때 낸 문집까지. 책상이며 침대며, 내가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은 집이지만 엄마는 내 방에 절대 손대지 않았다. 오래된 아파트의 작은 방. 엄마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냈지만, 그렇게 가만히 두어 준 덕분에 방에 들어가는 그 순간 어린 시절 많은 기억들이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3평짜리 자유.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 활동을 했다. 문예부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길 따분한 친구들만 모여있는, 고리타분하고 식상한 동아리 같지만 그 시절 나름 전통 있는 학교 3대 동아리 중 하나였다(사람들은 뭐 이런 3 대니 5 대니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냉면에 떡볶이도 3대 맛집이 있는 정도니…). 그 이름하야 청우회(靑友會). 훌륭한 선배들이 쌓아 놓은 명성에 한참 못 미쳤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였다. 문집을 내고 학교 축제에 한 축을 맡아 연극제도 했다 (내가 동아리 회장도 하고 연극 주인공도 했다는 게 함정이다). 그때 내가 쓴 시의 제목이 3평짜리 자유.
작지만, 창문 너머 바다가 보이고 공항에 다가가는 비행기가 보이는 내 방에서 펼치는 나만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인데, S는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 제목을 듣고선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무려 15년 전 내 작품을, 아니 작품의 제목을 말이다. 어찌 됐건 그때의 소중한 기억을 이렇게도 선명하게 잘 보존해주신 엄마에게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항상 약간의 소음으로 존재감을 알리며 바다 위를 날던 비행기가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게 하고, 책장에 꽂혀 있던 오래된 문집이 책을 써보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겁도 없이 실행에 옮기게 했으니. 그렇게 때론 변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변화를 이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