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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Aug 29. 2020

"알바라니요?"

퇴사라는  말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유형

“알바라니요?!”

김 과장의 질문에 나는 발끈했다. 그는 이직, 대학원, 유학도 아닌 알바라는 선택지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이깨나 먹었는데 이 조직에서 나가서 뭐먹고 살래? 라는 어투였다. 이 시스템이 단단히 나를 보호해주고 있으며 여기서 벗어나면 내세울 간판도 없는 연약한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는 그만둘 것이라는 말에 반응하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너는 반드시 불행할 것이다’라는 유형이었다.


그 좋은 월급을 포기하면서 내가 하려는 게 고작 알바겠는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돈 벌 수 있다고! 이 조직에서 벗어나면 내가 뭐라도 못할까 봐? 스타트업? 유튜버? 작가?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침 기상과 동시에 욕부터 튀어나오는 출근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 것이고 독립적인 성향에 맞는 일을 할 거라고!!


그렇다.. 자뻑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김 과장이 이어서 물었다.

“그럼 뭐할 건데?”

“관세사 할 거예요. 관세사!”

나는 자뻑에 취해 있었지만 본래 생각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답하지는 못했다.


“관세사?”

“네! 이미 수강해야 할 강의들 다 결제했고, 내년까지 꼭 시험에 붙어서 내 개인 관세사무소 하나를 차릴 겁니다.”


무서웠던 걸까. 김 과장 앞에서 나는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말을 늘어놓지 않는 법인데 말이다. 되고 싶지도 않은 관세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이 회사에서 했던 업무와 연관되면서 ‘사’ 자를 가진 직업을 택했던 것이었다.


나는 퇴사의 순간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퇴사가 맞는 선택이라고 증명을 해야 된다는 듯이 나 자신을 방어했다. 무계획이었지만 무책임하게 보이고 싶진 않았던 걸까. 나를 딱하게 쳐다보는 시선에는 더욱더 당당하게 대답하고 부러워하는 시선에는 우쭐대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준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길래 퇴사까지 하냐며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팀 정 차장은 자신이 수습해줄 테니 퇴사라는 말은 도로 집어넣으라며 진심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나를 아껴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그럴수록 하루라도 이곳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은 이 회사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겠다고 말을 하고 정확히 3일 뒤에 나는 사원증을 반납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매콤한 닭발이 당겼다. 배달앱을 켜고 국물 닭발 작은 사이즈를 시켰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딱 마친 타이밍에 닭발이 도착했다. 어제 사둔 막걸리 한 병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캡사이신 맛을 중화시켜줄 달달한 막걸리. 그리고 나의 최애 예능, 아는 형님을 틀었다. 이수근의 드립력에 감탄하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한 병은 금세 비워졌다. 편의점을 다녀와 말아? 아니지. 오늘은 참자. 내일 아침엔 알바를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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