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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Sep 06. 2020

♬ 오늘 밤 매일 밤 자꾸만 니 생각만

나는 그대의 Diva diva di di di diva!

BTS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빌보드 싱글 1위라니! BTS의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접하며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아이돌에게 큰 관심이 없는 내게도 아이돌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아픈(?) 추억이 있었다.


사단 행정병으로 한창 군생활을 하던 중, 한 걸그룹이 위문 공연을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걸그룹에 영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군인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는 군부대에 TV에 나오던 누군가가 와서 공연을 한다니 마음이 들뜨긴 마찬가지였다.


군대에서 걸그룹은 병사들의 사기진작에 절대적인 존재다. 매일 아침, 기상 나팔소리에 맞춰 눈을 뜨면 후임병들은 점등과 동시에 아침햇살이 병장들의 눈빛을 덮치지 않는 선까지 커튼을 걷고, 재빨리 tv속 음악채널을 틀어 선임병들의 아침을 가능한 한 상쾌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 상쾌함에 분위기를 더해주는 것이 바로 걸그룹의 신나는 노래였다.


때문에 매일의 시작은 걸그룹과 함께였고, 가요 프로그램을 하는 날이면 다 같이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애프터스쿨이라는 걸그룹이 위문공연을 온 다니 모두가 들떠 있었다. 자신의 근무가 그날만큼은 비껴가길 모두가 기도했으나 모든 이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다행히 난 아니었지만).  


드디어 행사 당일.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가지 않는 시간을 돌려보려 애쓰고 있었다. 마치 신병휴가를 처음 나가는 듯이 A급 군복을 꺼내 입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선후임들의 모습이 소풍을 처음 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때, 내 인생에 도움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되지 않는 동기 녀석이 까만 뿔테안경을 코 끝에 걸친 채로 다가왔다.


“나 몸이 너무 아파. 오늘 상황근무(저녁시간부터 아침 일과 시작시간까지 밤새 지휘통제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근무다)인데 좀 바꿔주라. 응?”


콧방귀가 나왔다.

“야 장난하냐? 오늘 위문공연 있는 날인데. 어이가 없네 ㅋㅋ 꾀병 부리지 말고 가서 근무서 임마!”


시원하게 면박을 줬으나 안 그래도 조그마한 녀석이 축 처진 어깨에 면도도 안 한 모습으로 아침밥도 거르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좀 약해졌다. 점심 먹으러 내려왔더니 점심도 거른다. 하… 이놈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오후에 사무실로 찾아갔더니 수염이 그새 더 길었다. 아주 죽을상이다.


“야 진짜 아픈가 보네. 바꿔 줄게 임마. 냉동이나 사라”


근무는 고됐다. 장병들의 함성소리 사이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상황장교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어찌 이런 날 근무냐며 혀를 찼고, 나는 밤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각 부대에서 걸려오는 보고 전화에 뜨거워진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컵라면 하나에 허기를 달래며 밤을 새우고 내려왔더니 온몸이 녹초다. 딱 점심시간까지 잠을 청할 수 있기에 서둘러 모포 속으로 몸을 넣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 밤 매일 밤 자꾸만 니 생각만 나는!”

“그대의 Diva diva di di di diva!!!”


!하고 생활관 문이 열림과 동시에 걸걸한 목소리의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시간이 됐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하나 싶어(속으로는 어떤 놈이냐 외치고 싶지만 선임일 수도 있기에) 겨우 실눈을 떴떠니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작은 체구로 방정맞은 스텝을 밟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 군생활에 도움이라고는 1도 안 되는 녀석의 모습이.


정신을 차렸다. 아니 차려야 했다. 그러니까 어제 동기라는 저 녀석이, 몸이 아프다며 아침, 점심을 다 거르며 근무를 바꿔 달라 했던 저 녀석이, 어제 그 축제의 장에 다녀왔다는 것인지 빠르게 파악해야 했다. 후임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어제 저 놈도 갔다 왔냐?”

“예! 어제 생활관 인원 모두 갔었습니다!”

“그러니까 저기 저 C도 갔었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머리 끝으로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입맛이 싹 가셨다. 이번엔 내가 점심을 걸렀다.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오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C를 기다렸다.


“야 잘 놀았냐?”

”응 어제 유이가 와~, 아! 아니… 어제 아파서… 그게 아니고… 미안해…”


C는 냉큼 나를 PX로 모셨다. 안 그래도 운동부족으로 굽은 라운드 숄더를 더 동그랗게 말아 냉동실 안으로 팔을 뻗더니 내가 평소 먹던 것들을 죄다 가져와 렌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어제 그 아파 보이던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은 언제 없어졌는지 아주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한 번 내가 속았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봉지 안에 물까지 잘 채워 먹기 좋게 익은 물만두를 하나 집으며 말했다.


“이걸로 퉁치려고 하지 마라. 이건 평생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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