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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Oct 27. 2020

딴짓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대학생 때였다. 우연히, 고향 친구와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G의 전공은 영화과였다. 중앙도서관 앞에서 영화 촬영하던 모습, 밤새 편집을 마치고 소파에 누워 잠을 자던 모습. 다음 날엔 대낮부터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가던 모습 등. 크! 이런 게 대학교 낭만이지. 나는 G를 보며 덩달아 살짝 취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공과대학에서 예술문화대학으로 매일 G를 만나러 찾아갔다.


 어느 날, G가 말했다.

“야, 영화 촬영 있는데 같이 해볼래?”

 무슨 심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심 연기 쪽?을 바라고 있었다. (제가 관종기가 좀 있는 편이라)

“음? 나 단역으로 써주는 거야?”

 단역은 아니었다. G는 촬영 보조 스태프를 나에게 부탁했다.


 첫 촬영장은 학교 근처에 있는 집이었다. 촬영 준비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조명, 붐 마이크는 자기 자리를 찾아갔고 연출자 B는 모든 것들이 준비되었는지 체크했다. B의 ‘레디’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어서, ‘액션’ 사인과 함께 시작되는 카메라의 ‘롤’. 배우들은 연습했던 대사와 감정들을 그 공간에 불어넣고 있었다.


 카메라의 구도와 움직임, 배우들의 대사, 전체적인 스토리의 전개 등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진지했다는 것이다. 촬영장에 오기 전 어린애들 같이 떠들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발산하는 에너지들이 한 곳에 모이고 있었다. 멋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고리타분한 강의실에 틀어박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풀어가고 엮어내는 일을 말이다. 연출자 B는 중간중간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한번 갈게요.’를 연신 반복했다. B는 정답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완성에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만들어진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교실에서 강의실로, 강의실에서 사무실로의 이동. 그 공간들은 내가 꾸밀 필요도 없이, 많은 규칙들로 채워져 있었다. 고단했던 이동들이었다. 이제는 그 길이 정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정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단지, 대학교 때 품었던 막연한 생각이 브런치에 글도 쓰게 했고, 책을 내보자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방금, G한테서 전화 왔다. 나한테 영화 보조 스태프를 권유했던 그 녀석이다. 자기 이야기하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양반은 아닌 모양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내가 이렇게 된 데는 G의 역할이 80프로 이상인 듯하다. 다른 일을 하게 됐다고 고마워해야 하나, 회사를 그만두게 했다고 성을 내야 하나.  곱창을 먹자고 하는데, 오랜만에 회포나 풀어 볼 생각이다. 10년 전, 같이 촬영하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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