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회사 그만둘까? 진지하게”
오늘 저녁은 스케줄이?
“어떻게? 오늘 뭐 있어?”
S는 글을 쓰기 위한 모임을 가질 때마다 물었다. 매주, 단 한 번을 거르지 않고 물었다. 백수에게 스케줄 따위 있을 리 만무한 걸 알면서, 내가 다니는 강의의 스케줄을 뻔히 알면서도 더 뻔뻔하게 물었다. '술'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낸 사람이 5만 원의 거금을 내기로 한 상태에서 S는 우회 도로를 찾고자 부단히 혀를 놀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도 한잔하기에 날씨가 좋다나 뭐라나.
어쨌든 S의 노력이 싫지 않은 건 그의 능구렁이 같은 눈빛과 입꼬리, 그리고 그 절묘한 목소리 톤의 조화 때문인 듯하다. 평소와 달라진, 살짝 경박해진 하이톤과 한쪽만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거기에 코끝에 걸친 안경테 뒤로 반쯤 숨은 눈빛이 더해지면 그 의도가 뻔한 불순함이 다분히 묻어나 S와의 술자리를 기대감에 차게 만든다.
“막창순대 하나랑 순대국밥 두 개요”
“아 그리고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테슬라로 주세요”
S는 첫 잔은 무조건 소맥이라며 순대국밥엔 소주만 먹는 내게 기어코 소맥을 경쾌하게 말아 건넨다. 먼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막창순대 한 접시가 나온다. 새우젓 대신, 썰어 나온 청양고추에 된장을 살짝 찍어 함께 밀어 넣는다. 막장이나 초장이 없는 것이 살짝 아쉽지만, 된장 찍은 고추도 그런대로 맛을 낸다.
어린 시절 동네잔치(그곳에서는 결혼식을 하면 돼지를 잡고 3일간 잔치를 했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지만) 때 먹던 순대는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되려 막창에 선지가 들어간, 혐오스러운 내용물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던 음식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순대에 간장을 찍어 먹었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음식에는 그렇게 먹게 된 이유가 다 있었다.
제주 순대에는 메밀가루와 다른 지역의 순대보다 많은 양의 선지가 들어간다. 메밀가루가 들어가고 선지양이 많아지면 순대가 상대적으로 퍽퍽해지는데, 새우젓이나 소금과 다르게 순대를 부드럽게 해 줄 수분기 많은 장이 필요했다. 또 제주도에서는 소금이 귀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을 간장으로 간하고 된장으로 맛을 냈다.
그렇게 나는 그 자극적이지 않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여행을 하며 만나게 된 전국의 순대들은 나를 그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부산에서 내어주는 막장이 순대의 깊은 맛을 한번 더 끄집어 내줬고 광주에서 내어주는 초장은 순대뿐만 아니라 내장에 조차 풍미를 더했다. 강원도에서 만난 오징어순대는 별미였고, 광장시장에서 친근한 아줌마 같은 아저씨가 썰어주는 막창순대는 지금도 날 그곳으로 이끈다.
그렇게 S와 나는 자주 가는 순대집에서 '간단한 회의'(술이라는 단어를 피하기 위해 그가 만들어낸 단어다)를 시작했다. 음식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해 스무디를 시키고 첫 모금을 들이켤 때마다 뒷목을 잡는 S는 뚝배기에서 아직 보글보글 끓고 있는 순댓국을 한 숟갈 입에 밀어 넣으면서도 그 뜨거움에 “호로록 하 호로록 하” 하고 혀를 굴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후 순댓국에 소주 한잔 기울이고 있는 직장인들의 테이블에 둘러 쌓인 채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회사에서 참 열심히였다. 남들이 ‘너 정말 열심히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지라도, 스스로 월급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다녔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도 미지의 곳을 찾아가 결과물을 만들어 왔고, 미지의 곳에 자원해 들어가 주어진 바 이상을 해내고자 노력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지만, S는 '주어진 바 이상'을 해내고자 하는 그의 성향과 책임감으로 인해 퇴사의 벼랑으로 내몰렸던 것 같다. 의지할 이가 아무도 없는 먼 이국땅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측은함이 밀려왔다. 통장에 매달 들어오는 나름대로 걸출한 보상도, 대기업 사원이라는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그의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보다 우선할 수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그 자리를 견디는 것 그 자체에 괴로워했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오늘도 회사에서 '주어진 바 이상'을 요구받고 그걸 완수해내고자 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고달픈 하루만큼이나 옆 테이블의 초록색 병은 빠르게 쌓여가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 업무의 책임감과 회사가 주는 중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살이 찌지 않아 고민이었던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 늘어나 애지중지 하던 정장을 다 찢어먹었고, 연일 계속되는 술자리로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링거를 맞아야 했다. 되지 않는 것도 되게 해야 한다는 영업사원의 특명 같은 것을 부여잡고 앞으로 달리기에 매진해야 했기에, 나를 돌아볼 시간은 한없이 부족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서로를 보며 알았고, 남들도 그럴 것임을 알게 됐다.
[야, 나 회사 그만둘까?]
진지하게 한창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와중에 친구 M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S와 나는 그렇게 M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해보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M 아직 회사 잘 다녀요 걱정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