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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Aug 19. 2020

10분 간의 자유

 직장인에게 화장실은 다용도 공간이다. 기본적으로는 장막힘 해소가 주 목적이지만 밀린 넷플릭스를 시청하기도 하고 내 캐릭터가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게임의 공간이기도 하다. 가끔씩 유튜브 보다가 웃음 터져서 어깨를 들썩이는 기운이 옆 칸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어제 회식 때문에 지친 몸을 휴식시키기도 한다. 가끔 눈물 흘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여기서 가끔씩 몸을 휴식시키는 유형이다. 어제의 숙취를 견뎌낼 수 있는 곳. 그런데 어느 날, 모든 화장실의 변기 커버가 사라졌다. 지원팀은 변기 커버가 부서지는 사례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원팀 동기에게 슬쩍 물어봤다. 살짝 짜증 섞인 말투로 말이다.


“야, 변기 커버 왜 없앤거야?”

동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야, 너도 거기 기대서 자냐?”

“뭔 소리여?”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지원팀 팀장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옆 칸에서 코를 고는 소리를 들었고 친히 노크해서 깨워주었다고. 그리고 옆에는 부서진 변기 커버가 놓여있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커버가 부서지는 건수가 증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커버에 등을 기대거나 커버를 덮어 놓은 채로 앉는 게 아니라면 부서질만큼 힘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가 연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말의 잦은 회식으로 나처럼 어제의 숙취를 이겨내기 위해 화장실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나보다. 가끔씩 신문지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도 발견된다고 하니…. 고백하건대, 나도 1번은 부순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한 10분을 보낼 수 있는 곳, 회사 안에 있지만 사무실에서는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곳에 나는 지금 앉아 있다. 잠겨 있는 문을 바라봤다.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런 요청은 잘 듣는 편이다. (아니지, 당연히 잘 들어야 하는 거지!)


 잠금쇠를 오른쪽으로 제껴 문을 열었다. 세면대로 다가가서 물비누를 두 번 짰다. 세면대로 다가갈 때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두 손을 박박 문지르고 거울에 비친 나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다시 또 달려봐야겠지? 그리곤 나는 균열된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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