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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Aug 21. 2020

아 왜 비가 오고 난리야

내일부터는 운동 제대로 해야지



비가 온다. 비가 내리면 모든 일에 핑계가 생긴다. 입으로는 굉장히 짜증이 난 목소리로 “아 왜 비가 오고 난리야”를 외치면서도 갖가지 일들에 핑곗거리가 생기는 이 상황이 싫지 않음을 내 몸은 알고 있는 듯하다. 이 비를 핑계로 빨래도 미루고, 운동도 미루면서, 이 비를 핑계로 막걸리 한잔 할 약속은 잘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오늘도 운동을 건너뛴다. ‘그래, 어제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은 몸도 좀 쉬게 해줘야 해. 몸에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랬잖아. 하늘이 그렇게 하라고 계시도 주시고.’ 그렇게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거친 후, 느지막이 일어나 비타민 몇 알을 챙겨 먹고는 늘어지는 기지개 한 번으로 오늘의 운동을 대신한다. 


오늘의 나의 몸은 이런 작은 습관들의 결과물이다. 덩치를 키우고 싶은데 먹어도 살이 안 찐다며, 짜증 섞인 너스레를 떨던, 지금은 꿈만 같던 대학생 시절은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이 흘러가버렸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자 계속되는 회식과 현저히 감소된 운동량으로 내 복부는 회사의 실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운동을 다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내 몸도 회사의 자산이라고, 회사는 꽤 멋진 헬스장을 갖추고 직원들의 몸 관리를 도왔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회사 내 많은 애연가들을 위해, 소변검사도 하고 간식거리도 사주며 회사는 그들의 금연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안의 나태함을 물리치고 멋진 몸을 한번 가져 보리라는 생각으로 한때 운동을 좀 다녔지만, 업무상 어쩔 수 없이 이어지는 회식과 계속되는 수면부족으로(혹은 그 핑계로) 사실 현상유지하기도 벅찼다. 미국에 건너가서는 엄청난 칼로리의 햄버거와 피자로 내장지방을 두둑이 했고, 동네 한 바퀴를 뛰다가 살이 찌면 무릎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으로의 멋진 컴백을 준비한답시고 저녁을 굶어가며 살을 빼기도 해 보았으나, 돌아온 한국은 '맛의 천국'이었다. 주변에 늦게까지 문 여는 식당 이라고는 맥도날드 밖에 없는 촌 동네에 있다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 내 마음에 고향 서울에 돌아오니 24시간 갖은 음식들이 손가락의 미세한 터치 몇 번만으로도 문 앞까지 친히 배달되어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렇게 멋진 몸과는 타협을 하고,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이따금씩 내 몸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의식과 같은 운동을 맑은 날만 골라하는 중이다. 


운동을 가려고 할 때는 홍수가 날 것처럼 쏟아지던 비가 친구들과의 술자리 약속시간이 가까워 오자 거짓말처럼 점차 잦아들었다. 그 자리에서 여자 친구와 멋진 바디 프로필을 찍겠다며 라면 한 젓가락에도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내 친구 D의 입에 밥까지 만 라면 국물과 소주 한 잔을 들이밀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비가 오든, 천둥이 치든 진짜 운동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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