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에 관하여
고등학생 때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대학에 가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빛나기만 할 미래를 꿈꾸며 지겹고도 힘든 수험 생활을 견뎌냈다.
스무 살이 되어 목표했던 대학, 목표했던 과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내게는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졌다. 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지난했던 고3 수험생활의 여파로 모든 것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내가 공부했던, 내가 꿈꿔왔던, 막연하게 그려왔던 그 모든 것들에 회의를 느꼈다.
그러고는 굉장히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고등학교 3년간 꿈꿔왔던 '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공과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내가 수학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부모님은 다소 우려를 표하셨다. 하지만 스무 살의 패기롭던 내 의지를 꺾지는 못하셨다.
갑작스러운 진로변경에 대한 어떤 목표나 계획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냥 어린 마음에 멋지고 실용적인 학문이 배워보고 싶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입학한 공대에서 역학, 코딩 언어, 화학 등을 배우며 생전 처음 재능의 한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타고나길 이과형 인재가 아니었던 반면 주변 동기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과 공부에 익숙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숫자로 표기된 정보를 이해하는데 굉장한 시간이 들었다. 때문에 동기들은 몇 시간이면 손쉽게 풀어내는 과제들을 나는 몇 날 며칠 눈물로 붙잡아야 겨우 풀 수 있었다.
효율이 나지 않으니 당연히 성적도 좋지 않았다. 2년간의 코로나로 인해 다른 경험에 대한 기회도 막혀버린 탓에 그렇게 어영부영 대학을 졸업했다.
성적이 낮긴 했지만 전공도, 학벌도 나쁘지 않으니 일단 졸업하면 인생이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대책 없었다.
1 지망이었던 대기업에 서류를 넣고 운이 좋아 최종 면접까지 가게 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생각보다 면접의 관문은 높았고 나는 미숙해도 한참 미숙한 지원자였다.
그 뒤로는 거짓말처럼 모든 회사의 서류 전형에 줄줄이 떨어졌다. 어쩌다 하나라도 얻어걸릴 법한데 나한테는 그런 요행이 통하지 않았다.
그제야 나의 안일함을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스스로의 본질적인 문제점까지 파고들며 자책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게 고민을 슬쩍 얘기해 봐도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으레 이맘때의 또래들은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들 각자의 고민과 치열함을 품고 살았다. 이 시기의 모두가 갖는 의문과 아픔에 답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 하나 얻지 못한 그 시간이 내게 잔잔한 위로가 됐던 건, 아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에서 그저 어렴풋 느낄 수 있었던 건, 나에 대한 성찰과 삶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살아보려 했던 무모함이 나의 발목을 잡지 않았나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그 누구도 대신해 답을 찾아줄 수 없는 고민이었다.
지금까지도 어떨 때는 치열하게, 어떨 때는 조금 느슨하게 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사는 것. 그 어드메에서 선택하지 못한채 헤매고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