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찾게 된 이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by BBOO

'우리 딸은 나중에 작가 하면 좋겠어'

어릴 적 나를 보며 엄마가 숱하게 해 왔던 말 중 하나다.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해 그걸 글로 끄적이기 좋아했던 나를, 엄마는 일찍이 알아봤던 것 같다.

그런 엄마의 말에 내 대답은 어땠더라.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도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아서 글만 쓰고 살기에는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과 빠르게 가까워지기 쉽지 않음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작가'라는 꿈을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으나 어렴풋이, 언젠간 글을 쓰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는 생각했다.

남몰래 컴퓨터에 자작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예뻐했던 병아리가 집에 데려온 지 이틀 만에 죽었을 땐 너무 아픈 마음에 몰래 시를 써서 서랍에 숨겨놓기도 했었다.(결국 나중에 엄마한테 들켜 우리 딸 작가시켜야 된다는 주접을 듣기는 했다.) 뛰어난 재능은 아니었으나, 나름 글쓰기로 상을 받거나 칭찬받은 적도 있었다.

그랬던 작은 아이가, 어찌 보면 생뚱맞은 공대를 선택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엔지니어를 준비하는 내내 나는 스스로를 꾸며내기 바빴다.

어려운 기술들과 기계를 척척 다룰 줄 알며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은 내가 선망하던 모습 그 자체였다. 현직자들의 의견은 많이 다를 테지만, 적어도 나의 시선으로 보는 '엔지니어'는 그랬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엔지니어로서 일하는 내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이 직무가 나와 최대한 잘 맞아 보일지, 티끌 같은 부분이라도 끄집어내 극대화하기 시작했고 점차 자기소개서 속의 '진짜 나'는 사라져 갔다.

어찌어찌 서류에서 잘 눈속임해 면접까지 간다 해도 문제였다. 수십 년을 그 업계에 몸담아온 현직자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면접장의 나는 속수무책으로 어리숙한 속내를 다 드러내고만 있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나, 꾸며낸 나, 그마저도 완벽하지 못해 번번이 서류에서부터 탈락하고야 마는 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솔직한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마침 이맘때쯤 '모순'이라는 책을 읽고 각자의 삶에 있어서 어떤 선택이 의미 있는지,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었다.

선택에 있어서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이미 너무 잘 알았다. 타인은 내 선택의 순간에 한두 마디 첨언은 할 수 있어도 선택 이후 결과에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결과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어디에 어떻게 취업할 것인지는 선택, 그 이후는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결과.

그렇다면 당장의 보상보다 장기적으로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하자 다짐했다.


일전에 어떤 콘텐츠 회사에서 단기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무료한 단순 반복 업무만 하다가 내 전공을 살려 기술 교육 분야의 스토리 보드를 작성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과정에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계속되는 서류 탈락에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전공 부적응자'라는 타이틀을 조금이나마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지식과 가치를 전달하는 사람'일 때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 말과 글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실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저 '전달자'로서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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