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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Aug 11. 2016

책으로 가득찬 세상

미녀와 야수의 벨이 부러워

나의 가장 큰 친구는 책이었다. 당연히 인간의 형상을 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게 가장 편안했던 친구는 책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도 책이 있었고, 그 풍경이 좋았다.


엄마는 늘 내게 나가서 놀고 오라고 하셨다. 유치원 가고, 학교 가고 집에 돌아오면 책 읽는 게 좋아서 방에서, 소파에서, 마루에서 책을 읽곤 했던 내가 엄마는 조금은 이상해보였던 걸까. 난 책을 한가득 끌어안고 읽는 게 훨씬 더 좋은걸. 책을 다 꺼내서 울타리를 만들고는 그 안에서 읽기도 하고, 책을 베고 누워서 읽기도 하고. 덕분에 내 시력은 낮아져갔지만, 그 때의 기억들은 행복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난 그 안에 펼쳐지는 세계들에 매료되어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경험은 7살이었나, 일본의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의 위인전을 읽을 때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의 어머니와 엄마가 똑같은 위인전 전집을 구입하게 되어서 그 친구와 누가 더 빨리 전집을 읽는지 내기를 했다. 결과는 친구의 승. 나는 다 읽지 못했다. 전쟁 영웅들의 위인전에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내가 좋아하던 위인들의 위인전은 계속, 몇 번이고 읽었다. 좋아하던 위인들에는 신사임당, 방정환, 페스탈로치, 나이팅게일, 노구치 히데요, 퀴리 부인, 유관순, 파블로 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횟수로만 따졌다면 친구랑 비길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


그리고 8번째 생일에 받았던 "소피야 어쩌면 좋으냐"라는 시리즈 3권. 말썽쟁이 소피의 천방지축 이야기였는데 금붕어를 꺼내서 소금을 치고 칼로 토막내고는 다시 어항에 집어넣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부적응자 정도의 레벨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당시에는 왜 그리 재밌었는지. 부모님이 선물로 책을 사주실 때 꼭 책의 맨 앞장에 "보라의 8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이런 식으로 메세지를 적어주곤 하셨는데, 이민오고 이사하면서 책들을 다 처분해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게 제일 한이다. 중고서점에서 어렵사리 다시 구해서 아빠에게 다시 메세지를 적어달라 했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은 기분. 아쉽다.


서점에만 가면 난 집에 갈 생각을 안했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내겐 그 곳이 천국이요 유토피아였기때문. 책으로 가득한 세상이 살고 싶어 어릴 적 꿈은 엄청나게 큰 도서관이나 서재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이었다. 상상만 해오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된 건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 아빠가 미8군에서 일하셨었기 때문에 집에는 영어로 된 디즈니 만화영화 비디오테이프가 많았다. 그 중 나의 favorite은 단연 미녀와 야수. 진실된 사랑으로 야수를 저주에서 풀려나게한다는 스토리도 매력적이었지만 가장 내 눈을 끌었던 건 바로 야수의 성에 있던 도서관. 벨에게 여기 있는 책을 다 읽어도 된다며 가렸던 눈을 풀어주는 장면에서 난 내 미래를 꿈꿨다. 책으로 가득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 지금은 그 꿈이 변화되어 저런 서재, 저런 도서관에서 프로포즈받는 꿈을 키우고 있다는 비밀...


난 아직도 꿈꾼다. 혼자 독립하게 되면 거실에 벽 하나를 통째로 책꽂이로 만들어서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야지. 결혼하면 큰 방을 서재로 만들어야지.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reading nook을 만들어야지. 책에 대한 사랑이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내게 주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만든 것의 7할은 책일지도 모른다. 7할보다 많을까...


내게 책은 아직도 마법같은 물건이다. 책과 함께 한 인생 30년, 앞으로 책과 함께 할 시간이 더욱 기대된다. 어떤 세상으로 데려가줄지, 어떤 마법을 부릴지, 어떻게 내 삶을 변화시킬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내겐 지금 이 순간이 책으로 가득찬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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