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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Dec 17. 2016

독서일기 - 12월 그 즈음

10월에 한국을 잠시 방문하게 되면서, 꾸준히 읽던 나의 독서 스케줄이 잠시 엉망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최대한 짬짬히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버스 밖의 풍경이 너무 그리웠어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어서, 또 너무 바빴던지라 그동안 읽어왔던 양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다시 돌아오고 나서는, 시차 적응에 밀린 일들에 치여서 다시 예전의 독서 스케줄로 돌아오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돌아오고 나서부터 12월 중순까지의 읽은 책들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읽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조금 더 곱씹는 독서를 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은 한결 편하다.





소설가 장강명의 에세이. 나와 결혼에 대한, 결혼식에 대한, 결혼생활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드디어 찾은 느낌이다. 에세이이기는 하나, 꼭 그들의 신혼여행에 내가 동행한 듯한 느낌을 받는 신기한 에세이집. 가독성도 높아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왠지 여름밤에 맥주 한 병 홀짝홀짝 마시면서 읽으면 끝내주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빨강머리앤에 나왔던 다이애나가 너무 예뻐보여서, 엄마께 다이애나 머리로 묶어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의 느낌과는 다르게 지금, 서른의 나이에서 읽은 빨강머리 앤은 지나친 솔직함으로 마음을 울린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삐딱하지도 않지만 친절하지도 않은, 솔직한 그대로를 지키면서 그 안에서 긍정을 찾는, 앤의 그 눈을 갖고 싶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던 그 카페가 우리 집 근처에도 있었으면.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 마법과 환타지가 버무려진, 다 알지만 그대로 속고 싶은.  마법이라고 믿었을 때 배가 되는 행복이 있는 순간이 삶에서 꼭 존재하기에.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만이 행복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어. 행복이란 대조의 게임이니까. 감정의 스펙트럼 한가운데로만 헤엄치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본질을 경험할 수 없어. 이게 우물의 교훈이야. 하늘이 광활하다는 걸 이해하려면 때로는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것."






잡지 "어라운드"를 좋아하는데, 어라운드의 칼럼니스트가 쓴 책이라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공감 100%.

사실 처음 이 책을 알게 된건 페이스북 "책 끝을 접다" 페이지에서였는데, 이 사진들때문이었다.




뭐야, 내가 완전 원하던 방이잖아! 하면서 이 책을 찾아보게 된 것이 발단. 칼럼니스트이면서, 북카페를 운영하는 작가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아서 아주 재밌게 읽었다.


"나는 그저 오늘의 할 일만 산뜻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찜찜한 기분으로, 내일을 두려워하면서 잠들고 싶지 않다. 오늘의 할 일을 말끔하게 끝낸 후 승리의 맥주를 마시고 싶다. 남은 일이라고는 침대에 얌전히 들어가 이불을 덮고 발을 뻗은 채로 잠을 드는 것 밖에 없다면, 그거야말로 오늘 나는 승리한 거 아닌가."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인가...





마지막으로, 실연의 박물관. 제주도에 있는 아라리오 박물관에서 진행된 글로벌 전시기획 "실연에 관한 박물관"에 기증되었던 82점의 전시물들에 관한 책. 팟캐스트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전시물은 아버지의 낡은 차. 버리지도 못하고 집 정원에서 낡고 있었던 그 차가 가족들의 그리움을 여실히 보여주어서 사진을 보기만 해도 뭔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슬픔을 나누며 위로를 얻는, 아름다운 전시.




내년에는 다독보다는 정독으로, 곱씹고 곱씹으면서 가슴에 새기는 독서를 해야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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