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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Jan 14. 2017

조금은 삐딱한 솔직함, 닮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by 사노 요코 

내가 생각하는 사노 요코의 이미지는 유쾌하고 대범하기까지 한 할머니가 전부였다. 전작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암 선고를 받고는 재규어를 사서 드라이브에 나서는 유쾌하고 뒤끝 없는 할머니. 


그런 사노 요코가 중년의 나이에 쓴 첫 에세이,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는 전작들과 달리 유쾌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은 더 솔직하고 개인적인, 마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었달까. 마음 속 생각을 그대로 써내려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가장 중요한 감정들만 고스란이 꺼내어 기록한다. 어렸을 때의 일들을 읽을 때는 픽 하고 웃어버리곤 했는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유학했을 때의 일들은 읽고 나서 가만히 되새겨 생각하면 마음 한 쪽이 외로움과 아픔으로 짠해오던 적도 있었다.


"사는 게 뭐라고"에서 유쾌, 통쾌하던 할머니가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조금은 치열하게 살았던 그녀의 중년의 삶이 정답이었다. 아이를 낳고서 잠시 일을 쉬었던 그 시간도 일을 하지 못해 불안했다고 하니,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암 선고조차도 무서워하지 않고 스포츠카를 사는 대범함이 되었다보다.





한번은 아래에서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상대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상대는 그 사람보다 어린지, 띄엄띄엄 변명을 하는 듯 했다. ...
"너 그렇게 살면 세상이 좁아져."
이 말만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 그 다음은 조용해졌다.
나는 '세상이 좁아진다'는 표현을 처음 들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닌 '세상'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세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나를 둘러싼 것으로 조금은 진부하고, 조금은 나를 방해하는 것이어서 걷어차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란 한 사람 한 사람 살아 있는 인간의 연결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도 '세상'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세상이 좁아진다'는 말을 듣고 '세상'이 살아있는 인간의 연결이라고 깨닫는 사람의 감성은 대체 뭐지, 감탄했다. 그래, 그렇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세상이지. 한 대목, 한 대목에서 깨닫는 바가 많은 글이다.



사노 요코의 귀여운 삽화



어느 날,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는지 무슨 특별한 날이었는지 엄마가 떡을 산더미처럼 사 왔다. 두통약같이 생긴 사카린이라는 하얀 정제를 설탕 대신 쓰던 시절, 진짜 설탕을 넣은, 밤이 아닌 진짜 찹쌀로 만든 떡은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는데, 떡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나는 배가 불러서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손을 씻는데, 나는 진심으로 흡족했다. 또 떡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너무 행복해. 지금 손을 씻는 이 순간이 행복이야. 이 행복을 언제까지나 잊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방으로 한 발 들이밀면서 나는 그 한쪽 발을 자세히 보고, 씻은 손을 천천히 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선명하게 '행복'을 자각한 것은, 일곱 살의 어느 날 떡을 배 터지게 먹었을 때였다.



일곱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행복'을 선명하게 자각하다니. 내가 처음으로 자각한 '행복'은 언제였을까. 아, 아마도 일곱 살때 크리스마스 때 처음으로 전집을 선물받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아니,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이었나, 아이스크림 엑설런트에서 금색 맛을 꺼내주실 때였을까. 아, 소꿉놀이를 하다가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치킨 모형을 우연히 발견한 날이었을까. 어렸을 때의 행복이란 참으로 소박했구나. 



정말로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43킬로그램이었던 내가 63킬로그램이 되고, 가슴은 1미터 4센티미터나 되어, 으앙 하는 아기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나는 모성애의 화신이 되었다. 내 젖을 빠는 원숭이 같은 생물은 빛나는 천사였다. 필사적으로 젖을 빠는 아들이 여든 살이 되었을 때, 그 고독을 어떻게 견딜지 생각하니 벌써 눈물이 났다. 아들을 안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좁은 단지의 세 평도 채 안 되는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어째서 우리 아들은 이렇게 귀여운지, 지나다니는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얘가 우리 아기예요, 얘가 우리 아기예요." 하고 자랑하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아이조차 그런 식으로 우연히 내게 찾아와서, 훌륭한 엄마가 되겠다는 각오도 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나는 엄마다. 



아들이 여든 살이 되었을 때 고독을 어떻게 견딜지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는 이 할머니. 훌륭한 엄마가 되겠다는 각오도 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어버린 그녀이지만, 이미 엄마가 된 순간부터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게 아닐까. 



이상하기도 하면서 귀엽기도 한 그녀의 그림



그녀의 매력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또 꾸밈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지나치게 솔직함이 부담스럽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 당당함에 나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남들에게 꺼내기 힘든 가족사라던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부럽다. 뭔가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은 쎈 언니같은 사노 요코. 암 선고 이후 재규어를 끌고 즐겁게 여생을 보낸 그녀를 닮고 싶다. 그녀의 조금은 삐딱한 솔직함,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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