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 가족이라는 단어의 힘
우리 가족은 다른 여느 가족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빠는 회사 생활에, 회식에, 술자리에 치여 집에서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엄마도 회사생활을 하셨기에 아침과 저녁에만 잠깐 보는 게 다였다. 나와 동생 역시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기에 가족끼리 함께 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때의 나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한없이 가벼웠다. 철없을 나이에 하는 생각 따위들이랄까. 아빠는 우리 집의 가장이니까 그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야한다는.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곳에 계시겠지라는. 우리 가족은 화목한 편이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만 가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빛깔은 내 마음 안에서 점점 더 옅어져갔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 느낀 점은 철저하게 가족중심적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미국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회라고들 말한다 그것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여행도 하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고 뒷마당에서 바베큐를 하고 온전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위해 한 주를 살았다고 내게는 보여졌다. 저녁이 되면 거리엔 불이 꺼지고 집에는 따뜻한 온기와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 엄마아빠의 웃음소리, 맛있는 음식의 향기로 가득찬다. 한국의 빛나던 밤거리에 익숙했던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면 할 게 없었다. 영어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도 한시간, 두시간이면 뇌가 과부하가 걸린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니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도 겁이 나서 집 안에만 있었다. 그 때는 부모님께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일자리와 사업체를 구하고 계셨을 때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나와 동생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색했다. 그리웠던걸까, 가족의 온기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부모님이 좋았다. 그리고 기뻤다. 오후부터 밤까지,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마루에 앉아 그 날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 온갖 사소한 얘기부터 옛날 추억들까지 한참을 얘기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우리 가족을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정말 가까워졌고 단단해졌다. 우리는 가족밖에 기댈 곳이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한 날, 집에 돌아갔을 때 나를 반겨줬던 부모님이, 똑같이 힘들게 학교생활을 했던 동생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힘이 되었다. 가족이 내게 힘이 되었다.
바닷가에 가서 우리 가족 네명이 손을 꼭 잡고 다짐한 적이 있다. 한국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태평양을 바라보며 우린 말했다. 행복해지자, 우리 꼭 행복해지자. 지금 이 곳이 우리에게는 너무 삭막하고 외롭고 힘들고 울고 싶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잖아. 힘들 때 이끌어주고, 지칠 때 안아주고,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주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웃자. 행복하자.
내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 우린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