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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Sep 06. 2016

위로받는다는 것

물을 무서워한다.

예전에 친구들과 같이 바닷가에 놀러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장난치며 놀다가 넘어졌는데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찰나에 같이 끌려들어가서 발을 바닥에 딛을 수 없고 손을 아무리 뻗어도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극한의 공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힘들 때마다 물을 봐야 마음이 잔잔해진다.

깊고 푸른 물, 강이나 호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고민, 내 걱정들은 잊혀지고 마음은 한없이 잔잔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돌고래와 고래를 좋아했다. 

유치원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바다는 왜"라는 책을 책등이 다 헤지고 찢어질 정도로 읽었었다.

깊은 물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살아가는 돌고래와 고래가 되고 싶었다. 

그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족관을 좋아했다. 

특히 돌고래나 고래가 있는 깊은 수족관 앞에는 몇 시간이고 서있을수 있을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꾸는 꿈에도 수족관이 항상 나왔다.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수족관에 정말 큰 고래가 있는데 그 유리에 점점 금이 가서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물이 가득 차는 꿈. 

그 꿈에서는 난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없이 자유로웠다.


보스턴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다행히 학교 근처에 찰스강이 있었다. 

프라이벳 레슨 시간에 제대로 연습해가지못한 내 자신이 실망스러울 때, 고단한 일상에 힘들 때, 가족이 너무나도 그리울 때, 아픈 사랑에 눈물지을 때 난 항상 찰스강에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일렁일렁대던 물결을 바라보며 따뜻하고 포근했던 엄마 품을 떠올렸고, 가슴 아픈 첫사랑의 상처에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울컥 나오는 날이면 찰스강은 나를 항상 그 자리에서 위로해줬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편안해졌다. 

바람 따라 물결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 속이 정리되고 불필요한 생각들이 정리됐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존재 자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준 것이다.


그게 일상이 되었고 하나의 리츄얼, 의식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위로를 주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 하나의 의식이 되었든간에 그것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물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그 방향 그대로 물결치고, 겨울이면 하얗게 얼고, 여름이면 태양에 반짝반짝 빛을 내고. 

깊이가 깊어질수록 색은 더 검어지고, 맑으면 맑을수록 모든 것을 다 내보이는 솔직함.


적어도 물 앞에서 난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

그게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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