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함께 한 전자책 목록
예전에는 무조건 종이책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전자책이 나오고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터치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할지라도 종이를 넘겨 읽는 맛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권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읽는 습관이 있어 외출할 때도 두 권에서 세 권은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 내 어깨에 심한 중압감은 물론, 고통을 주게 되어 다시 한번 슬그머니 전자책을 갸웃거리게 된 것이 3년 전쯤...
땡스기빙 핫 세일로 아마존 킨들을 득템한 후 원서는 물론, 구글플레이에서 한국 책들도 여러 권 구입해서 읽고는 했다. 킨들의 좋은 점은 예전에 썼던 글에서도 말했지만 빛이 반사되지 않는 백라이트 덕분에 자기 전 침대에서도 눈이 피로하지 않게 독서를 하다가 잠들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구입할 수 있는 한국 책들이 한정적이고 많지 않아서 종이책도 사게 되고 전자책도 사게 되는 이중 지름을 유발했었다.
그러다가 아이패드를 사게 되면서 자연스레 리디북스에 들어가게 되었고, 쿠폰에 더블 포인트에 막 투척되더니 눈 떠보니 이미 "리디캐시가 충전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스크린에 떠있었고. 역시 책과 관련된 곳을 둘러보기만 하고 나올 수는 없었다. 내가 그렇지 뭐...
그렇게 이번 2017년 여름은 아이패드와 함께 보냈다. 읽었던 책들 중 마음에 들었던 것들 위주로 짧은 리뷰.
1. 중쇄를 찍자 by 마츠다 나오코
예전부터 읽고는 싶었는데 뭔가 만화를 산다는 게 돈이 아까운 기분이 자꾸 들어서 미루고만 있다가 전자책으로 구입. 문제는 4권 이후로는 전자책이 없어서 주문을 해야 하나 계속 고민된다는 것. 가벼워 보이는 표지에 만화이긴 하지만 출판계의 진짜 사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고 또 출판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으로도 대입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꽤나 씩씩한 주인공이 맘에 들기도 했고.
2.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by 이동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배송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전자책으로 구입, 그 날 다 읽어버렸다. 역시 난 이동진빠, 빨간책방빠인가봐. 기억에 남았던 것은 책이 안 읽히면 과감히 덮으라는 것. 굳이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는 것. 맞아,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
3. 아이사와 리쿠 by 호시 요리코
리쿠야, 너는 남들에게 보여질 때만 울고는 했지. 보이지 않는 눈물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었잖아. 너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네가 난 참 안쓰러웠어. 강한 벽을 치고, 그 벽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네가 안쓰러웠다. 남들 앞에서만 울고 정작 혼자 있을 때에는 그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너를 보면서 난 뭘 떠올린 걸까. 똑같은 크기의 감정이라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있지. 너의 말처럼 어쩌면 섣부른 위로가 상대방을 오히려 상처 입히게 될까 봐, 그걸 너무 잘 알기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 나에게 위로랍시고 던진 말들이 나를 상처 입혔던 적들이 있으니까. 네가 너 자신을 마주하고 바닷가에서 울었을 때 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널 만나게 되어서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반가웠어.
(연필만으로 어두운 마루, 그 구석에서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다.)
4. 수상한 사람들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by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 단편들이라서 그런지 쑥쑥 잘 읽혔다. 이번 여름은 진짜 너무 더웠는데 그래도 선풍기 틀고 마룻바닥에 배 대고 읽어 내려가니 그래도 조금은 시원했던 듯.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헉! 소리가 몇 번 나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단편들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듯.
5.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by 박연선
강추, 강추, 강추! 연애시대 작가의 소설이라니, 그럼 당연히 재밌을 거 아닌가? 근데 시체라니... 연애시대는 재밌게 봤는데 갑자기 시체가 갑툭튀하면 어쩌라는 거지... 할머니랑 손녀가 시체를 찾는 건가? 누굴 죽인 건가? 별 생각을 다하며 책을 열었다가 이틀 만에 독파. 그냥 읽으세요, 너무 재밌습니다. 참고로 아침에 머리 말리면서 읽다가 회사 늦을 뻔했습니다. 다음 책이 엄청나게 기다려지는 몇 안 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별 다섯 개 드립니다!
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by 미카미 엔
고서점에서 벌어지는 힐링 미스터리라니 안 읽을 수가 있을까. 스토리들은 마음에 들었는데 굳이 작가가 여주인공을 만화에 나오는 미소녀같이 만들었어야 했을까...? 그래도 얻은 것은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일본 고전문학과 책들을 알게 된 것.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읽어봐야겠다.
리디북스는 쿠폰이나 딜이 많아서 종이책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지만 원클릭이라는 쉽고 편리한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내 통장에 구멍이 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그런데 종이책 구매가 줄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 이러나저러나 책의 노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