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등록을 하다가 생각한 것들
남편은 가끔 극성맞은 엄마가 된다.
드디어 끝에서 두 번째다.
영주권을 받기 위한 과정의 마지막 직전의 전 단계다.
지문등록을 하러 이민국에 갔다.
사진도 찍는다고 해서 화장까지 했다.
포틀랜드에 와서 화장을 한 건 처음이다.
첫눈이 왔다고 했는데 눈은 보지 못했다.
늦잠쟁이 우리가 일어났을 땐 녹아서 다 사라졌지만 날씨는 매서웠다.
나와 같은 처지들이 이민국 앞에 덜덜 떨며 줄 서있었다.
직원이 엄격하게 내 서류를 확인하고 나도 줄을 섰다.
‘당신들도 나만큼 긴 터널 속을 빠져나가기 직전이구나’
그런 눈인사를 나눌 여유 같은 거 없이
다들 약간 긴장된 상태였다.
그 순간 내 눈앞에 시커먼 게 자꾸 기웃거렸다.
남편이었다.
무릎 나온 츄리닝에 크록스를 신고 날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머리는 까치머리에 누가 봐도 자다가 좀 전에 일어난 사람이었다.
본인만 들어갈 수 있어서 다른 가족들은
그 앞에 내려주거나 혼자 오는 게 보통이었다.
인터뷰는 아니지만 모두가 인생의 중요한 과정을 통과하는
중요한 날이라 드레스 업하고 왔다.
그런데 내 남편은 그림자처럼 따라와서
거지 몰골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갑자기 그게 너무 웃겨서 빵 터졌다.
순간 남편이 극성맞은 엄마처럼 보였다.
어릴 적 아들사랑이 과도한 엄마 였기에
각별한 막내딸을 둔 엄마였기에
나는 늘 엄마의 사랑에 굶주렸다.
친구의 ‘극성맞은 엄마’가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일까 남편이 극성맞은 엄마가 되는 날은
어릴 때 다 소진하지 못한 어리광이 소환되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좀 부끄러웠다. 동네 바보 같았다.
다들 출근했을 평일 점심에 한량처럼 그러고 있는 남편이
제발 이러지 않았으면 했다.
무사히 내가 이민국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봐야한다고 오바하는 남편을 타일렀다.
“이민국에서 오빠를 이상하게 볼 거 같아
그냥 차에 가서 기다려 “
결혼하면 남편이 내 거가 될 거라는 착각
엄마가 자주 학교에 오지는 않았지만
올 때만큼은 정말 교실을 찢어버렸다.
옷이며 화장이며 우리 엄마가 아니라 아주 과장된 딴사람이 서 있었다.
그 잔상이 내겐 깊이 남아 있다.
엄마가 매일 저랬으면 싶었다.
엄마는 큰아들과 막내딸에게 모조리 에너지를 썼기에 내게 줄 에너지는 없었다.
그래서 둘째인 나는 있는 둥 없는 둥 ‘수월하게 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난 사고를 치고 문제를 만들고 관심을 모조리 독차지하고 싶었다.
결혼하면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쩌면 그 착각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남편과 내가 1대 1 함수처럼 그런 관계가 될 거라 믿었다.
자식이 셋인 엄마가 맺은 1대 3이 아닌 1대 1 말이다.
그런데 1대 1은 개뿔, 지금 내 처지는 1대 4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민 오면서 일찍부터 가장이었던 남편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남편의 동생은 가게에서 왕왕 돈을 훔쳤고
영어를 못하는 부모님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모든 일처리를 남편이 해야 했다.
롱디 시절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마지막 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때도
남편의 아빠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연락이 와서 그날 저녁을 망쳤다.
꼭 어떤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늘 이런 식으로 망가졌다.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닌 것들로 우리 둘의 생활이 망가졌다.
결혼이라는 걸 하는 바람에 이상한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여자,
그게 마치 나인 것 같았다.
남편의 가족일로 내 평화로운 일상이 부서졌다.
이게 반복되자 나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이없는 패턴이 생겼다.
배란일 즘엔 꼭 사고가 터졌다.
(한때 아기를 원했던 고령 신혼부부에겐 배란일이란 말해 모해)
그걸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상했다.
뽀뽀할 기운도 없었다.
이건 분명 신이 우리에게 아기를 낳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 같았다.
상대방의 빌런까지도 공유하는 게 결혼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우리 가족은 나를 서포트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편안하고 온실 속 화초의 기분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남편 가족은 아니었다.
늘 저항과 마찰력을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었다.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쳐 우리의 생존력을 키우게 만들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의 빌런까지도 공유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다.
장강명 작가는 <5년 만에 신혼여행>에서 아내와 자기 가족들은 서로 만나지 않게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방법이 노벨평화상 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우리는 좀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살 필요가 있다.
왜 내 남편은 장강명 작가와 같은 센스가 없는 걸까?
그런 센스가 없기에 나 스스로 내 살길을 찾게 됐다.
이 문제가 날 미치도록 힘들게 했는데 문득 어느 날 해결되었다.
그건 빌런이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다.
키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빌런까지 나눠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편해졌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나 또한 종종 남편에게 빌런이 되곤 한다는 거다.
이민국 안으로 들어와 먼저 증명사진을 찍었다.
포토샵 따위 전혀 없는 사진엔 누군지 모를 내가 있었다.
늘 어플 사진에 가려져 내가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지 몰랐다.
지문이 스캔되고 통과가 되면 화면이 초록색으로 변한다.
다시 스캔해야 하는 손가락엔 노란색으로 뜬다.
오른손을 다시 스캔하는데 마지막 새끼손가락이 또 노란색이었다.
그런데 직원이 다됐다고 가라고 한다.
난 좀 의심이 돼서 색깔이 안 변했다고 했더니 괜찮단다.
집으로 오는 내내 찝찝했다.
이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다시 지문 등록하러 간 케이스의 사례를 읽어봤다.
생각해보니 직원이 내 케이스 넘버를 입력할 때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서 번호를 입력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설마 혹시 내 번호를 잘못 입력한 게 아닐까?
망했다. 집에 와서 어플로 내 케이스 상태를 봤더니 그대로다.
지문등록이 완료되었다는 게 떠야 정상인데
뭔가 분명히 잘못된 거 같다.
“도대체 얼마나 운이 없으면 지문등록 마저
다시가야 하는 거야?”
억울함이 부글부글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없이 그냥 기다리는 일이다.
왜 내 인생은 한 번에 된 적이 없는 걸까?
대학을 갈 때도 방송작가가 될 때도
심지어 초딩때 단순한 국기함을 만들 때도
남들이 한 번에 만드는 걸 나는 다시 사서 두 번째에 완성했다.
영주권을 향한 여정 속에서도 과정마다
별것 아닌 것들이 턱 가로막았고
다시 서류를 내느라 남들보다 더 늦어졌다.
임시방편의 삶을 살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직 어학원도 못 다니고 운전면허도 못 받는 상태다.
이게 도망가라는 뜻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말인즉슨 지금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다는 거다.
빌런이 우리를 망쳐도
그 순간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아!
진심으로 이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기엔 분명 힘든 구석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하고 싶다.
지문 등록을 다시 하러 오라고 통보가 와도 짜증 내지 않고
‘하하 역시나 한 번에 안 되는 캐릭터야 일관성 있어 좋네’ 하면서 갈 거다.
가끔 진짜 우리 엄마와 남편이 바통터치를 한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엄마가 다 못해준걸 하늘에서 남편을 아바타로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남편은 다 읽은 책엔 그 날짜를 책 앞에 기록해 두는데
그게 우리 엄마의 시그니처였다. 거기서 소름이 돋았다.
분명 엄마의 영혼이 느껴졌다.
진흙탕을 밟아 운동화가 더러워지면 그걸 닦아놓는다거나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놓고 다른 것에 정신 팔려 다시 돌아보면 남편이 빨래를 개어 놓는다.
어질러진 내 책상을 치워주고 유통기한 지난 빵을 버려준다. 이걸 엄마가 다 해줬던건 아니다.
다만 해줬으면 했던 나만의 판타지를 남편이 대신 채워주고 있다.
불 켜놓고 설잠을 자고 있으면 불 끄고 다리 베개를 끼워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이때 잠시 잠에서 깨더라도 절대 들키지 않게 자는 척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것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다.
빌런이 우리를 망치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지라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내 영혼의 밑 빠진 독이
남편으로 인해 채워지는 느낌이다.
‘극성맞은 엄마’ 코스프레를 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전 지구 상에 남편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얼굴은 늙고 변해도 지문은 그대로인 것 처럼
그 사실만은 영원하길 바란다.
단 한 번도 ‘엄마를 대신해줘서 너무 좋아’ 그런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귀신같은 남편은 그걸 이미 알아차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