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마들을 위한 센스 학원이 필요해
시엄마는 잘못이 없어. 다만 센스가 없을 뿐
참 아이러니하다.
결혼을 하면 흔히들 친구들과 멀어진다고 했는데 우린 아니다.
전쟁을 겪은 전우애보다 더 끈끈해졌다.
시월드에서 각자가 겪는 서로의 부조리함을 일러바치기 바쁘다.
비슷한 처지에서 오는 동지애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익스클로시브 위로를 느낀다.
정말 신기한 건 각자가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걸 겪고 있다는 거다.
기가 막힌 가부장제, 아들을 향한 맹목적 사랑,
코로나 역병 시국에도 아들을 보지 않으면 병나는 어미의 기괴함을 겪고 있다.
서로가 공유하는 에피소드는 꽤 방대한 양이되었고
이젠 아카이브 수준이다 보니 이런 빅 데이터가 나왔다.
얼마 전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결혼사진이 나와서 보는데 시어머니가 아들 손을 잡고 있더란다.
남편이 자기 손과 시어머니 손을 둘 다 잡고 있어서 놀랬다는 거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게 흔한 일이냐며 글을 올렸다.
댓글이 우다다다 달렸는데 시어머니가 오버했다,
내 아들 손 내가 잡지도 못하냐 등등 재밌는 반응이었다.
그 글에 대한 내 생각은 손잡는 건 좋다.
나도 내 아들 손 잡고 싶을 거 같다.
그런데 결혼식은 그 순간만큼은 며느리가 주인공이니
사진 찍는 순간에는 며느리가 주인공 되게 배려했을 것 같다.
그 시어머니의 잘못은 없다. 다만 센스가 없을 뿐이다.
그런 시어머니라면... 알지도 못하는 글쓴이의 결혼생활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사랑은 좋다, 방식이 문제지
카카오프렌즈 덕후인 남편을 위해
시엄마는 서울에 가실 때 라이언 물티슈를 사 오신다.
미국이 워낙 물티슈가 싸고 가성비가 좋은데도 말이다.
서울에서 사들고 오는 수고로움보다
아들이 좋아한다는 그 기쁨이 더 크신 모양이다.
굳이? 싶다가도 나는 그 모습이 좀 귀엽게 느껴지는데
문제는 정작 아들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들은 제발 엄마가 아무것도 안 사 왔으면 하길 바란다.
시엄마는 손이 정말 큰데 그 큰 손으로 남편의 가게 물건도
자기 멋대로 사들여서 가게에서 팔라고 강요한다.
이걸로 수백 번의 전쟁이 있었고
마지막에 시엄마가 울고 이제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결론을 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 잊을 만하면 또 그런다는 거였다.
결혼하고 나서 원치 않게 이 무한반복을 가까이서 목격하게 되었는데
보고 있으면 진짜 터프한 블랙코미디 같다.
이걸 다큐로 찍어 놓으면 나중에 진귀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마치 아기 젖을 끊기 위해 찌찌에 겨자를 바르는 엄마처럼
다시는 못 그러게 더 심하게 상처를 줬다.
하지만 효과는 개뿔 마음만 상하고 다시 또 시작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엄마의 사랑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그 표현방식은 잘못이다.
사랑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거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에게 스트레스와 경제적 손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주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모른다.
이걸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배울 곳도 없다.
그럴만한 롤 모델이 없었다.
시엄마의 사랑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전달될 방식,
이거 누가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제발
아무래도 시엄마들을 위한 센스 학원 이거 시급하다.
자식 전화 전화 따위 기다리는
어른이 되긴 싫어
우리들의 영원한 미스터리는
‘부모들은 왜 전화받기를 좋아하는 걸까?’다.
얼마 전 신영준 박사가 유튜브에 글을 올렸는데
엄마가 “넌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하냐? 했다고 한다.
그 부분에서 빵 터졌다. 역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그는 인간관계 경제력 등등 모든 부분이 역대급인 자신의 엄마에게
자신이 전화를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단다.
왜 할 말도 없는데 전화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엄마도 결국 원하는 건 자식의 전화였다고 한다.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아서 아직 모르는 걸까?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자기만의 방식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게 좋다.
며칠 전 시엄마가 전화로 내게 말했다.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라고.
안선영은 이 문제를 두고 부모가 원하는 건 내 자식 목소리라고 했다.
나도 각자 집에 각자가 전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가끔 시엄마랑 통화하는게 재밌을 때도 있다.
어떤 소설가의 팁은 이렇다.
그냥 그 앞에서는 네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안 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래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다.
이것도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인 거 같다.
최근 친구는 이런 일까지 겪었다.
시엄마가 전화해서 시누이에게까지 전화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티라노사우르스가 불을 뿜듯이 대분노를 뿜었다.
그런 친구에게 우리 반드시 성공해서 그런 전화는 비서가 받게 만들자고 했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최선의 방법은 찾지 못했다.
역시... 비서뿐인가?
다만 나는 자식 전화를 기다리는 어른이 되긴 진짜 싫다.
내 관심사나 커리어에 빠져 자식 전화 따위 받을 시간 없었으면 좋겠다.
코코샤넬의 말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처럼
자식은 떠나가지만 나 자신은 영원하다.
자식이 떠나가더라도 내 인생은 계속 되어야 한다.
전화, 그냥 하고 싶은 사람이 먼저 걸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