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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an 12. 2022

에베레스트 대신, 매일 갈 수 있는 뒷동산 리스트

최선을 버리니 행동이 시작됐다.

잊고 살았네, 산책 만수르 인걸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황련산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뿌연 연기로 가득 찬 광안리 바다 사진을 보는데 지옥이 따로 없다.

“산책은 사치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붐비는 곳에도 못 가는데

등산마저 못 간다니 정말 답답할 것 같다.

이게 지금 보통의 한국인이 처한 현실이다.


그 별것 아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매일 언제 어디든 산책 갈 수 있는 나는 이미 천국에 있는 것만 같다.

나는야 그야말로 산책 만수르다.

난 공원 부자인 포틀랜드에 살고 있잖아! 을매나 좋아?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잊고 살다가

아빠와 통화를 하면서 문득 깨닫게 됐다.

사람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걸 잊고 사는 것 같다.

왜 코앞에 있는 건 안 보이고

아주 멀리 있는 것만 동경하게 되는 걸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뒷동산 대신

오르기 힘든 에베레스트만 동경하며 사는 게 진짜 나인 것 같다.

그래 뒷동산을 더 자주 오르자!

화려한 최선이 아닌 소소한 차선을 선택하는 거다.


내가 미국에 온 게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 보다

내가 이미 그걸 선택했다는 게 더 중요해졌다.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면 좋은 선택이 되도록 만들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뭔지 구분하는 게 중요해졌다.


커피를 못 끊으니까 , 줄이지 뭐


“한의학 공부를 해보니까

여성의 몸에 가장 해로운 게 커피입니다. “

패션잡지에 다니다가 퇴사하고 한의사가 된 사람이

팟 캐스트에 나와서 한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그의 이력으로 보아 치열한 세계에서

정말 커피를 한 몸처럼 달고 살았을 것 같아서 더 믿음이 갔다.

커피까지 끊으면서 무슨 재미로 살지?

커피를 끊으면 외롭지 않을까?

그런데 커피를 끊으면 그게 가져다주는 엄청난 효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뀐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커피를 끊을 용기가 안 났다.

커피가 없으면 정말 외로울 것 같다.

자주 가는 스타벅스에서 날보고 "웰컴백"이라고 외쳐준 그날, 정말 눈물 날뻔했다.

스타벅스에서 나누는 짧은 수다가 이방인에겐 얼마나 따스한 온기인지...

이 좋은 걸 왜 끊어? 그럼 줄여 보자고!


10년 전쯤 후배가 추천해줘서 마셨던 커피맛 보리차가 생각났다.

검색해보니 요즘은 더 다양한 버전으로 팔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보리차로 부르는 오르조,

그냥 물에 타기만 하면 커피로 둔갑한 보리차가 된다.

아마존에서 주문해 보리차 가루로 커피 핸드드립 하듯이 마셔봤다.

커피 대신 보리차, 조금씩 커피를 줄여가는 기쁨이 있다.

그간  커피를 마신다, 끊는다 왜 이런 이분법으로만 생각만 했을까?

이렇게 줄이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다.

더 소중한 건 커피를 줄이고 나니까 커피 한잔의 행복은 더 커졌다.

뭐랄까 주말부부 같은 느낌이랄까?


체중을 못 줄이니까, 근육량을 늘이지 뭐


미국에 온 첫해, 우울하면 먹부림으로 풀었던 인간의 당연한 결과다.

운동을 곁들여도 체중이 줄지 않고 늘기만 하는데 그 속도가 어느새 빨라졌다.

나의 유일무이한 구세주 탄수화물 느님을 끊을 수는 없고 저녁을 일찍 먹어 보았다.

그랬더니 밤에 배가 고파서 성질이 포악해지는 나를 발견하고 이것도 계속할 순 없겠다 싶었다.

살찌는 게 불쾌한 이유는 바지가 안맞기도 하지만

내가 아끼는 아스파시 패딩이 안맞기 때문이다.

벌써 10년이 되어가지만 이 패딩은 브랜드 명성답게

여전히 아름답다. 이 패딩보다 일찍 망가지긴 싫다.

적어도 내 몸이 망가져 이 패딩과 결별하긴 싫다.

나는 보내주는 쪽을 좋아한다.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녕이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사랑을 받든 못받든간에

살이쪄서 이 패딩을 입지 못한다면 행복하지 않을것 같다.


이런 고민을 토로했더니 씨스타가 샤오미 체중계를 추천해 줬다.

아마존엔 샤오미가 없었고 어플로 근육량이 측정되는 체중계 그 비슷한 게 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더 이상 몸무게가 아니다.

방점은 근육량!

근육량을 알고 싶어서 샀는데 신체 나이까지 알려준단다.

37세로 나온 나이에 기뻐하며 남편 것도 재보라고 재촉했다.

헐 그런데 남편은 35세로 나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남편이 더 어리게 나와서 내 승부욕이 발동됐다.

근육량이고 나발이고 지금부터 내 목표는 신체나이 34세다!

남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현진아 이거 기계 잘못된 거 같아 대충 분위기만 잡아주는 거야. “

흥! 저 말이 더 짜증 난다.

이 인간만큼에게는 지고 싶지 않다!

이 기계가 엉터리 같긴 해도 신체나이를 위해 노력하고 싶은 내 마음이 거기에 있다.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한번이라도 짐에 더 가려는 내 의지를 상징한다.

내 절실한 마음이 압축된 그 존재, 그 물성을 집안에 들여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작가 등록 대신, 메타 마스크 지갑부터 만들지 뭐.


NFT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늘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오늘도 NFT 시장 300배 성장 뉴스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정작 그 세상 속의 내 정체는 없다.

처음 트위터나 인스타 아이디를 만들었던 순간이 생각났다.

아직 주변에서 하고 있지 않아서 나 혼자 만들어 외로웠던 기억.

그래! 그날처럼 오늘 그냥 어플을 깔아 버리자

여기까지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

막상 어플을 까는 건 몇 초였지만 , 이게 뭐라고 미루고 미뤘던 걸까?

원래 오픈 씨에 작품 등록을 하고 나서 지갑을 만드는 게 보통의 순서이지만

나는 그냥 지갑부터 만들었다.

아직 0원인 지갑을 매일 꺼내보면서

내 작품을 등록할 그 순간을 앞당겨 보려 한다.

나의 메타마스크 지갑

늘 프라다 지갑이 낡으면 새로 사곤 했는데

어느 순간 정말 프라다 지갑이 필요 없어졌다.

코로나 때문인지 세균이 득실거리는 현금을 더 안 쓰게 되고

신용카드 대신 애플 페이로 모든 걸 결재한다.

이런 세상이 오기까지 나는 현금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뉴스나 경제 학자들의 코멘트가 아니더라도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보니까 나는 NFT 세상을 믿게 되었다.

그 믿음의 결과 메타 마스크 지갑을 만들었고

나는 오늘 분명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남편이 다가와서

“현진이 내가 책갈피 하나 줄까?”

“책갈피 필요 없어, 집에 산더미야.”

“이런 책갈피는 어때?”

하면서 비자금을 책에 끼워준다.

이 별것 아닌 쓸모없는 장난에 크아아 하고 크게 웃음이 난다.

생활비는 모두 애플 페이로 쓰기 때문에 내가 어디서 언제 썼는지 다 공유가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걸 절대 알 수 없는 현금 비자금을 남편에게 따로 요청했다.

자기만의 뒷주머니는 꼭 필요하다.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주기 때문에 매달 이 놀이가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앞으로 이거 계속할 수 있을까?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게 바보인 시대가 와버렸다.

비자금마저도 이제는 내가 오늘 만든 메타 마스크 지갑에

이더리움으로 주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만 같다.

다 좋은데 낭만이 사라지는 건 조금 슬프다.

좋아하는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선 죽은 아내가

몰래 적금 들어 놓은 걸 자주 입는 옷에서 발견한다.

오랜만에 입은 옷에서 돈이 나오는 만큼 기분좋은 일이 있을까?

역시 비자금은 현금의 맛이 최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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