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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an 29. 2022

나도 내가 시엄마랑 커플 잠옷 입게 될 줄은 몰랐어

다큐에서 시트콤으로 장르 전환

커피머신이 우릴 구하리라

“너네 집 커피머신 있지

그거 이번 명절 시댁 갈 때 가져가서 커피 만들어 드려 봐 되게 좋아하실 걸? “


나도 내가 친구를 붙들고 이런 말을 하게 될지 몰랐다.

역병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명절이라 시댁으로 끌려가는

내 친구에게 내가 조언한 꿀팁이다.

누군가는 시댁에 좋아하는 와인을 심어 놓고 온다고 했는데

이게 있으면 분명 친구가 시댁에서 덜 외로울 것 같다.


가끔 시엄마가 집에 오시면 카톡으로 [내려와 봐] 하신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중2처럼 구는데

내가 지키고자 하는 그 거리감을 시엄마도 존중해 주신다.

영어 수업 듣느라 늦게 메시지를 확인하고 일층으로 내려갔더니

커피를 만들어 달라 하셨다.

하필 우유가 유통기한이 지났다.

나는 유통기한에 상관없이 내 입을 더 신뢰한다.

상하지 않았는지 체크를 하고 우유 거품을 만든다.

이 커피 한잔으로 단박에 소녀가 되는 시엄마를 보면서

어쩌면 시월드란 커피 한잔처럼 간단한 세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엄마가 싫은 요상한 이유를 알고 나면

그런데 역시나 판타지와 현실은 각각 따로 논다.

종종 남편을 통해 듣는 시어머니의 멘트를 듣고 놀랄 때가 있다.

“방사능 때문에 현진이가 일본 제품 쓰는 거 싫어”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고

그런 남편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렇다. 나는 일본 제품을 쓰는 정도 가 아니라 매우 사랑한다.

카레나 후리카케 일본우동 일본된장 등 늘 쟁여놓는 페이보릿 품목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엄마의 부엌엔 더 놀라운 게 있다.

내가 처음 시엄마의 부엌에서 보고 충격받은 것이 일본 혼다시였다.

쌍화탕 맛 감기약 같은 덩어리의 낯선 질감.

엄마들은 보통 쇠고기 다시다를 쓰는데

시엄마는 계란말이도 이 혼다시를  넣으면 맛있다고 내게 특별히 알려줬다.

나는 태어나서 일본 혼다시를 쓰는 가정을 처음 보았다.

더 놀란 건 참기름도 일본제를 쓰신다.  

쇠기름 통으로 된 참기름엔 일본어가 쓰여 있었다.

물론 한국 참기름 병에 덜어 쓰기 때문에 남편은 그게일본제인지 알 길은 없었다.


자기도 일본제를 쓰면서 나보고 그게 싫다니

그 극단적 모순이 너무 웃겼다.

예전엔 난 이 모든 상황을 다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월드 대혼란을 거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것!

시엄마가 싫은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면서 시트콤이 되었다.

그 이유는 시엄마 모습에 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엄마의 억척스러움에 가끔 혀를 내두를 때가 있는데

또 피부과에 가서 흥청망청 사치를 부리는 걸 보면 나랑 너무 똑같다.

자신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얼마나 웃기는지 모르는 사람이

우리 시엄마고 바로 나다.


시엄마랑 친구 같은 건 하기 싫어

어느 날 커피를 만들어 드렸더니 갑자기 시엄마가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문제의 그것을 주셨다.

시엄마가 기어이 선을 넘었다.

어쩌면 그게 앞치마였다면 덜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나마 <82년생 김지영>이나 <며느라기>에서 봤기 때문에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커플 잠옷!

여기서 커플은 남편과 커플이 아니라 시엄마와 내 잠옷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 오글거림이  마치 내겐 공포영화의 도입부처럼 느껴졌다.

‘잠깐만요 난 우리 엄마랑도 커플 잠옷 안 입어 본 사람이라고요’

물론 베프랑 커플 잠옷을 입은 적은 있다.

그런데 난 시엄마랑 친구 하기 싫다고! 난 아들바보랑은 친구 안 해!


그런데 이 커플 잠옷의 요상하고 무서운 점은

입는 순간 원치 않아도 우정이 싹튼다는 거다.

‘우린 같은 이방인이고 앞으로 같이 헤쳐나갈 게 많은 전우다.‘

시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들 둘 데리고

영어도 못하면서 미국에 왔을 텐데 얼마나 막막했을까?

매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지?

그 세월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시엄마와 커플 잠옷 입고 달라진 나의 인생

커플 잠옷이란 내적 친밀감이 생겨버리는 아주 요상한 물체다.

그 잠옷을 입고 나는 달라졌다.

어느 날 내가 아끼는 일본 세라믹 칼 앞이 뭉뚱 하게 잘려나갔다.

지난번에 남편이 통조림을 따다가 내 칼을 부러 뜨러 새로 사 온 거다.

남편은 이번엔 자기가 아니라며 범인은 시엄마라 했다.

아침마다 그 칼의 그립감과 기분 좋게 커팅되는 그 고유한 감각을 느끼며

사과를 자르는데 매일 그 잘려나간 칼의 부상을 봐야 한다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그 칼을 버리고 새로 사 내라고 난동을 부렸을 텐데

지금은 아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저히 그렇게 부러뜨리라고 해도 그 조각을 만들어내기란 정말 어렵다.

 ‘도대체 뭘 하다가 요 앞쪽만 부러진 걸까?’

그게 너무 궁금하고 그렇게 조각난 칼이 시엄마가 만든 작품처럼 희소가치 있게 느껴졌다.


시엄마가 주차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커피머신의 시동을 켜고 있다.

손 씻고 바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타이밍을 계산하며 준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웃기다.


시엄마가 늘 해주는 꽁치조림인데 갑자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오빠 이건 우리만 먹기엔 너무 아까운 요리 솜씨 같아

한국이 배출한 보물을 우리만 독점하는 거 아니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어.

엄마 한식집 차려야 하는 거 아냐? “


이게 다 커플 잠옷을 입고 달라진 나의 모습이다.

이 잠옷은 나중에 뜯어지고 언젠가 쓰레기통에 버려지겠지만

전투복 같았던 유니폼 느낌의 동지애는 영원할 것이다.


오은영 박사가 그랬다.

‘자식이 왜 그럴까’를 파다 보면 ‘부모가 왜 그럴까’에서 답이 나온다고

가끔 남편을 보고 아침부터 어떻게 귀여울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답은 역시 시엄마에게 있었다.

그래 이 귀여운 인간을 낳은 시엄마가 귀엽기 때문이었어!

복사본이 귀여우니 원본이 귀엽지 않을 리가 있어?


어떤 한 사람에 대한 시선을 다큐에서 시트콤으로 바꾸는 순간

 인생의 장르도 변하는  같다.

흔히 즐겨 보는 시트콤처럼 시엄마가 자신에게 주어진 코미디를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더 웃을 일이 많아졌다.

친구에게 다시 말해주고 싶다.

시월드와 아름답게 공존하기 위해선

물건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고.

“커피머신이 아니었어... 내 눈을 다큐에서 시트콤으로 바꿔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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