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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Feb 11. 2022

집 사는 것 보다 두근거림을 따라가고 싶어

나혼자 호캉스가 더 좋은 인간의 속마음

남편 전화기가 울리더니 다단계에 홀랑 넘어가는 사람마냥

모든 걸 오케이 하고 끊었다.

다짜고짜 다음 주에 사촌들과 스키여행을 가자고 한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좋다고 한 것에 짜증이 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다같이 몰려가는 여행이 싫다.

사촌들과 스키여행을 가자는 남편에게

나는 혼자 호캉스를 가겠다고 했다.


일단 2박3일에다가 3층짜리 별장을 빌려 같이 있는 것이 생각만 해도 싫었다.

근데, 놀러 가는데 왜 싫지?

일단 사촌들은 키가 크고 근육도 탄탄하고 체격이 좋다.

그 옆에 있으면 더 대비가 되는 남편,

새까맣고 건포도처럼 쪼그라든 남편을 보고 있으면 소말리아 난민 같아 보여서 종종 기분이 상한다.

이 얘기를 시스타한테 했더니

“언니두 참, 중학교 때 이유 없이 여드름이 나던 시절 기억이 안 나?

그 말에 빵 터졌고 바로 이해가 됐다.


그런데 사촌들은 죄가 없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환영해주고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과 유머와 칭찬을 퍼붓는다.

그런데 왜 싫은 걸까?

시스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 진짜 본심을 들켜버렸다.

“걔네는 경제적 걱정 없이 이미 부모가 사준 집에서 여유롭게 사는데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죽었다 깨나지 않으면

이번생애는 그렇게 못 살 거 같어 그 상대적 박탈감이 싫어.“

이런 찌질한 말을 내뱉은 나 자신도 놀랐지만

시스타는 이말에 진짜 놀라면서

나는 그런 생각 안하고 사는 줄 알았단다.

사실 싱글일 때는 그런 생각 안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니 부모님이 집을 사준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가

경제적 계급차로 이어졌다.

그냥 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자기집 없이도 잘 살아갈 사람

그러고 한 달쯤 후에 시스타는 이사할 집을 보러갔다가

마음이 상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예산에 맞는 집을 보러 갔는데 집에 햇빛이 안 들어 온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 멀리 있는 경기도 권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받고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똑같이 집이 없지만 집이 없는 시스타는 집이 없어도 잘살아갈 사람처럼 보였다.

집 때문에 잠시 속상했다가 다음날 새로 전시하는 작품의 설치 사진을 보내오면서 기뻐했다.

자기 필드에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의 광채란

집에 햇빛 같은 게 안 들어와도 상관없어 보였다.

원하는 미술관에서 자기 작품을 내 보일 수 있다는 사람에겐

집이야 있든 말든 상관없어 보였다.


“내가 보기엔 집 없어도 난 니가 젤 잘 사는 거 같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

설마 그걸 안다고 해도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안다는 거 자체가 행운이고

그 일을 하면서 인정받는 다는 건 기적같아

난 집 있는 사람보다 인정받고 사는 니가 젤 부럽다.“

그때 알았다.

내가 진짜로 추구하는 게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정서적 풍요라는 걸.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자기 전에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유트브를 무심코 보는데 재밌는 영상이 떴다.

한 유트버가 최고 부자동네를 찾아가 막무가내로 문을 두드렸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가 궁금해

<한끼줍쇼>의 밥 대신 대답을 구걸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좋은 집에 살 수 있나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그 일은 어떻게 찾았어요?”

“난 야후와 어도비 엔디비아에서 일했어요

그건 내가 찾은 게 아니예요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죠

가끔은 인생이 당신을 이끌거예요“

그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런 집을 살 수 있을까?

좋은 집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의 말에서 경제적 풍요 말고 정서적 풍요가 느껴졌다.

보통 부자들이 하는 말은 뻔하다. 그런데 저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좋아하는 일이란 그말 자체가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정신적 풍요를 쫒으세요‘라는 말로 들렸다.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하는 말

애초에 아들처럼 딸에게도 똑같은 지원을 해줬다면

우리는 이런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경제적 지원든 뭐든지 간에 부모도 자기 마음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이렇게 쿨한 척 해도 난 그렇게 까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속에서 차오르는 분노는 참을 수 없다.

왜 같은 자식인데 아들은 많이 받고 딸은 덜 받는 걸까?

이런 게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최근 아들딸 다르게 재산을 증여한 집에서 소송을 냈다고 했다.

결론은 판사가 똑같이 나눠가지라고 했는데

그 뉴스를 전하는 이수정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딸이고 남자형제보다 적게 받았어요.

하지만 재산을 똑같이 나눠 같는 것 보다

아무런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게 더 큰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말을 담담하게 전하는데 분명 자기만의 해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만이 뿜어내는 멋 같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의 재산을 많이 가진 오빠가 처음엔 꼴보기 싫었다.

그런 와중에도 더 갖고 싶어 안달 난 꼬라지는 더 보기 싫었다.

그런데 그건 오빠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때로는 조선시대보다 더 악발치는 부조리 시대다. 그 시대를 선택할 순 없어도 그 부조리에 대한 나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지 분간하는게 중요하다.

억울한 일이 없는게 좋은 인생이지만

그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구겨지지 않는 게 최고의 인생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고모가 사준 아파트가 4억이나 올랐다는 사촌 언니도 부러웠었다.

"그래서 언니 일도 안하고 그냥 논데."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시스타와 나는 부모가 사준 집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풍요롭다.

각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

부모가 집을 사주면 그만둘 일이 아니라 집이 있다해도 죽을때까지 하고싶은 일이 있다.

그건 일론머스크가 빌 게이츠가 그렇게 많은 재산이 있는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사는 것과 같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일론머스크나 빌 게이츠는 부모의 재산에 관심을 가질 시간 조차 없을 거다.

우리는 읽고 싶은 책을 머리맡에 두고 그걸 같이 밤새 이야기할 사람이 곁에 있다.

이렇게 아들과 다른 취급을 받으면서도

우리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 이유에 대해 자기만의 해석을 한다.

죽을 때 집은 가져갈 수 없지만

내가 일궈놓은 정서적 풍요로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남는다.

그렇기에 아빠가 우리에게 집을 사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 돈으로 아빠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으로 그저 족하다.


그리고 나는 믿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은집에 살 수 있다는 그사람의 말을 , 그냥 뚜벅뚜벅 조금씩 가보자고!


“그 감각이 어디에서 나왔냐”고 묻는다면

두근거림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롱블랙 대표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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