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에게 똥을 투척했다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신이 그 사람을 빚을 때 감수성을 깜빡해서 이상한 말을 할 때가 많다.
특히 남편이 그런 스타일인데 어제 또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오징어 볶음, 엄마한테 좀 배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온몸에 똥이 범벅되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뭐? 먹고 싶은 면 니가 배워.”
처음엔 내가 한 요리가 몽땅 엉망진창이었지만
지금은 백종원 레시피 덕분에 먹을만하다.
시엄마의 요리가 맛있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남편이 그 똥 같은 말을 안 했다면 내가 자진해서 알려달라고 졸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말 때문에 더더욱 배우기 싫어졌다.
“내가 김은희 작가가 아니라서 이러는 거지?
내가 김은희 작가였다면 이런 말 했겠냐고?
(*남편은 킹덤의 광팬입니다)
난 이따위 오징어 볶음 잘 만들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다고!!!
왜? 오징어 볶음은 나한테 너무 시시해서 거기에 내 노력 같은 거 쏟고 싶지 않다고!!! “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일단 작전상 후퇴했다.
더 코를 납작하게 해 줄 복수의 말을 하기 위해 부들부들 칼을 갈았다.
빠꾸 하고 싶게 만드는 순간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별것도 아닌 말에 왜 저렇게 까지 화가 나는 걸까?
진짜 위너라면 개가 짖을 때 화를 내지 않는다.
‘응 개가 짖는구나 너는 너의 길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이러고 무시했을 텐데
지금 나는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아주 특별한 재난 상황에 있다.
남들은 팬데믹이니 뭐니 그걸로 힘들다지만
우리 k1비자 생들에겐 더 치욕스러운 무기한 기다림과
그것이 동반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자비하게 구겨짐 등등이 있다.
도저히 내가 나로 살아갈 수가 없다.
진짜 어떤 기분이냐면 “너네 이따구 취급당해도 여기 끝까지 남을래?” 딱 이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내 몸과 마음엔 짜증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미국의 겁나느린 행정업무가 아니라면 지금쯤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했을 텐데
1년이 다 된 지금 이 시점에도 인터뷰 레터는 깜깜무소식이다.
이쯤 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 사람을 뭘로 보고?
이렇게 이민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라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한데 나란 사람을 이따위로 취급하다니!
이런 취급은 난생처음이다. 이 영주권 시스템을 규탄한다.
“더럽고 치사해서 영주권 안 받을 란다.”
이 말이 하고 싶은데 도저히 나오지가 않는다.
결국 이 시스템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나 역시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이민자라는 사실이 치욕스럽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굴욕 수모 안 겪고 살았을 텐데
한국에서 좋아하는 일 계속하면서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빠꾸
꿈의 도시 포틀랜드에 살지만
“오징어 볶은 엄마한테 배워.”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남편에게서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언제든지 얼마든지 나는 돌아갈 수 있다.
‘꿈의 도시 포틀랜드? 개뿔! 그럼 뭐해~
카페에서 잠시 화장실 갈 때 노트북 올려놓고 갈 수도 없는 인생들인 주제에‘
그래 전쟁이다. 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러니까 어제 한 그 말은 이런 거랑 똑같은 거야
우리 아빠한테 가서 돈 버는 법 좀 배워. “
‘흥! 지도 이런말 들으면 열 받겠지?’
이 정도면 알아듣겠거니, 얼마나 똥 같은 말을 했는지 느끼겠거니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의외의 말을 했다.
“난 좋은데? 난 배우고 싶은데? 내가 업그레이드 되잖아 좋은 기회잖아. “
라고 하는데 오징어 볶음 배우라는 말보다 더 짜증 났다.
“에이씨! 또 내가 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가 딸칵하고 켜졌다.
인생이 뭐가 그리 쿨해?
적어도 난 이 인간보다는 더 쿨하고 싶다.
그래! 서울에서 내가 아는 행복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난 포틀랜드에서 부딪혀가며 내가 모르는 행복을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