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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Mar 06. 2022

그렇게 겁쟁이가 되다

차를 망가뜨리고 알게 된 뜻밖의 수확

잘 해내고 싶었는데 자살골을 넣었다.

그날도 그냥 아주 보통의 날이었다.

요상하게 치폴레가 먹고 싶어 안 가본 가게를

더듬거리며 처음 가보기 전까진


분명 도착하자마자 싸한 느낌이 나긴 했다.

가게 밖 불은 켜져 있는데 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나는 안을 확인하려고, 조금씩 뭔가에 홀린 듯 가게 앞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때 차를 대놓고 내려서 보기엔 보슬보슬 비가 내려 그냥 들이댔다.

안은 뭔가 어두 캄캄해서 닫은 건가 싶었다.

그러던 찰나 내 차가 뭔가를 넘어왔고 차 밑에 뭔가가 낀 느낌이 났다.

서예 할 때 종이를 고정시키는 도구,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딱 그렇게 생긴

콘크리트를 타고 올라갔고 당황한 나는 성급하게 후진을 했다.

그 순간 어떤 미스터리한 각도로 인해 차 바닥이 거기에 끼여 버렸다.

다시 한번 억지로 후진을 해서 빠져나왔는데

순간 망했다는 직감과 함께 뭔가 뿌직 하고 빠개진 느낌이 났다.

내려서 봤더니 차 조립이 풀려서 왼쪽 앞 범퍼가 내려앉아버렸다.

세상에 그 튼튼하다는 독일 명차가 이렇게 부서지나?

그때만 해도 레고처럼 어긋난걸 다시 손으로 끼우면 될 줄 알았다.

‘내가 이지경이 된 걸 이렇게 고쳤다고~’하며 나중에 보여줘야지 하면서 동영상을 찍었다.

날은 더 어두워졌고 혼자 발동동 구르고 있는 찰나

저 멀리 뽀샤시한 불빛과 함께 예수님이 나타났다.

진짜 여름 성경학교에 갔는데 예수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치폴레를 먹으러 온 남자 두 명이 날 보더니 내려서 비를 맞으며 나를 도와줬다.

그들은 나의 구세주였다. 재빨리 지갑 속에 있는 현금을 확인하고

그들이 작업을 마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답하려 했다.

이걸로 평생 남편이 놀릴걸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전범죄로 만들어야 했다.

뭔가 대대적인 사고도 아니고 겨우 이깟 바보짓으로 평생 놀림당할 것 생각하니

현금은 물론 영혼까지 탈탈 털어 구세주들에게 모두 드릴 태세였다.


그들은 마치 차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처럼 보였고

범퍼를 열어서 이것저것 해보더니 결국 손만 더러워졌다.

집까지라도 차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밑이 부서져 땅에 끌렸다.

그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남편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남편이 오는 동안 진짜 그 15분이 너무 길었다.

20년 장롱면허를 봉인 해제하고 1년 동안 깨끗한 무사고를 기록했다.

그런데 고작 이런 어이없는 걸로 내 무사고 기록이 더러워 지다니!

사고를 쳤는데 그 사고가 납득이 안 가기 때문에 억울했다.

그러니까 난 잘 해내고 싶었고 열심히 했는데 자살골을 넣은 선수 심정이랄까?


망가지면 망가진대로


맥가이버의 응급처치

남편은 빗속을 뚫고 공구함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더니 후레시로 차를 비추고 공구함에 있던 끈으로 밑을 잡아당겨 단단히 조여 맸다.

‘어머나 나 맥가이버랑 살고 있었네’

어젯밤까지 만해도 이를 안 닦고 자려고 온갖 핑계를 대는 일곱 살 같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인정! 조금 멋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차를 견인해 갔을 텐데

미국은 어지간한 건 혼자서 처리하는 문화다.

미국 도로에는 망가진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도대체 뭘 했길래 차가 저모냥이 됐는지 의아할 정도로 시선 강탈하는 차들이 꽤 있다.

부서진 대로 얼르고 달래서 그냥 끌고 다닌다.

그냥 그 망가진 모습 그대로를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찢어진 청바지 구멍 난 스웨터처럼 오히려 스타일리시하게 보인다.

그런 차들에 절대 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우리도 낭만 있게 이대로 끌고 다니면 어떨까 했다.

지금 내가 갓 만든 우리 차의 치명적인 매력포인트, 그냥 안고 살아가자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서진 바닥을 잡아주는 끈의 틈 때문에 앞 범퍼가 열려

계속 경고음이 났다.

남편이 항상 안전벨트를 일찍 풀어서 났던 그 듣기 거북한 소리를

지금은 내가 친 사고 때문에 울려대는 것이기에 조용히 참고 가야 했다.

부서진 차를 빈티지 스타일로 몰고 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경고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사람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차를 맡겨야 해서 차 안을 정리했다.

아마 이 일이 없었다면 평생 정리 안 했을지도 모른다.

차 안에 얼마나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많은지 한 박스가 나왔다.

그걸 다 끄집어내서 버릴 건 버리는데

대체 왜 선글라스는 3개나 나오는 건지?


복수는 나의 것

차를 맡기러 갔더니 견적도 안 봐주고 한 달 뒤에 오라고 했다.

지금 부품조달이 딸려서 중고차 시장도 그렇고

고치는 업계도 인력난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날의 내 자살골이 내 모든 일상을 뒤흔들어 놨다.

오랜 기간 기동성이 떨어지면서 내 마음도 쪼그라들었다.

운전 시작 후 3년 안에 사고가 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그 말로 혼자 계속 위로를 했다.

이만한 게 다행이고 운전 백신 맞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괜찮아졌다.

그런데 이 어이없는 사건이 불러일으킨 새로운 깨달음도 있다.


남편의 위기 대처능력과 맥 가이버스러움을 알게 되고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쌩돈 날아가는 아픔을 알게 되고

도서관을 걸어 다니면서 차 타고 다닐 때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다.

가장 큰 수확은 이 바보 같은 사고 후 남편과 내편의 리액션 차이이다.

모두가 “그만하길 다행이야.” 했고

남편은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했다.

이 부분이다.

이 안 닦고 자려고 온갖 핑계 대는 이 인간한테 저런 소리를 들으니까

진짜 쭈구리가 된 것 같았다. 이 치욕스러움을 어떻게 되갚지?

그때 진짜 남편을 왜 남편이라 부르는지 알게 됐다.

내편인 아빠는  “많이 놀랐겠네.”라고 했다.

아마 그 순간이 인생을 통틀어 아빠에게서 가장 크게 위로받은 순간이었을 거다.

남편이 하는 말“그러면서 배우는 거야.”와

아빠가 하는 말“많이 놀랐겠네” 의 천지차이가 실감됐다.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100만 원에 차를 고쳤다.

2주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절대 예전의 마음이 아니었다.

내가 바보짓을 했다는 자국,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더 오버해서 조심스러워졌고 약간은 두려워지기도 했다.

내가 또 병신같이 자살골을 넣을까 봐 무섭다.

그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처음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나니까 괜히 더 긴장이 됐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분명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차를 망가뜨리고, 마음을 졸이고, 고친 차를 받아 드는 순간

그제야 이런 게 행복이구나 라는 실감 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바랄 게 없었다.

늘 항상 제자리에 있었기에 몰랐는데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것이 진짜 행복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차가 망가진 것처럼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내게 남았다.

남편에게 사고 쳤다고 이실직고했던 순간

“다친 데는 없어?”라고 걱정할 줄 알았는데 그 순간 3초의 마가 떴다.

그 분노의 정적을 평생 잊을 수 없고

나는 살아가는 내내 이걸 기억해두고 호시탐탐 복수할 타이밍을 엿볼 것이다.

'니가 자살골 넣은 사람의 심정을 알아?'

이번 일의 가장 큰 수확은 아빠의 포근한 위로가 아니라

내가 생각보다 뒤끝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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