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것
지하철에서 동양인이란 이유로 갑자기 폭행을 당한다.
동영상 보는 내내 두 뺨이 얼얼했다. 나도 당한 느낌이다.
브루클린 쓰레기 봉지에선 토막 시체가 발견됐다.
집까지 따라간 강도에게 동양인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포악해질 뉴욕인가?
여행을 예약하고도 계속 터지는 흉흉한 뉴스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코시국에, 동양인 혐오 판국에, 왜 하필 뉴욕이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뉴욕으로 간다.
뉴욕이 아니면 안 될 걸 알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뉴욕으로 가고 남편은 나에게 끌려간다.
밤 비행기를 타는 건 처음이라 괜히 긴장됐다.
겨우 결혼한 지 1년 차라 아직 남편에 대해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상태일 거다.
남편도 그럴 테지만, 여행을 하는 도중 상대방의 예측불가 모습이 왕왕 나와서 당황스럽다.
음료를 마시느라 마스크를 벗고 있는 남편에게 승무원이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남편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다른 자리에 마스크를 벗고 있는 사람을 지적하면서
왜 자기한테만 지적하냐고 이 사람들도 벗고 있다고 흥분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그건 인종차별이라는 거였다.
나 같은 경우는 그 승무원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런 지적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내 기준에 별것 아닌 걸로 난동을 피우는 남편이 짜증 나서 비행기에서 내릴 뻔했다.
다들 잠든 새벽,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은
이 문제로 토론하는 한국인 두 명(나와 남편) 때문에 고요가 깨졌다.
“그냥 내편 들어 주면 안돼?”
“안돼! 이건 인종차별이 아니라니까!”
가끔 남편이 이런 유치한 구석이 있을 때 진짜 상대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인간은 삐뚤어진 구석이 있고 취약한 면이 있는데
별거 아닌 걸로 목숨이라도 건 사람처럼 도발할 땐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너무 꼴 보기 싫다.
난 그가 주장하는 인종차별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반대로 남편은 동의할 수 없지만
나는 선명하게 느낀 인종차별의 순간이 날 찾아왔다.
이번 일로 인종차별이라는 걸 느끼는 지점이 아주 개인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스타그램이 요식업계를 망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인스타 그래머 블한 식당이었다.
그런 인기 많은 식당에 예약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찾아간 우리였다.
운이 좋았다.
가장 좋은 자리가 예약석이라 비어있었는데
마침 1시간 여유가 있어서 우리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었다.
뉴욕 치고는 가격이 합리적인 게 인상적이었다.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비닐을 벗겨 먹는 마리 형태의 초밥이었는데
마치 놀이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경험 자체가 관심을 끄는 듯했다.
“아이고 이렇게 까지 특별해야 해?”
비닐 벗기는 게 서툴러서 먹다가 비닐을 씹은 남편이 한마디 했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뉴욕은 정말 밥 한 끼 먹으면 무조건 100불이네”
아까 내가 본건 분명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다시 가격을 확인해보니 메뉴판과 영수증의 가격이 너무 달랐다.
"이게 텍스가 안 붙은 거라 가격이 다른 건가?"
그때만 해도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직원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니 당황하면서 우리 영수증이 아니라며 구겨 버렸다.
메뉴가 분명 우리가 시킨 게 맞는데 다 들키는 뻔한 핑계를 댔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고의가 아니었다면 그 직원이 분명 사과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개수작에 실패한 사람의 그 싸늘한 눈빛이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
내겐 그게 인종차별로 느껴졌다.
우리는 나오면서 팁을 놓지 않고 나왔다. 미국 와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남편은 이게 인종차별은 아니라고 했다.
그 의견도 내겐 의외였다. 아니 왜?
인종차별한 직원보다 남편이 더 짜증났다.
남편도 비행기에서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의견이 전혀 공감받지 못하는 외딴 섬에 갖힌 기분
내 버킷 리스트 호텔은 늘 파크 하얏트 뉴욕이었다.
센트럴파크가 창밖으로 보이는 그냥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곳,
하루 숙박료가 100만 원이 넘는 그곳을 포인트와 영혼까지 죄다 끌어 모아 드디어 갔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여기에 오는지 궁금했다.
정말 신기했던 건 투숙객들은 유색인종이었고 일하는 사람이 백인이었다.
다른 곳에선 정반대로 유색인종은 일하고 백인들이 즐기고 있지만
이곳에선 그 대비가 극명하게 일어나는 기묘한 순간을 보았다.
괜히 인종차별로 곤두섰던 내 신경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밤 비행을 하고 아침에 도착했기에 우리는 센트럴 파크뷰를 포기하고
대신 얼리 체크인을 했다.
그렇게 바라왔던 내 버킷리스트가 막상 와보니까 시시했다.
오히려 내가 더 편하게 지냈던 곳은 여기가 아니라
브라이언 파크 앞에 있는 안다즈(하얏트 가성비 버전)였다.
내가 지금 욕망하고 있는 것들 자체가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의심이 됐다.
겉멋을 추구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속멋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뉴욕은 왜 이렇게 던킨이 많아?”
“경찰이 많아서 그래! 차에서 도넛 먹어야 하거든”
차에서 도넛 먹는 게 국 룰이라며 웃는 동안 정말 창밖에는 NYPD들이 많이 깔려 있었다.
(실제 던킨은 미국 경찰들에게 커피도넛을 새벽엔 공짜로 제공한다고 한다. 이 캠페인으로 매장강도가 없어져 피해액이 줄어들어 개이득을 봤다고 한다)
7년 전에 왔던 뉴욕과 지하철이 더러운 건 같았지만
경찰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뉴스에서만 봤던 살벌한 곳이 아니라 내가 직접 체험한 건 안전했다.
"후추 스프레이도 필요 없고 나 혼자 다녀도 되겠는데?"
뉴욕을 여행하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만나서 각자의 경험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좋아하는 프로 <알쓸신잡>처럼 뉴욕을 즐겼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서점 <아고시> 서점에 갔다.
오래된 희귀 템뿐만 아니라 그림도 파는 그 서점은 어마 무시한 존재감을 뿜고 있었다.
6층엔 유명 작가의 사인과 육필원고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영어는 서툴지만 들이대는 건 자신 있다.
세 자매가 운영하는 유서 깊은 서점인데 딱 보기에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머니에게 가서 사정했다.
일상생활에서 특히 포틀랜드에선 전혀 쓸모없는 내 순발력과 불도저식 들이댐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여행을 사랑한다.
내가 가진 잠재력이 불쑥 튀어나오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6층에서 봤던 고귀한 자료들은 그 어떤 박물관보다 좋았다.
“아예 서점을 통째로 들고 나오지 그랬어?”
저녁을 먹으면서 내 이야기를 듣는 남편은 하루 종일 호텔에 있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저녁에 모이는 방식이 우리에게 딱 맞았다.
이 방식의 최고 매력은 상대에게 설명을 하면서 한 번 더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여행을 가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괴로워지는 사람이 나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더욱더 우선순위를 엄격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바로 여행 중이다.
뮤지컬 알라딘 티켓을 로터리 티켓(복권 당첨 형식으로 가격이 엄청 싸다)으로
운 좋게 싸게 구매했다.
그런데 저녁으로 먹기로 한 해운대 암소갈비 시간이 애매했다.
뮤지컬을 다 보고 가기엔 허둥지둥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그런데 뮤지컬 1부를 보고 나니 마음이 선명해졌다.
우리는 고기를 선택했다.
미식의 도시 뉴욕까지 가서 웬 케이푸드 먹는 호구들이냐 싶겠지만
우리에겐 이게 최고의 미식이다.
남편은 한식 파이기에 여행 중에 꼭 밥을 먹어야 한다.
나도 거기에 길들여졌는지 도시별로 한식 맛집을 꿰고 있다.
그런데 뉴욕에 해운대 암소갈비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너무 반가웠다.
“해운대랑 뉴욕이랑 둘 다 가본 우리 같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하면서 신나게 고기를 먹었다.
특히 파절이가 입에 착착 붙었다.
조금 더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소스 같았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은 입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만족시켜 준다.
특히 고깃집은 한국 유학생들이 알바를 많이 하는데 서빙하는 속도나 센스가 감동적이다.
그 한국식 빠르기, 빠릿빠릿한 정신이 그리웠던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황홀했다.
뉴욕 도서관 메인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내 체력이 저질이 되어 있음을 알려줬다.
7년 전 매일 올라와서 그 감각을 익히 알고 있다.
이렇게 까지 숨이 찰지 몰랐다.
일상 속에 있을 땐 몰랐다. 점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거 말이다.
그걸 받아들이자니 더 마음이 급해진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스케줄을 나눠 중간에 호텔에 들러 쉬다가 나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다.
가능하다면 여행하다 죽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걸 하다가 죽는 인생이라면 그냥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티켓을 끊을 때 가장 좋은 항공사를 고른다.
만약 내가 죽으면 보상금이라도 최고로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남편이 이번에 저가항공을 타자고 할 때 그런 이유로 극구 반대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았다.
보상금이 얼마나 나올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비행기 안에서 와이파이가 공짜인 거 그냥 이거면 됐다.
뉴욕 여행이 끝나니 요상하게도 축제가 끝난 기분 같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난 후의 공허함 같은 게 밀려왔다.
역시 여행은 두려운 곳으로 가는 게 맞다.
어디로 갈지 헷갈린다면 더 두려운 곳으로 가자!
그 두려운 대가를 치르고 나서 얻는 그 무언가는
두렵지 않은 곳에 갔을 때 보다 더 귀중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 분명 전의 설렘이 더 강렬한 사람인데 이제는 달라졌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때 그 안도감이 더 좋다.
여행은 역시 우리 집이 천국이고 이미 천국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 위한 과정 같다.
돌아와 보니 시엄마가 일부러 와서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은대구찜을 해두셨다.
우리는 며칠 굶은 좀비들처럼 달려들어 먹었다.
칼칼한 김치찌개에 밥을 적시고 포근한 계란말이를 얹었다.
캐러멜 라이즈 된 대구는 입에서 살살 녹아버렸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맛 집이, 바로, 여기, 있었다.
이 집의 특징은 돈 주고도 사 먹을 수 없다는 거다.
엄마의 아들이기에 며느리이기에만 맛볼 수 있다.
아무래도 엄마 밥에 대한 허기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