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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Mar 17. 2022

섹시한 침묵


내가 이런 인간이랑 결혼했다니

“당장 일어나서 이 닦으라고.”

“......(못 들은 척)”

“내일 당장 서울 갈 거야, 이 안 닦으면.”

“....(자는 척)”

좀 갑론을박할 가치가 있는 걸로 토론하고 싶었다.

자기 전에 왜 이를 꼭 닦아야 하는지에 대해 100분 토론을 하게 될지

결혼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내 초딩 조카들은 자기 전에 씻고 척척 이를 닦는다.

루틴이 이미 몸에 베여 있어서 그런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당연하게 한다.

“잠깐만요 어머니 저 좀 보시죠?

도대체 아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신 거죠?

자기 전에 이 닦는 아주 중요한 사항을 왜 안 가르치신 거죠?

어머니는 이를 닦으면서 왜 사랑하는 아들은 그냥 내버려 두신 거냐고요 “

급기야 꿈에서 시엄마에게 멱살을 잡고 따지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남편이 이를 닦지 않고 자는 사람이란 걸 전혀 몰랐다.

자기는 충치가 없다며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이 문제로 들들 볶아 대자 그는 너무 의아하다는 얼굴로

“너도 자기 전에 이 같은 거 닦고 자니?” 라며

자기 베프에게 전화해서 이딴 걸 물어보는 인간이었다.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 거였어

결혼하고 나서 내가 이런 시시한 문제로 내 에너지를 쓰게 될지 몰랐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에게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너의 남편은 설마 안 그러지?”

친구가 굉장히 놀라거나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살았냐며

날 불쌍히 여길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건 예측불가 친구의 반응이었다.

“당연히 그러는데 난 그냥 내버려 두는데?”

“뭐? 천하의 깔끔쟁이 니가 그냥 내버려 둔다고?”

그걸 물어보기까지 좀 쪽팔려서 망설였는데 친구 남편도 그런단다.

친구는 벌써 대단한 보살님이 되어 있었다.

‘나만 이러고 사는 게 아니었어

다들 이런 인생의 시시한 고민을 떠안고 사는구나 ‘

괜히 위로가 됐다.


만약 그가 내 남자친구라면 이렇게 까지 통제하려 들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남편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남자친구에겐 애인이지만 남편에겐 자꾸 엄마가 되어 버린다.

앞으로 암묵적으로 인생을 함께해야 할 동반자이기에

이건 초장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점이 나도 견딜 수가 없다.

어느새 내 하루를 관찰 카메라가 찍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나는 하루 종일 그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좀 일어나” “일찍 좀 자” “담배 좀 그만 펴.” “제발 시간 약속 좀 지켜.”

“당장 일어나서 이 닦고 자,”

겨우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이런 거였다.

그런 말을 내뱉을 때 내 숨결에 악의 에너지가 깃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못생긴 말 말고 연애시절에 주고받던 우리만의 언어를 되찾고 싶었다.


게으른 마음을 읽는 자들

나의 오은영 선생님인 시스타에게 이 문제를 토로했다.

“거기서 중요한 건 이를 닦으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이 닦기 싫은 마음을 공감해 주는 거야. “

“침대에서 일어나서 이 닦으러 가기가 진짜 귀찮지?”

뭐 이러면 되는 건가? 그게 효과가 과연 있을까?

그런데 공감이라는 게 진짜 무서웠다.

혹시나 해서 이 방법을 써봤다.

“이 닦는 거 너무 귀찮지? 친구 남편도 그렇데~.”

그런 사람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 지구 상에 또 있다는 것에 눈빛이 변했다.

자기 마음을 지지받으니까 그다음 말이 먹혔다.

화를 내는 것보다 그 마음을 알아주니까 그가 움직였다.

말 한마디 바꿨다고 스스로 일어나서 이를 닦는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처럼 나는 게으른 자의 마음을 읽어주었다.

동시에 내가 내뱉은 그 말이 내 안에 있는 뭔가를 일깨웠다.

‘이게 몸에 익지 않은 사람에겐 정말 힘든 일 일수도 있겠구나’


엄마가 아니라 애인으로 남을래

기뻐하기엔 그 방법은 일회성이라는 거다.

결혼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친구처럼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그에게 잠시도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엄마가 되면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계속 애인으로 남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 옆의 바나나 껍질을 치우는 데

보아하니 남편이 어젯밤에 바나나를 와글와글 씹으면서 잤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에 또 잔소리를 덧붙였을 텐데 본척만척했다.

구질구질한 잔소리 말고 섹시한 침묵을 택했다.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나도 남편이 아니라 애인으로 대해야 한다.

이 행동이 내 결혼생활의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 일들이 쌓여가면서 내 결혼생활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실해졌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할 뿐이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과정에 그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 난리를 피우고도 자고있는 남편을 보면

여워 죽겠다. 장난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런 내 자신이기에 짜증이 난다.

남편이 치과에 가서 겪을 지옥엔 관심을 끄기로 했다.

지금 내 마음의 평화와 감정을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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