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
“내 남편이 고아였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 같아.”
친구와 긴 통화 끝 마지막 결론이 이거였다.
서로 다른 지역, 전혀 다른 스타일의 남편과 살고 있지만
우리가 내린 결론이 같았다는 게 웃겼다.
이건 우리가 특별히 유별난 상대를 만나서거나 우리가 삐뚤어져서도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보통의 여자들이 겪는 시대의 결과물이다.
아마 다음세대들에게 결혼은
서로의 가족과 격리되는 게 전제조건이지 않을까?
“둘만 잘 살면 돼.”
시엄마가 나를 보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이게 내 인생을 관통하는 복선이 될지 정말 몰랐다.
절대로 둘만 잘 살 수 없는 생활이었다.
남편에겐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동생이 있다.
되돌아보니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이뤄졌다.
동생이 사고를 친다. 남편이 좌절하고 수습한다. 잠시 잊을 만하면 다시 동생이 사고를 친다.
이 패턴의 반복이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기타노 타케시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누가 보더라도( 아니 되도록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지금 갖다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자식을 낳아보진 않았지만
우리에게 왜 애를 안 가지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애를 낳는 건 우리에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애 없이도 하루하루 동생이 친 사고 때문에 힘에 부쳤다.
“내 동생 같은 애 낳을 까 봐 겁나.”
남편도 마찬가지로 두려워했다.
한 인간으로부터 지금 충분히 고통받고 있기에
적어도 그럴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시엄마도 처음부터 도박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형 가게 돈을 훔치는 자식을 똑 부러지게 뭐라고 가르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감싸고돌았다.
자식을 낳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폭행하는 아들을 감싸려고 손녀에게 맞은 걸 비밀로 하라는 할머니를 봤다.
천박한 모성애다. 설마 나도 그런 역겨운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난다.
이제야 풀리는 미스터리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외숙모의 인생이 그랬다.
어린 눈에도 좀 이상했었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집에 왜 막내 외삼촌이 기생충처럼 붙어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둘의 생활은 평안했으나 늘 시동생이 사고를 쳤다.
외삼촌 공장의 물건을 모르게 빼돌렸다. 결국 그건 돈을 훔친 거랑 같은 거다.
“아이고 저놈의 손,”
엄마도 욕만 했지 그 어떤 시원한 해결을 해주진 않았다.
외숙모가 그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억이 나는 건 외숙모의 웃는 얼굴이었다.
감히 시동생 따위가 자기 인생을 망칠 수 없다는 듯이.
그 시절 엄마는 늘 외삼촌 집에 다녀오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니 근데 왜 애가 안 생길까?”
나는 이제 그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조금 알 것 같다.
타이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엄마한테 화내고 싶다.
“몰라서 물어?”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수도 있겠다.
직접 당해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이기에
인스타 세상이 내 인생이라는 착각
갓 결혼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게 내 인생의 숙제이자 내 인생을 관통하는 고통일지 몰랐을 때
아니 차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때 나는 종종 이렇게 나를 다독였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이것에 방해되는 게 결혼이라면 얼마든지 그만두겠다.
친구에게 처음으로 내 판도라 상자를 열어 전화로 털어놓던 날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너 그러고 어떻게 사니?” 라며 친구는 분개했다.
뒤 말은 아꼈지만 아마 그 지경으로 살 거면 이혼해라 뭐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
인스타에는 포틀랜드의 낭만적인 사진으로 내 인생을 기록하기에
나도 내 삶이 그런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결혼과 동시에 그와 얽힌 가족 때문에 내가 썩어가고 있음을 그제야 실감했다.
다 쏟아놓고 혼자가 되니 주룩주룩 눈물이 났다.
연극이 끝난 광대가 무대에서 내려와 마스카라 똥과 함께 흘리는 검은 눈물처럼.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너무도 해맑게
“우리 현진이 누가 그랬어? 어떤 놈이 울렸어?”
하면서 다시 차문을 닫아줬다. 그런 배려에 마음껏 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자기 때문인걸 남편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의 그 해맑음이 너무 기가 차게 웃겨서 그만 울다가 웃어버렸다.
어떻게 동생 때문에 죽고 싶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가 있냐고?
악의 무리가 아무리 우리를 휩쓸어도 역시 모든 걸 이기는 건 웃는 얼굴일까?
만약 그게 정말 맞는 거라면 나도 외숙모처럼 웃고 싶다.
시동생 따위가 내 인생을 감히 망칠 수 없다는 듯이
빌런 때문에 실감하는 우리의 케미
남편을 그 고통에게서 지켜주고 싶다.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나도 보잘것없이 나약한 인간이기에 종종
'내가 싫으면 버리고 다시 돌아가면 된다.'라고 나를 주기적으로 달래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 좋으라고?‘
빌런을 피해서 도망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가버린 다는 건 시동생이란 존재가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란 걸 증명하는
꼴이 된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종종 빌런이 등장했고 처음엔 바보같이 빌런과 맞서 싸우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빌런은 싸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 이용이야 말로 내게 개이득이라는 걸.
빌런의 존재는 우리를 똘똘 뭉치게 하는 최적의 도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남편의 장점이 이럴 때 드러났다.
갑자기 맥락 없이 내가 울음을 터트려도
“동생 얼굴 보는 거 힘들지?” 하며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심정을 디테일하게 짚어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감수성 부자 됐네?.’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요상한 전우애가 생겼다.
“어젯밤에 도박하다 돈이 떨어졌나 봐 새벽에 가게에 갔더라고.”
“그냥 우리를 위해서 기부했다고 생각하자.”
한 사람의 범죄를 아름다운 나눔으로 치환해 보기도 했다.
분통 터지는 상황을 어떻게든 포장해보려는 순발력이 내 안에서 계속 샘솟았다.
“그냥 비가 온다고 생각하자. 비는 또 그치니까.”
마음을 추스르려면 어떤 말이든 뱉어야 했다.
“저기요 명언 자판 기세요?”
상대의 작은 말이 서로를 다시 일으켰고
우리는 구체적으로 서로의 케미를 실감했다.
이 불행들이 어이없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신에게 마치 빚 청산 완료한 사람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나 이 정도로 당했으면 앞으론 좋은 일만 있는 거죠?
더 이상 나쁜 건 반칙 아입니까?.‘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된 가족들이 내 멱살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얼마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면 나는 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일들을 글로 풀어내었기에 살아졌다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그렇게 때문에 나는 멈출 수가 없다고.
글을 쓰고 나서야 내 안에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 스르륵 풀려나가는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