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피크
호캉스에 지쳤다는 거짓말
“아주 성대하고 거나하게 보내고 싶어”
이렇게 말은 했지만 그래봤자다. 결국 우리는 호캉스를 간다.
나에겐 삶을 리셋하는 작은 의식이 호캉스였지만 어느새인가 호캉스에도 지쳐있었다.
그래도 결혼 1주년 기념이라는 핑계로 꾸역꾸역 포인트를 쓰러 간다.
겨우 호캉스 같은 걸로 기념하긴 싫었다.
그 순간으로 즐기고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되는 프로젝트 같은 걸 시작하고 싶었다.
지금 내게는 절실하게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결혼기념일이라는 핑계로 무기력한 일상을 깨뜨려야 했다.
호캉스 하다가 엄마가 거기서 왜 나와?
최근에 생긴 시애틀 하얏트 리젠시는 객실만 1000개가 넘는 대규모 호텔이다.
글로벌리스트 포인트를 털어 스위트룸으로 예약했다.
44층 방에 들어서니 모든 게 역대급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압도당했다.
호캉스에 지친 나의 동태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아니요 지쳤다 다니요 진짜 호캉스 맛을 아직 몰랐던 거죠
이렇게 높은 층과 큰 방은 처음이었다.
“축구해도 되겠는데?”
시애틀 바다와 대관람차, 고층건물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뷰가 치명적이었다.
비가 왔다 말다를 반복해 시시각각 구름이 만들어내는 모습도 운치 있었다.
그냥 큰 창으로 그 풍경을 보고만 있어도 충분했다.
호텔 곳곳 투어를 마치고 호캉스 뽕을 뽑겠다며 욕조에 물을 받았다.
반신욕과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며 어지러웠다.
그 순간'창문을 좀 열었으면 좋겠는데' 하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가족 다 같이 서울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엄마가 한밤중에 호텔에서 숨을 못 쉬겠다고 죽을 거 같다고 뛰쳐나간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혹시 엄마 심장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내내 걱정되었다.
그때 엄마의 까맣게 타들어 가던 얼굴이 내 인생에서 두려운 순간으로 각인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공황장애였구나 싶다.
그런데 그 당시엔 그 고통에 대한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다.
엄마가 겪은 고통의 크기나 형태 같은 걸 전혀 헤아릴 수 없었다.
“괜찮아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공황장애인데 약 먹고 치료받으면 돼.”
이렇게 말해줬다면...
이렇게 엄마의 고통을 해석해 줬다면 어땠을까?
스프링 피크가 날 해석해 줬어
요즘 내가 겪고 있는 현상이 그렇다.
이 감정에 대한 이름이 없어서 설명하기도 힘들고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몰랐다.
체크아웃을 하고 시애틀 벚꽃 명소인 워싱턴대학교를 갔다.
“시즌이 끝나서 이제 다 떨어져 없을지도 몰라”
내년에 만개할 때 가자고 했지만 남편은 날 거기로 끌고 갔다.
거기 해리포터 도서관이 있어서 사실은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갔던 그곳에서 내 감정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게 됐다.
그건 스프링 피크라고 불리는 봄 우울증이었다.
벚꽃놀이가 다 끝난 학교 캠퍼스 마당은 패션쇼 하듯 재빨리
핑크에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 있었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그라데이션 같은 게 일어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컷과 컷이 붙어져서 언제 여기 벚꽃이 있었냐 싶게 변해 있었다.
봄의 흔적이 다 없어지고 이미 여름이 와있었다.
사기당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봄이라고 해놓고. 아니 봄 인 게 당연한데 왜 여름이 거기 있냐고?
나로서는 따라가기 버거운 세상의 변화가 거기 있었다.
다들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데 나 혼자만 멈춰진 느낌이 덩그러니 있었다.
다른 계절보다 봄에 더 우울하고 불안감을 느끼기 쉽다고 한다.
가장 활동하기 좋은 계절 4월이 1년 중 자살을 가장 많이 한다는 게 안 믿긴다.
그 이유가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생기와 활력이 상대적 박탈감을 주며 우울감이 심해진다고 했다.
날이 풀리면서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정서적 혼란을 스프링 피크라는 말로 설명했다.
그 확실한 이름을 듣고 나니까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가 이해되었다.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도
“너 그거 스프링 피크야”로 설명하면 왠지 우리가 힘든 이유를 구체적으로
찾은 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상대가 힘든 점에 대한 대안을 쭉 늘어놓기보다는
그걸 해석해주는 순간, 확실한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병에도 아직 이름 없는 무명의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그 문제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 만으로도 조금은 해결되는 것 같다.
스프링 피크라는 이름을 알기 전과 후,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어떻게 하면 그 이름들을 더 잘 많이 알게 되는 걸까?
귀인을 만났어요 이름은 모노클이고요
포틀랜드로 떠나기 전 마지막 장소로 엘리엇 서점에 갔다.
직원들의 손글씨 추천 코멘트가 매력적인 곳이다.
거기서 운명적으로 모노클 잡지를 다시 마주했다.
연봉 3억, 1년에 10번 정도 여행과 출장을 다니는 독자를 타깃으로 한 영국 잡지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잡지를 구독해 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그 잡지를 보는 순간 바로 구독을 결정했다.
모노클이 우리들에게 나타난 귀인 같았다.
“결혼 1주년 기념으로 호캉스 다녀왔어요”는 뒤가 기대되지 않는다.
“결혼 1주년 기념으로 모노클 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이제야 호캉스의 공허함이 채워진 느낌이다.
모노클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데일리 뉴스, 여행, 문화 다양한 콘텐츠로 운영 중)를
듣고 있으면 내가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 나는 지금 인생을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봄인데 지독한 우울증에 걸렸고 그걸 짚어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었고
트위터에서 본 ‘스트링 피크’라는 기사였다.
찌질함은 우리 결혼 생활의 원동력
내겐 담배 끊는 걸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남편이 있다.
1년 전과 지금 너무 똑같다. 그런 1주년일지라도 기념하고 싶다.
“이걸 왜 못 끊어?”라는 말을 반복하다가도
혹시 남편이 내가 모르는 싸움 같은 걸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편의 고통에 이름이 없으니 엄마의 공황장애처럼 헤아리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숭악한 냄새를 풍기며 담배 펴놓고 안 핀 척 개수작을 부릴 때
'진짜 내가 이런 찌질한 인간이랑 사는 거야?' 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버린다.
그게 소름 끼치게 짜증 나면서도
그 찌질함이 나와 닮아 귀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결혼생활이란 리스펙트나 의리 같은 걸로 나아가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을 살아보니 아니었다.
서로의 찌질함이 닮은걸 발견할 때
문득 그걸 느끼는 어이없는 순간순간이 날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