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낸 여름방학
여름방학이란 어쩐지
실컷 놀고 나서 찬바람이 스치면 급하게 벼락치기로 밀린 일기를 써대느라 바쁠 때,
이제 방학이 끝나 가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이젠 누가 검사를 하지도 않는데
나는 일기 쓰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났다.
행여 까먹어 버릴까 두렵고 그 찰나의 내 감정이 오롯이 남겨지지 못할까 봐 안달이 난다.
쓰면서는 오히려 ‘어머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몰랐던 속마음을 재발견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방학 동안은 글을 쓰지 않고 지낸 주제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실감하고야 말았다.
갑작스러운 서울 방문, 나는 생각지도 못한 긴 방학을 갖게 됐다.
김추진의 뜻밖의 제안으로 문래동이란 낯선 동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김추진은 미친 거 같다.
제정신이라면 선뜻 자기 집 비번을 내어주면서 와서 자고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거 같다.
그것도 선배라는 존재에게(선배란 아주 가끔 보는 것이 좋다)...
역시나 가보니 제정신은 아니었다.
나는 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쿵짝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미국 오기 전날 밤 버킷리스트 꽃시장 가기를 못했다며 김추진은 날 태우고 꽃시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쌔한 분위기, 마침 쉬는 날이었다.
“난 오히려 마음이 편해
이렇게 액땜을 하고 나면 내일 출국길이 엄청 수월할 거 같아. “
그깟 것에 쪼그라들 우리가 아니었다.
다시 남산 드라이브로 흥을 내며 쏘다니다 기름이 떨어져 버렸다.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이란 24시간 주유소가 도처에 널려있을 줄 알았다.
근처 주유소를 검색해 발을 동동 거리며 가보니 연달아 3개 정도가 문이 닫혀 있었다.
이제는 정말 차가 도로에서 멈출 것 같아서 출동 서비스를 불렀다.
아니 내가 부르자고 했다.
김추진은 다음 주유소로 가려고 시동을 걸었고
나는 처음으로 김추진의 추진을 온몸으로 막았다.
미국 가기 전날 밤 이 정도 시트콤 필 추억은 정말 좋은데
갑자기 사고가 나서 급 못 가게 되는 다큐멘터리가 될까 아찔했다.
새벽 3시, 신사역 한복판에 차를 세워놓고 출동 서비스 아저씨를 기다렸다.
거기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풍경들을 보았다.
새벽이 아니라 대낮 3시처럼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마치 나이 제한이라도 있는 나이트클럽처럼 젊은이들이 내 눈앞에 걸어 다녔다.
그들이 내뿜는 싱그러움이 밤을 낮으로 만들었다.
어디서 뭐하다가 지금 쏟아져 나오는 지도 궁금했다.
꽃시장이 닫아 꽃은 보지 못했지만
더 흐드러지게 핀 꽃송이들이 거기 있었다.
지금, 여기, 꽃기분
꽃이야 말로 꽃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 도처에 널려있었다. 늘 거기에 있었던 걸 몰랐던 거다.
살아있는 꽃 말고 걸어 다니는 꽃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꽃송이가 걸어 다니네?”
아무것도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예쁜 나이었다.
마치 오늘 우리에게 이걸 보여주려고 신이 다 계획한 이벤트 같았다.
그 순간 한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합정역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어떤 아줌마가 다가와서
지금 너무 예쁜 거 알고 있냐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면서 다짜고짜 그 말을 하곤 사라졌다 했다.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그 아줌마의 심정을 알 거 같았다.
나 역시 아무나 붙잡고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혹시 모르고 있을까 봐.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아무리 그런 말을 해줘도
그 시절엔 그런 말이 귓구녕에 1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타인의 말은 뭐가 됐든 귓구녕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김추진에게 각막에 좋지 않으니 써클렌즈를 끼지 말라고 말할까 말까 하고 한 달 내내 고민했다. 그런 걸 안 껴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걸 모르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말이 귀똥으로 들리리란 사실을)
그래서 내게 필요한 말은 내 경험으로 찾아내고 스스로 해야지만 귓구녕으로 무사히 안착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