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Oct 24. 2022

작지만 확실한 성취

서울에서 보낸 여름방학

소확행 아니고 소확성이 유행이란다.

작지만 확실한 성취.

어디서 들은 건 많아가지고

유행하는 거라면 다 따라 해 봐야 직성이 풀린다.

비록 작더라도 결과물이 확실하게 눈으로 나오는 걸 해보고 싶었다.

서울에 와서 자기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가는 친구들을 보자

더 혼란스러워지고 "영어는 좀 늘었니? "라는 질문에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정체성이 모호해진 난 숨을 곳이 필요했다.

원데이 클래스 중독자인 나는 그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그 마성의 장소는 바로 문래창작촌에 있는 <아코랩> 화실이었다.

거기가 왜 마성이냐면 카페 안에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화실이 숨어 있다.

그래서일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뭐가 된 듯한 요상한 기분이 든다.

원래는 원데이 클래스만 하려고 했는데 화실의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정신이 나가버렸다.

도무지 다 갈 수 있을까 싶은 무리한 스케줄을 결재했다.

이 화실은 랜덤으로 쌤이 배정이 되는데

정말 기승전결을 짜 놓은 것처럼 내가 쌤들을 만난 순서가 기가 막히다.

첫날 쌤은 그림의 즐거움을 보여줬다.

그리는 내내 입으로 뭔가를 쫑알거렸는데

옆집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 깎는 기계음을 따돌릴 정도였다.

사실 나는 아크릴 사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건 짧은 시간에 칠해야 했기에 먼저 오일파스텔로 기초를 잡아야 했다.

주변에는 다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유화란 무엇인가? 뭘 그려도 그냥 있어빌리티, 뭔가 고급져 보이는 도구다.

그래서일까? 나도 얼른 유화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미국에 다시 들어가야 했기에  포기했다.


둘째 날은 조용한 쌤이었다.

나랑 텐션이 맞지 않아 '내가 생각보다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구나'를 깨달았다.

조금 어두운 사람은 나랑 맞지 않고 나 또한 어두워진다는 걸 실감했다.

어제랑 같은 의자였지만 너무 딱딱하게 느껴졌고

비밀의 화원 같다던 철문이 갑자기 감옥 같았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남은 수업을 째고 놀러 갈까 고민했다.

그 찰나에 쌤이 마법의 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내게 찰필 쓰는 법을 알려줬다.

디테일한 걸 다듬는 법에 홀려 ‘와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고 그 신기함에 빠져버렸다.

다음날 빨리 화실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세 번째날 쌤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홍대앞 입시미술학원이 망했다는 거다.

대부분이 선릉쪽으로 옮겨 갔고 홍대는 더 이상 실기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미대에서 실기를 안보면 뭘 보는 거지?’

그 궁금증은 넷쨋날 풀렸다.


 홍대에서  이상 실기를 보지 않는지 알게 됐다.

이제 미술계에선 기술적으로 그림만 잘 그리는 사람이 필요 없게 됐다.

기술 대신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 가에 대한 생각이 중요했기에 성적으로 뽑게 됐다고 했다.

나는 그런 대화들이 즐거웠다.

남은 한시간, 그림을 다듬으려 하는데

“유화로 마무리하죠.”

갑자기 유화라니?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물감 마르는 시간 때문에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그 유화를!

출국 전날 과감하게 붓질하는 그 쌤이 놀라웠다.

“피자박스에 포장하면 들고 갈 수 있어요.”

쌤은 정말 피자박스에 그림을 고정시켜 선물처럼 포장해줬다.

포틀랜드 집에 도착하니 피자박스는 너덜너덜 거지꼴이 되었다.

당연히 그 안에는 덜 마른 유화가 있었다.

그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싶은 이유는 내가 그린 첫 유화라서가 아니다.

그 태도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안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 일을

내가 좋으면 어떻게든 진행시키고야 마는 돌파력!


타인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 자신을 만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모든 걸 내 등 뒤에 놔두고 황홀하게 몰입이 되었다.

정말 누군가와 격렬한 사랑을 나눈 사람처럼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작지만 확실한 성취를 이뤘다.

결과는 작은 캔버스,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나왔지만

진짜 내가 얻은 건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태도였다.


박진영에게서 배울 건 춤이 아니라고 했던가

내가 여름방학 화실에서 배운 건 그림이 아니라 태도였다.

언제든 유화를 그릴 수 있다. 그러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림은  태도를 상징한다.

 태도를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포틀랜드로 도망친 나는 왜 또 도망치려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