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피드”
이태원 참사를 두고 누군가 말했다.
병신 같다니... 치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그 입에 비누를 물려야 할 것 같았다.
(입에 비누 물리기: 미국의 언어교육방식 중 하나)
4년 전 나도 이태원 골목 그 자리에 있었다.
눈앞은 어지러웠고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그 좁은 길을 도망치듯 헤쳐 나왔다.
예비부부 중 남편만 살아 돌아온 뉴스를 봤다.
나도 그 당시 예비 남편과 함께 있었기에 나 역시 얼마든지
그 뉴스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다.
병신이 아니라 너도 나도 모두가 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외신에서 ‘핼러윈 크러쉬 빅팀’이라 표현되는 이번 참사의 희생자.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는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표기된다.
이것이 보도지침이라고 한다.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생각과 언어는 아무도 훼손할 수 없다.
뉴스에서 앵커가 “매년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이는데 왜 올해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 질문에 전문가라고 나온 사람이 엉뚱한 대답을 한다.
우리는 분명 뉴스를 보고 듣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인데,
그 순간 내가 돼지가 된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원인을 밝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할 순 없었나?
사고 몇 시간 전 들어간 신고들은 처참하게 묵살되었다.
“이번 참사에서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에 있나?”라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괴상한 농담을 하며 웃음을 보였다.
사람인가 돼지인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뉴스를 보고 내가 들어 누웠다.
그동안 오징어 게임이나 bts로 차오른 국뽕이 무색해지게
한국은 길 걷다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간 자식이 서울 한복판을 걷다가 차가운 주검이 될지 누가 알았나?
내 나라는 위험한 나라도 모자라 병신 같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CNN은 한국 정부의 확연한 실패를 깨닫는 대가가 젊은이 156명의 목숨이었다고 말했다.
끙끙 앓고 CNN을 보고 나서야 기운이 차려졌다.
그래, CNN처럼 속 시원하게 나도 내 생각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돼지가 아니고 사람이기에 나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숨겨져 있던 것, 감자에 난 싹이 시퍼렇게 드러났다.
지금 우리에겐 그것을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무엇이 싹인지 제대로 구분해서 칼을 들어야 한다.
도려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썩어서 사라질 테니까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이걸 쓰고 앉아 있을까?
이 글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아플 것 같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드러누워 우는 게 아니라
내 목소리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지만 확실한 개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