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재킷 -> 김추진
설날이라 기내식으로 떡국이 나왔다.
난생처음 JFK공항에 도착했다.
왠지 뉴욕은 두렵다.
너무 잘났기 때문이다.
아닌가, 내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인가?
지금 내 앞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할머니에겐 두려움이 없다.
모두가 스위치백을 반복하듯 계속 짐을 가지고 이동해야 했다.
경찰 아저씨가 영어로 짐을 여기 두면 안 된다는데
상관없다고 밀어붙이는 할머니를 보았다.
듣는 건 영어로,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하는데
신기한 건 흑인 경찰이 그걸 알아듣는다는 거였다.
그 풍경은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할머니,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정신없이 입국심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예전에 함께 일했었던 세트 감독이었다.
“어머 5일 동안 뉴욕을요?”
“죽는 날이 얼마 안 남아서요”
왜 지금이지? 그것도 여기서, 하필 나한테 충격적인 고백을?
어디가 아프신 걸까?
“아~ 방송 죽는 날이 얼마 없어서 그렇다고요~
5일 동안 진짜 알차게 여행하세요~”
방송이 없는 날을 보통 죽는 날이라고 하는데 순간 잘못 알아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게이트를 빠져나가니 동생이 마중 나와 있다.
그녀는 허니 진저 티를 보온병에 싸서 왔다.
뉴욕은 다양한 인종이 사는 만큼 온갖 바이러스가 많아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려면 마셔 두는 게 좋다고 했다.
미술을 전공한 동생은 뉴욕 전시를 앞두고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난 그 아파트에 꼽사리를 끼기 위해 왔다.
그게 뉴욕이 아니라 어디라도 왔을 거다.
잠시라도 얹혀 지내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방송으로 봤다.
와 내가 진짜 뉴욕에 왔구나는 실감이 들었다.
동생은 보이후드가 작품상을 받을 받지 못한 걸
서울에 있는 남편과 디테일하게 통화하며 아쉬워했다.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게 저런 거구나.
말은 바로 옆에 있는 나랑도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옆에 있어도 대화가 안 되면 벽처럼 느껴지겠지?
결혼이란 둘만의 세계 안에서 티키타카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올 때도 혼자 왔는데 갑자기 더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하긴 같은 집에 살아도 대화가 안됐던 건 꽤 오래전 부 터지.
동생이 학교를 땡땡이쳤던 걸 난 몇 년 후 에나 알았다.
난 꾸역꾸역 그 재미없는 곳을 끝까지 다녔는데,
그 용감한 일을 몰래 꾸며내다니!
학교 대신 영화를 보러 갔다고 했다.
이유도 멋져!
그 순간 생각했다. 더 이상 동생은 동생이 아니다.
인생 경험이 더 풍부한 사람이 언니지 뭐.
그래서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나는 여행자였고 그녀는 생활자였다.
난 2층 버스를 타거나 미술관을 박물관을 혼자 다니고
저렴한 얼리버드 뮤지컬 티켓을 사두고 저녁엔 공연을 보러 갔다.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짐에 가서 땀을 흘렸고
나머지 시간은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작업만 했다.
내가 뉴욕에 가지 않았다면 아파트 코앞에
유명한 베이글 집이 있다는 것도 영영 몰랐을 그녀였다.
누가 체크하는 것도 아니고 개근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게 그녀의 특기였다.
뉴욕에서도 김치를 버무리는 그녀였고
‘자신의 생활은 자신의 손으로’를 몸 소 말하듯 도시락을 쌌다.
그 에너지 넘치는 어깨를 보면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떠올랐다.
동생이 평소처럼 차문을 닫았을 뿐인데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튼튼하기로 소문난 독일 명차였다.
모두가 놀랐고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건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진짜 나중에 별그대에서 도민준이 그러고 있었다.
난 평범을 담당하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내 동생의 것이었다.
우리가 같은 배에서 나온 것이 아직도 호시탐탐 의심된다.
때때로 잔병치레를 하는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한번 아프면 정말 무시무시한 스케일로 아팠다.
꼬맹이가 자고 일어났는데 온 방안이 똥으로 가득 찼다.
의사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처음 보는 종류의 대장염이라 했다.
그보다 더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겨우 목을 가누던 꼬꼬마 땐
창틀에 앉아 있다가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는데도
멀쩡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볼 때면 늘 의심되었다.
이상한 초능력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아파트에 들어오면
나는 뮤지컬 시간 잘못 알아서 늦게 들어간 이야기
레스토랑에서 내 머리통보다 더 큰 탄산수가 나와서 바가지 쓴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짐에서 꼬마 아이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이야기 같은 걸 했다.
둘은 접점이 전혀 없었다.
그때 뉴욕은 폭설이 내렸고 영하 20도의 강추위였다.
그런 추위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내복 같은 걸 입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여긴 뉴욕이니까
그 추위를 뚫고 우린 센트럴 파크를 걸었다.
아니 그녀가 같이 걸어 주었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 볼까 말까 할 귀한 풍경이었다.
그러고선 그녀는 다시 짐으로 갔다.
전투적으로 자신의 체력관리를 했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 흔한 화장품 체인점 세포라 에도 가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뉴욕이라는 도시가 그런 것 같다.
모두가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 몰입해 있는 그런 도시.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패션이 중요한 사람에겐 발목을 드러낸 롤 업을 입는다.
이게 말로만 듣던 뉴욕 정신이라는 건가?
끝까지 나와 놀아주지 않았던 그녀
생활패턴이며 관심사가 많이 다른 그런 우리에게도 연결고리가 생겼다.
바로 중고옷가게 ‘비컨의 클로젯’이었다.
거기엔 우리 둘 다 원하는 것이 있었다.
패션쇼가 가능할 정도로 스타일리시 한 옷이 다 모여있다.
운이 좋으면 싼 가격에 인생 옷을 장만할 수 있다.
나도 거기서 인생 재킷을 만나고야 말았다.
이상하게 화려한 옷 다 놔두고 심플한 블랙 재킷이 눈에 들어왔다.
새 옷으로 샀다면 가산 탕진할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다!
동생이 쓱 보더니 한 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컨펌을 받다니 이게 웬일이고?
그 당시 내 마음은 ‘성공보다 출세하고 싶어’였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못 이뤄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왠지 출세라는 말은 서울이 아니라
작은 지방에서 자란 우리에게 필요한 말 같았다.
뉴욕에 와서 그 마음이 뾰족해졌고 이 에너지를 기억해 두고 싶었다.
사악한 물가, 더러운 지하철, 지독한 날씨, 치열한 경쟁...
그 모든 걸 감수해야 하지만
미친 패션 열정, 투머치 토커의 활기나 유쾌함이 내 온몸을 적시는 것 같다.
치명적인 불편함을 가졌지만 어쩔 수 없이 날 미치게 한다.
내게 뉴욕은 이 모든 걸 감수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블랙 재킷은 내 몸에 딱 맞았다.
이상한 자신감도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난 앞으로 이 재킷을 언제 어디서 입게 될까?
내 옷장에서 고이 몇 년을 잠들어 있게 될 줄은 그땐 몰랐다.
이젠 이 재킷이 필요 없어졌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걸 욕망한다.
그때는 출세하고 싶었고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집 근처에서 인터뷰 중인 후배가 부탁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언니 갑자기 장례식 갈 일이 생겨서요
혹시 검정 옷 좀 빌려 줄 수 있어요?”
옷장을 뒤졌는데 없다.
당근 마켓에 올려놓은 블랙 재킷이 있다.
잘 입고 세탁해서 주겠다는 그녀에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세탁해서 니차 트렁크에 넣고 다녀”
넌 큰일 할 사람이니까
갑자기 장례식 갈 일도 앞으론 많을 거다.
장례식엔 망설임 없이 갔으면 좋겠다.
난 블랙 재킷을 팔아 주식 사는 것보다
그녀의 가능성에 투자했다.
무언가 추진을 신속하게 잘해서 나는 그 후배를 김추진이라 불렀다.
김추진이 최근 무엇을 추진했냐면
테슬라 주식을 샀고 수익은 이미 N 배라 했다.
내가 아니었어도 테슬라 주식을 샀을 사람이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샀다고 말하는 김추진은
앞으로 어떤 출세를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