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 당일치기
엄마가 러닝 머신을 샀다.
한번 해보더니 베란다로 옮겼다.
그리곤 십몇 년을 빨래 건조대로 썼다.
어린 마음에도
‘러닝 머신 같은 건 함부로 집에 들이는 게
아니구나’ 했다.
어느 날 홈쇼핑의 마케팅에 넘어간 나는
집에 러닝머신을 들였다.
저게 있으면 원하는 몸매가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마음만은 비장했다.
엄마가 범한 역사를 기필코 되풀이하지 말자!
건조대로 생을 마감한 어릴 적 러닝머신의 넋을 기리며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
새 기계 냄새를 맡으며 땀내며 뛰고 있는데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랫집에서 너무 괴로워하니까 제발 뛰지 말라는 거였다.
‘망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이런것 좀 누가 미리 알려줬으면)
러닝 머신을 뛰면 아랫집에선 전쟁이 난다는 거
당황한 나는 환불하려고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전용매트를 사란다.
과연 매트를 깐다고 소리가 안 날까?
전용매트 호구가 또 될 수 없다.
그런데 약정이 되어있어서 환불은 불가능하단다.
나는 결국 러닝머신을 급매로 팔았다.
1분 1초라도 무용지물이 되는 게 싫었다.
그리고 나는 <걷는 사람 하정우>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래!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
둘 중 하나 선택하자
걷지 않으면 연기할 수 없는 하정우였고
달리지 않으면 쓸 수 없는 하루키였다.
나는 걷다가 뛰는 사람 그러니까 둘을 섞은 사람이 되었다.
앱을 깔아서 하루 만보를 채우자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만보를 채우지 않은 날은 밤에도 집을 뛰쳐나갔다.
그렇게 나의 야간 산책 루틴이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중요한 결정이나 판단은 모두 걷다가 하는 것 같다.
난 그날도 걸으면서 생각했다.
러닝머신 팔아서 뭐하지?
안 해본 짓을 하자
어른이 되면 어지간한 건 다 경험해 버리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귀하다.
그래서 안 해본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당일치기’로 도쿄를 다녀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괜히 당일치기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나 자신이 총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누구한테 말해버리면 미쳤다고 하겠지?
그깟 사람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만 간다.
미쳤다. 미쳤다고 여겼던 행동을 지금 실행하고 있는 짜릿함.
그런데 스트레스의 벼랑 끝에 내가 서 있으면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내 몸 안에 있는 용기를 탈탈 끌어 모아 가버리는 거다.
매번 다 쥐어짜서 이제는 정말 없다고 생각하는데 치약처럼 비틀어 짜면 나온다.
그래도 봄이니까.
그게 봄이니 더 쉬워진다.
봄이라는 핑계를 댈 땐 이 세상에서 최고의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고 보니 진짜 멋진 일은 봄에 일어나는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운명적으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날도 봄이었다.
요구르트 스왈로스 1번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날리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가 반짝하고 아주 작고 눈부시게 빛났고
불현듯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작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봄 햇살과 따뜻한 바람이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른다. 맥주는 거들뿐.
그래서 봄에는 무리도 하고 사치도 하고 억지도 써보고
이상한 곳에 기웃거려 보는 것도 좋다.
우선 짐이 없다. 정말로 여권 하나 달랑 들고 휘리릭 간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이래도 되는 건가?
그냥 될 대로 되라지 뭐
내가 당일치기로 도쿄를 간다 해서 죽는 건 아니니까
죽는 게 아니면 찰과상일 뿐이라 했다.
거창한 이유 같은 거 필요 없고 나는
그냥 오늘 하루 완벽한 봄을 만끽하기 위해 간다.
일탈의 대가가 큰 만큼 짜릿하다.
대가가 확실하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
두근 두근이 아니라 쿵쾅쿵쾅 대는 기분.
짐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내린다는 가벼움
이건 살아가면서 다시는 못 느낄 가벼움이다.
내가 오늘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가벼움이다.
출입국 카드에 호텔 주소를 안 썼다고 쓰라고 한다.
오늘 다시 돌아온다고 했더니 그럼 돌아 오는 비행 편을 쓰라고 한다.
당일치기 출입국 카드는 그렇게 써야 하는 거구나
나카메구로 벚꽃 터널 길을 걸으며 길에서 파는 생맥주를 들이켠다.
그제 서야 내가 보인다.
내가 나를 관찰하는 일.
일상을 벗어나서야 만 진짜 그 속에서의 내가 보이는 거다.
정말로 짜기 싫었던 게임을 짜고
진짜 이 프로는 그만두고 싶다고 몇 번이고
고민했던 이번 주의 내가 떠오른다.
게임프로를 다시 하면 내가 정말 사람이 아니다.
정말 게임 짜는 기계다.
그만둘까?
누구든 인생의 어떤 시기에 반드시 진지하게 한 번쯤 던져보았을 질문이다.
이미 여러 번의 허들을 연속으로 넘었다.
이번 껀 익숙한 허들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허들을 넘는 순간이다.
근데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시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생맥주 크림 위로 벚꽃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비가 온다. 같이 내려 벚꽃비다.
비가 오는 것 마저 좋다. 눈이 온다 해도 물론 좋을 것이다.
새하얀 벚꽃, 촉촉한 비, ‘가장 나 다운’ 나
그냥 완벽히 우리 셋만 있는 느낌이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냥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샤르르, 이 부드러운 목 넘김 만큼이나 아무것도 아닌 일.
이렇게 나다운 나 자신이 여기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아주 잠깐이라면 견딜 수 있는 거잖아!
나다운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면 짜고 싶지 않은 게임을 짜야한다.
내가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그런 순간 같은 건
실제론 아주 잠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다운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이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와 나 자신 사이의 왠지 모를 믿음이 생겨난다.
내가 나 자신을 믿는 것.
그건 타인이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감촉과는 또 다른 것이다.
얼굴에 부드러운 봄바람이 스친다.
힘든 시간을 아주 잠깐으로 여기는 감각이 생기고
휘리릭 잘 해치워 넘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붙었다.
이건 절대로 러닝머신 위에선 할 수 없다.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 순간만큼은 매번 두렵고 초조하다.
매일 아침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이 그러하듯이
짧든 길든 모든 여행은 늘 그런 불안함을 준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명한 일.
일상과 여행을 경계 없이 스무스하게 넘나드는 것도 능력이다.
그 실력을 집중적으로 갈고닦고 싶다.
이건 그때 그 시간 나카메구로에서,
벚꽃비를 맞으며 생맥주를 마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각들이다.
어학연수 시절 룸메이트가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문자가 왔다.
우린 청춘의 한 시기를 도쿄에서 보냈다.
늦은 밤 골목, 자동판매기에서 맥주캔 하나를 누르면
덜컹하고 번지점프하는 소리의 경쾌함을 알고
캔 맥주 치익 하고 나는 소리
오야코동 달걀의 포근함이나
초밥을 먹기 전 내 앞에 가로로 놓인 젓가락의 다정함
유통기한 직전에 긴급 세일을 하는 편의점 도시락의 오락가락한 맛까지
우리는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장마가 닥치면 어떤 마음을 중무장하고 자전거를 타야 하는지
작은 지진으로 땅이 흔들 릴 때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건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감돌았던 공기나 호흡했던 공기의 질감만은
분명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 몸에 도쿄 정신이 깃들어 있고
스스로도 모르게 도쿄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 동네를 걷는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느긋하게 굴고,
주춤거리고, 한심해지고, 망가지기로 하자.
인간 누구나에게 한심한 구석은 있다.
과도하게 분발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될 대로 된다”라고, 쿨하게 속삭여줄 것만 같은.
<안녕 시모키 타자와>
시모키타자와는 서울의 홍대와 비슷한 곳이다.
너무 빨리 가게가 없어지고 생겨서
그곳에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에 ‘수고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지켜나가는 일’
어쩌면 과도하게 분발하지 않으면 힘든 일 일지도 모른다.
대형 브랜드에 지지 않고 계속 그곳에 있다는 건 정말 노력하고 있다는 거다.
미소 빵으로 유명한 빵집이 있다.
그 대각선에 사이좋게 로스팅 커피가게가 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그 골목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미소 빵을 오물거리며 대각선 커피집으로 향하지 않곤 못 배긴다.
그렇게 마주 보고 서로가 서로 곁에 있어 준다는 것,
아무리 자본의 힘이 이 동네를 덮쳐오더라도
그 두 가게가 만들어내는 시너지에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가진 적당한 거리감이 그 골목을 더 든든하게 만든다.
룸메와 걸으면서 생각한다.
러닝머신 처분하고 그걸로 당일치기 오길 잘했다고!
내가 오늘 여기 오지 않았으면 이 골목에서 감도는끈끈한 분위기는 끝끝내 몰랐을 거라고.
오로지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오로지 걸으면서 발견하는 감각이 있다.
러닝머신 위에선 절대로 알 수 없는 인생이 있다.
당일치기의 매력이 훼손되는 것 같아
자고 가는 건 정중히 사양했다.
현실도피를 좋아하면서
막상 마음은 현실에 다 두고 오는 나란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