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어린 침묵

by 보리차

가끔 결혼생활을 유학생활이라 여긴다.

요즘은 가끔이 아니라

아예 이건 유학생활이라 명명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왕왕 있다.


그래, 큰 바다 건너 여기까지 온 건

내가 뭐라도 배울 게 있어서겠지

하면서 너구리를 끓이며 나를 다독이면 조금 나아진다.


책을 내고 한국일보 시카고 한인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종이 신문이라 어른들께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았지만

그냥 서랍에 넣어뒀다.

지난번에 시어머니가 내 말을 싹둑 자른 게 생각났다.

“다음 달에 제 소설책이 나와요.”

라고 말하자마자

“올여름에는 포도가 적게 열렸네.”

라고 했다.


“그래 제목이 뭐야? ”무슨 내용이야? “라고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다.

대단한 걸 바란 건 아니다.

남편이 나름 자랑하려고 신문기사를 시어머니에게 보여줬나 보다.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엄마가 이거 얼마 주고 냈냐고 묻더라.”

그 순간 너무 기가 막혀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첫 번째는 그런 말을 한 사람에 대한 충격,

두 번째는 그걸 고스란히 해맑게 전달하는 사람에 대한 충격.


“설마 그 말 밖에 안 했어? 다른 말은 진짜 안 한 거야?”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 뒤에 더 해괴망찍한게 나올까 봐

도저히 물어보기 두려웠다.

남편 붙들고

“도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낸 거야?”

라고 펑펑 울 거 같아서.

내가 왜 그렇게 우는지 조차 전혀 모를 거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우정어린 침묵을 택했다.

무언가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을 땐

그냥 우정어린 침묵이 , 생각보다 튼튼하다.


여기가 아니면 이런 공부 어디서 해?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오늘도 나의 유학생활은

진도가 꽤나 버겁다.

아이비리그보다 더 빡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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