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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un 23. 2021

부부 싸움하다 어디로 뛰쳐나가세요?

작지만 확실한 터닝포인트


"담배 하나 못 끊는 인간이랑 더 이상 못살아"


나는 뛰쳐나갔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나가버리면

바로 서울로 쌩하고 돌아가 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는 담배 때문에 임플란트 시술을 중단했다.

아니 중단당했다.

그리고 사계절이 바뀌는 동안 치아 없이 맹구가 되었다.

조카들 앞에서 그걸로 웃기는 인간을 보며 나는 혀를 끌끌 찬다.

그런 사람이 설마 있냐고? 여기 있다.

사실 이 문장을 쓰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사람과 살아가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미칠 것 같다.

그런데 내 쪽팔림을 뛰어넘는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오늘도 그는 퉁퉁 부은 잇몸으로 항생제를 먹고 있다.

이렇게 몸이 괴로운데 도대체 왜 때문에 담배를 안 끊는 거야?

못 끊는 게 아니라 안 끊는 게 확실했다.

말로는 오늘 담배 끊는다 하고선 뒤돌아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렇게 어이없는 인간이랑 아직도 같이 사냐고? 살려고 한다. (제발 사람 좀 살자)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처음엔 담배 문제를 뺀 나머지가 다 좋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날 공원으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 내가 이걸 포기하고 돌아가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런데 이걸 해결할 수 없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기분이 날 잡아 이끌었다.

나는 유튜브로 <북한에서 담배 끊는 꿀팁>이런 걸 찾아 시켜 보기도 하고

대화 중단 선언, 각방까지 써봤다.

(그 와중에 각방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를 발견하고 각방을 즐기고 있다.)

최후의 방법은 수갑을 채우는 것뿐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쩌다 보니 소리를 지르고 내가 도망칠 곳은 공원뿐이었다.

빈손으로 와도 상관없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다.

돈 없고 영어 못하는 이방인을 받아 줄 유일한 장소였다.


내가 아무리 치열하게 싸움을 걸어도 그는 공격 대신 수비만 한다.

이게 바로 그의 요상한 전략이다.

담배로 싸운 지 벌써 수백 번,

그럴 때마다 내가 공원으로 피신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깨끗하게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만신창이처럼 갈기갈기 찢어졌을 때

자동적으로 내발은 공원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바람에 수런거리는 작은 나뭇잎들,

그 틈을 비집고 뻗어 나오는 쨍 그란 햇살들,

주인이 던져주는 공으로 전력 질주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조금 전의 분노들이 사르르 녹아 버린다.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 문제로부터 거리두기가 되어 버렸다.

반짝거리는 큰 나무 바로 앞에 서있는 나는

비로소 그가 말없이 서 있는 나무처럼 느껴졌다.

영원히 공격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수비자이며

뿌리 깊은 지지자.

너무 당연하게 있어서 영원히 잃어버릴 일도 없을 것 같은 존재.


그래, 이빨이야 잃어버릴 수 있지만

내 글을 읽고 좋아하던 표정은

어떻게 해도 잃어버리기 싫으니까.

나도 내다 버린 내 꿈을 도로 주워서 가지고 오는 사람이니까.

더 좋은 글이 쓰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드는 유일한 얼굴,

내가 원하는 작가가 되도록 모든 걸 총동원해 서포트해주는 그 고유한 마음 말이다.


어쩌면 계속 담배를 피우면서

나 좀 살려달라고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그제야 내가 모르는 무수한 문제들과 싸우고 있는 그가 느껴졌다.


공원을 한걸음 씩 내딛다 보면 내 몸엔

'이걸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하고 저절로 리셋되는 감각이 열린다.

그 순간 작은 점이 찍혀버린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의 시작점


분명 뻥 뚫려 있는데

내 세계를 오롯이 감싸는 듯 아늑한 요상한 느낌

오직, 공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담배 끊으라는 말 대신

그냥 그를 공원에 데려다 놓는 행동을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우리는 공원에 간다.

매일 물로 샤워를 하듯이

매주 초록에너지 샤워를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담배 문제뿐만이 아니라

내 안에 엉킨 다른 문제들도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었다.

숲을 거닐 때마다 변화의 시작점이 찍혔다.

그 작고 여린 우리들의 터닝포인트,

모든 것은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부부 싸움하고 어디로 뛰쳐나가세요?

이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그게 어디인가에 따라 그다음의 이야기는

아주 많이 달라질 테니까


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고 나면
청혼했을 당시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게 되는 까닭에
(조안 헨리에타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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