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함을 빚어내는 일
시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울고 있다.
“우리 J는 애를 꼭 낳아야 해.”
얼마 전부터 우린 아기 없이 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종종 했고
그 잠정적 결론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왠지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머리론 알면서
내 맘대로 안 되면 울게 될 것 같은 내 뻔한 미래.
그래서 나는 부모가 된 다는 게 두렵다.
결혼 전 처음 시엄마가 했던 말이
“너희 둘만 잘살면 된다” 였기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너희 결정을 존중한다.” 이런 말이었다.
“저희는 샤르트르와 보부아르처럼 살 거예요”
“....”
“그러니까 평생 아이 없이 얽매이지 않고 산다고요.”
요즘 내 기분은 아이를 낳아 보진 않았지만 아들이 생긴 것 같다.
내 삶은 이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다.
낳기는 시엄마가 낳았지만 양육은 내가 하는 느낌 같다.
그는 초딩때 미국으로 이민 와,
몸은 커버렸지만 마음은 그때에 멈춰져 있는 것 같다.
바로 이 부분이 날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어른이 가질 수 없는 순수함에 놀라기도 하고
어떤 취약함을 내가 채워줄 수 있을 때 보호자의 느낌도 든다.
결혼하고 3개월 만에 남편은 몸무게가 10킬로나 늘었다.
“나 두 그릇 먹을 거야.”라는 말에 성장기 부모 마음이 뭔지 알 것 같고
집안 곳곳에 뿜어 놓은 방구를 맡고 ‘아 이게 구수하다는 아기똥이구나’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왜냐면 아이 앞에서 슈퍼 울트라 캡숑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 대신 나 자신을 키우기로 했다.
부모가 될 수 없었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앨런 L .워커/아이 없는 완전한 삶>
그 공원을 가기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날 빨간 머리 아기 엄마는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헤어 컬러가 확 튀어서 잔잔한 공원에 악센트를 찍는 느낌이랄까?
딱 보기에 학생처럼 어린 그 엄마 머리가 너무 특이해서
“아이 러브 유어 헤어스타일”
이라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내가 말을 걸었던 게 기억난다.
당연히 염색한 머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놀랐던 건 유모차 안에 있던 갓난쟁이 아기 머리카락이
엄마랑 똑 닮은 거였다.
아니 세상에! 감히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이 내린 시그니처였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 얽매이고 싶어 졌다.
그 풍경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우리의 시그니처를 남겨야 한다는 계시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록 그 빨간 머리에 정신이 팔려 충동적인 결심을 하고
이 일을 후회하고 자식 바보가 되거나 노예가 될지라도
나는 그걸 해야만 한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다.
모두가 자기만의 빨간 머리를 물려받고 태어난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애초의 선물 같은 것 말이다.
남편의 사르르 웃는 얼굴, 그것만이 날 구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배시시, 까르르, 빙그레, 생글생글, 하하하 가 아닌
밝은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사르르다.
그 순간 세상을 밝히는 초능력 같은 거.
내 주변 나쁜 기운을 싹 걷어내고 투명한 보호막이 쳐지는 느낌이랄까?
남편의 아빠를 처음 본 날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 사르르 웃음이 아빠를 쏙 빼닮은 것이다.
<힘센 여자 도봉순>처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내력 같아 보였다.
이 사르르 웃음의 대가 끊긴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내손으로 끊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쏙 빼 담는다는 감촉, 너무 아름답지 않나?
이 지구에 조용히 머물다가 사라 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떤 흔적을 구체적으로 남길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다.
고유함을 빚어내는 일,
그 어떤 성취보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해볼 만 해
거기다가 지금 가장 궁금한 건
그의 웃음과 내 웃음이 섞인 아이는 어떻게 웃을까? 보고 싶어 미치겠다.
아마도 으랏차차사르르?
https://youtu.be/XZ885mnq5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