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여름밤

서로의 별이 되어 주는 일

by 보리차

도쿄에서 1년간 살아봤기에 조금은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추억이 유쾌했기에 난 영어권 나라에서도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 막연한 버킷리스트가 얼떨결에 성사될지는 몰랐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소름 끼치는 경험은

내가 무의식으로 하고 있는 생각과 말이

나도 모르게 현실이 된다는 거다.


오레곤? 난 그런 주 이름이 있는지도 몰랐고

소개팅 남이 거기 산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집은,

커피와 맥주를 좋아하는 친구가 나중에 꼭 같이 여행 가자고 했던

바로 그 포틀랜드였다.

그렇게 나는 결혼과 동시에 이민자가 됐다.

“그럴 거면 포틀랜드 왜 갔니?”라는 말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될 정도로

하루라도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힙한 도시에 살고 있다.


코로나 19로 모든 것이 변했고

일본에 살았던 해외 살이 추억과는 전혀 다른

아니 어마어마하게 조마조마한 세계를 살고 있다.


가장 날 쪼그라들게 했던 건 동양인 혐오 사건이었다.

뉴스에서는 가장 자극적인 것들만 경쟁하듯 보여준다.

내가 맞은 것도 아닌데 두 뺨이 얼얼해지는 치욕적인 영상들.

나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지 싶었다.


쭈구리 심정으로 동네 마트에 장 보러 갔을 때 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고 그 일들에 대해 내가 대신 사과한다고 미안하다고…

언어를 뛰어넘는 진심의 뭉클함이 느껴졌다.

이런 인사를 건네는 이가 있다는 건 뉴스거리 조차 되지 않는다.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뉴스보다 내가 직접 체험한 이 순간들을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엔

남편이 사준 호신용 스프레이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동양인 혐오 사건이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두려움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큰 위안이 되었다.


인종차별 같은 게 힘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내가 바보가 되었다는 절망감이었다.

일본에 살면서 언어 때문에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그만큼 일본어는 빠르고 자연스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영어는 아직도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교실에서 배운 I’m going to 그러니까 ‘아임 고잉 투’는

현실에선 ‘암느’가 되었다.

알아듣는 척하느라 소스 없는 샌드위치를 먹은 적도 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서러운 적은 있어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영어공부를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던 심정이었다.

그런데 내게 ‘미치도록 영어를 잘하고 싶은 순간’이 생겼다.


집 앞 공원에서 꼬마 남매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 러브 유어 팬츠”

난 내 귀를 의심하고 다시 선명하게 듣고 싶어서

“왓”

그러자 옆에 있던 더 작은 꼬마가

“아이 러브 유어 애브리띵” 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할 때 터지는 폭죽처럼, 순간 무언가가 터졌다.

동시에 그 워딩은 아주 선명하게 내 귀에 박혔다.

그게 내가 평생 들어왔던 영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누군가 나를 지지해 준다는 감촉,

그 말이 내겐 너무 큰 용기가 되었다.

아마도 이민가방을 싸들고 미국 땅에 첫 발을 디딘 그날이 아니라

이날이 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되는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바지는 내가 미국으로 오기 전 재봉틀 수업에서 만들었던 거였다.

출국날짜를 앞두고 기술 하나라도 더 익혀야겠다는 강박에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배우고 다녔다.

꽃무늬 원단을 직접 고르고 디자인도 요리조리 고쳐보고

모든 과정에 내 피땀이 묻어있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나만의 바지란 말이다.

그 바지는 낯선 곳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나의 의지를 상징한다.

세상에, 그걸 알아봐 주다니!

우린 통했어! 너희가 나의 소울메이트다.

이 말을 다 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 감정을 납작하게 접어 땡큐로 끝냈다.

나는 그들을 붙들고 더 말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 희귀한 순간을 연장하고 싶었다.

알아봐 주어서 고맙고 말 걸어 주어서 고맙고

영어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고.

외국어를 할 줄 알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말, 바로 이거였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남매와 더 깊은 영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는 영어를 정복하고 싶어 졌다.


여태껏 영어공부를 안 하고 뭐했냐고?

그동안 내가 영어에 쏟아부은 시간을 생각하면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심정이다.

어제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아직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특히나 영어에 취약한 DNA가 내 안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이 부분에 대해 연구하실 분은 신속히 연락바람!)

그러지 않고서야 영어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내가 공들인 시간과 돈, 다 어디 간 거야?


눈뜨자마자 일본어를 공부한다는 박진영이 외국어 공부는 타이밍이라 했다.

뇌가 가장 깨끗한 기상 직후에 그처럼 나도 영어공부를 한다.

어떨 땐 일어나자마자 유튜브 영어채널을 켜놓은 나를 보면 로봇 같다.

자기 전에 못 알아듣는 영어 팟캐스트를 틀어 놓은 나를 보면 조금 불쌍해지기도 한다.

나 왜 이러고 살지? 싶은 날은 손흥민의 독일어 인터뷰 영상을 본다.

공을 가지고 노는데 천재인 줄 알았는데 언어를 가지고 논다.

독일어가 유창한 손흥민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타일러 영상을 꺼내 본다.

영어로 Put it on 이면 될 것을

한국말로는 모자를 쓰다, 외투를 걸치다, 마스크를 쓰다, 립스틱을 바르다.

외상으로 달아 놓다. 귀걸이를 끼다.처럼 동사가 다 달라진다.

타일러의 입장이 되어보니 와, 한국어는 진짜 손 많이 간다.

그래서 더 섬세한 감정과 정서를 가질 수 있었지만..

뒤집어 보니 내 모국어가 한국어인 게 다행스럽다며 나를 달래기도 한다.


수영장에서 나와 물기를 털며 집으로 걸어오는데

이상하게도 집 앞 공원을 들러 가고 싶었다.

이 공원엔 쏘울 메이트 남매와의 추억이 묻어 있어

단지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텅 빈 공원에서 누군가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멕시코 말은 특유의 쾌활한 억양이 있다.

물론 그건 스페인어지만 멕시코 인들을 거치면 듣는 사람도 텐션이 높아진다.

나와 같은 이방인이 모국어로 가족과 통화하고 있었던 거다.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이 내게도 전해졌다.

둘 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각자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범죄 없음을 확인받아야 하는 일

전염병이 없음을 증명하는 일

수입 내역을 검사받는 일

매뉴얼대로 다 준비했는데도 관공서에서 거부당하는 일

전화기를 붙들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계속 다시 전화하라는 일을 당하는 일

거부를 당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은데 그걸 알 길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된 것처럼)

그런 순간을 수없이 맞닥뜨리고

그 기분을 이방인의 일상으로 인정하는 일

그것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구겨진 내 기분을 챙기는 일

바다를 보러 가거나 쿠키를 굽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꽃을 사거나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방식을 모색하는 일

고향의 쏘울 푸드를 먹고 다시 기운을 차리는 일(김치찌개에 밥 말아먹고 나면 희한하게 괜찮아지는 미스터리)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이 되는 일

그리고 동시에 더 단단해지는 일


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모든 경험을 나와 마찬가지고 하고 있다 생각하니

요상한 전우애가 느껴졌다.

매일 영어와 싸우며 아직도 벙어리로 머무는 기분이지만

그런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여행자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별이 되어 주면서

스스로가 선택한 풍경을 걸어가고 있다.


이 여름밤의 광채를 잊지 말자!

언젠가 우연히 쏘울 메이트 남매와 재회할 그날을 떠올리며.

지금, 영어 공부하러 갑니다.





왜 사람들은 이동할까?

무엇 때문에 뿌리를 내리고,

모르는 게 없던 곳을 떠나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로 향할까?

왜 스스로를 거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겉치레투성이인 곳에 오르려 할까?

왜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고 힘겨운 이국의 정글로 들어갈까?

어디서나 대답은 하나겠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면 이주한다.


-<파이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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