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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ul 16. 2021

시엄마의 팬이지만 그렇게 살긴 싫어

나쁜 여자의 길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엄마는

이 집안을 구한 히어로이며

아마 전쟁 중이라면 장군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시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녀는 30대 중반 초딩아들 2명과

사고 친 남편과 함께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집으로 도망을 온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을 그녀에겐

자식이라는 보물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후, 이 집에서 본 가장 놀라운 광경이

시엄마는 큰비지니스의 경제를 이끌고 가는 와중에도

모든 집안일을 내 손으로 한다는 거다.

더 신기한 건 밥상을 한정식집 수준으로 차린다.

마지막 코스는 늘 누룽지인데

미국에서 항상 이렇게 밥을 차려온 시간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너무 과도하게 많은 그릇들이며

쓰지도 않고 모셔둔 고급 찻잔을 보면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 방대한 식기류 양 때문에 식당 했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시엄마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오시는데

미국에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은대구찜부터 시작해서 각종 산해진미를 해놓고 가신다.  (고향이 부산인데 은대구찜은 미국에서 처음 맛보았다)

시엄마 음식을 뷔페식으로 즐기는 나


그런 그녀의 열정에 가끔 질릴 때가 있다.

예쁘다고 꽃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꽃이 썩는다.

이 과도한 열정 때문에

마흔 넘은 아들은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고

심지어 지금은 라면조차 안 끓인다.     


시엄마가 오실 때 나는 평소대로 엉망진창인 냉장고를 유지한다.

행여나 정리를 잘하는 며느리로 오해할까

초반부터 내 원래 모습을 보여드렸다.    

 

시엄마가 다녀가는 시점엔 내게 고통의 나날이 시작된다.

도무지 어디에 뭐가 있을지 모를 정도로

냉장고가 미어터진다.

요리를 좋아하는데 식재료를 사서 쟁여 놓는 건 사랑하는 것 같다.

시엄마 기준에 맛이 없다는 이유로

다진 마늘 하나도 내 손으로 못 산다.

작은 디테일이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맛의 범위에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미국이라도 내가 사는 곳은 한식 재료를 구하기가 힘든 곳은 아닌데

두부를 새벽에 공장에 가서 신선한 걸 직접 떼 오신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제발 우리는 가정집이라고요, 누가 보면 두부 장사하는 줄.....’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유통기한 내에 다 먹을 수 없다.

미국집 구조가 차고도 넓고 팬트리도 넓은 게 악의 축인데

그 넓은 곳을 자꾸만 채워놓는다.

양파, 감자 이런 기본적인 거 말고도 과일은 더 문제다.

하나가 조금씩 상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걸 버리지 않고 다 먹어치워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다른 일은 뒤로 젖혀 두고 온전히 먹는 일에 내 에너지를 다 쏟는다.

요즘 내 인생 최대 고민이 바로 이거다.

정리 안 하고 사는 자유분방한 며느리는 될 수 있는데

제발 집에 먹을 거 그만 사 오라는 그 말 만은 차마 못하겠다.

예전의 나라면 했을 수도 있다.

그 일이 있기 전이라면 적어도      


시엄마는 한국에 물건 하러 두 달에 한번 정도 가는데

유독 이번엔 체류가 길어지면서 돌아오는 표를 여러 번 바꿨다.

게다가 친구가 세금 문제로 갑자기 미국에 들어오게 돼서

그걸 도와주느라 또 비행기표 날짜를 바꿔야 했다.

(이 부분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서 그 까다로운 코로나 검사 예약을 다시 해야만 했다.

그런데 시엄마는 모든 상식과 절차를 쌩까고 한방에 그 일을 처리했다.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서 사정사정을 하고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순발력, 유두리, 그날의 운 모든 게 맞아떨어진 기적이었다.

첨엔 그 매콤한 무데뽀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끊고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인천공항 코로나 검사 센터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말조차 섞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엄격하다.

그 상황을 겪어본 나는 그걸 너무도 잘 알기에

전화를 끊고 그 먹먹함에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결혼이란 우리 둘 이외의 문제로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시엄마에게 요상한 우정이 생겨버린 것이

어쩌면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 해결한 일들이 백만 개쯤 있었을 거고

그걸로 다져진 강인한 생활력이 지금의 생활을 만들었겠지?     


갑자기 나는 결혼을 하러 여기에 온 게 아니라

평생 아들바보로 사느라

진짜 자신의 시간을 가져 본 적 없는

이 바보 같은 사람을 구하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도 종종 이야기 하지만

“난 오빠보다 오빠 엄마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좋아하지도 않는 스타일의 잠옷을 시엄마가 자주 선물하는데

내가 그걸 입고 자는 걸 보니 정말 찐우정이다.

(남편은 배우자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이걸 구경한다)


시엄마가 좋다.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같은 여성으로서 제발 부탁이니

이제는 자식들 요리해 줄 시간을 자신만을 위해 쓰라고 하고 싶다.

어쩌면 시엄마에게 요리는

먹고살 수는 있지만 사회에 동화될 수 없는 외로운 미국 땅에서

작은 숨구멍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요리할 시간에 영어를 배우라고 하고 싶다.

이민생활의 즐거움은 영어 구사능력과 비례한다고 했다.

영어 세상에서 영어를 모른다니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텐데

30년을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파도치는 바다에서 수영을 못하면서 버틴다는 게, 도저히 그 심정을 헤아릴 길도 없다.

시엄마가 영어를 모른다는 것에 정말 놀랐지만

영어를 모르면서 그 큰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이 말을 하는 덴 용기가 필요하고

더 이상 욕심내면

그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고민을 매일 하면서

오늘도 시엄마가 해준 은대구찜을 환장하며 먹는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가 내게 준 찬밥이 떠올랐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서울에서 내려온 딸에게

전자레인지에 데우지도 않고 당당히 찬밥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집안일하기 싫다고

밖에서 사 먹자고 했다.

엄마가 요리에서 손을 놓았지만

옷을 사고 화장을 하고 구두를 고르는 일은 더 열심히 했다.     


시엄마가 요리 피플이라면

친정엄마는 패션피플이다.

둘은 모든 게 정반대의 스타일인데

딱하나 겹치는 게 바로 아들바보라는 거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축복이자 저주는 아들이라는 존재 같다.

그런 그녀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아들이 뭔데?

왜 항상 져주는 건데?

왜 항상 아들의 관심에 굶주려 있는 건데?

왜 아들은 극진히 대접하면서 자기 자신에겐 안 하는 건데?

왜 아들을 독립시키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 안에서 꽁꽁 보듬고 있는 건데?


왜 아들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멋진 여성의 인생을 갉아먹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건 내가 아들을 낳더라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지

그녀들도 물론 모르겠지만.     


착한 여자는 천당을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좀 더 이기적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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