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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ul 23. 2021

나 자신에게 자꾸 기회를 주고 싶어서

미국고딩에게 배운것


“글쎄, 대학은 안 갈 거고 스트립 걸?”

10년 뒤에 어떤 모습일까를 인터뷰하는

고딩 브이로그에서 튀어나온 대답이다.


https://youtu.be/IWyuYFkbbbc

유튜브채널[Korean Jaeho]




여기서 느껴지는 싱싱한 자유가 너무 좋다.

이 유튜브는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국 학생이

담아내는 일상인데 그 어떤 시트콤보다 훨씬 재밌다.

왜냐면 진짜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브이로그에서만 느껴지는 생기를 좋아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 덩어리들이 몽글거리고 있다.     


나라면 뭐라고 했을까?

저렇게 물어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시절 시험문제를 푸는 것에 서툰 인간은 그냥 패자였고

오로지 문제 하나를 더 맞추냐 아니냐로 미래가 결정되는 듯했다.     


난 유학을 가고 싶었으나 K장녀의 저주로 좌절됐다.

그래서인지 늘 외국학교에 대한 동경이 있다.

미국에서 초중고대를 나온 남편이랑 이야기할 때

종종 그 질투심이 삐져나온다.

그 부러움이 숨겨지지 않았는지

그는 처음 미국 와서 영어 못했을 때 특수반에 들어 간 이야기를

골백번 하며 실드를 친다.

그때 만해도 인종차별이 지독했던 지라

찢어진 눈을 손으로 만들며 놀렸다고 한다.

그가 아무리 굴욕적인 이야기를 꺼내어도

내가 당한 치욕보다는 귀여운 수준이다.     


미국에 와서 본 가장 설레는 풍경은

노란 스쿨버스가 설 때이다.

이때 도로에 있는 모든 차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조용히 멈춰 선다.

학생들이 안전하게 길을 다 건넌 후에야 움직인다.

“우리는 너희들을 이렇게 지켜보고 있단다”

그런 진심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아니 이렇게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존중받고 있는데

어떻게 삐뚤어질 수가 있지? '라는 의문이 든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미국은

임신한 친구도 나와서 수업을 들었다는 거였다.

한국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바로 퇴학이었다.

어떤 경험을 조금 일찍 했을 뿐인데

그걸 숨기기보다는 이렇게 앞으로의 길을

같이 모색해 줬다면 어땠을까?     


난 이제 남편이 겪은 하이스쿨 이야기보다

이 브이로그를 통해 내가 동경했던 세계를 구경한다.

진짜 정말 부러웠던 장면은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한쪽 구석, 주식에 빠진 친구의 모니터였다.

그 정신 나간 표정을 나는 너무 사랑한다.

(미국에선 초딩때도 주식을 접하게 해주는 학교가 있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주식을 알아서

엄마가 나에게 퍼부은 과외비로 애플 주식을 샀더라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주식은 단순히 돈을 버는 재미가 아니라

시대를 읽어내는 즐거움이 있다.

그걸 고딩 때부터 한다면 그 뒤는 말해 모해     


문제 푸는 기계를 만드는 이상한 학교에

내 시간과 청춘을 바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하다.

나는 학교를 자퇴하지 않고 꾸역꾸역 다녔던 걸

아직도 내 인생의 흑역사라 생각한다.

그 흑역사 중에 내가 소름 끼치게 싫었던 건 필기만 시키던 선생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책의 내용을 그대로 필기만 시켰지만

그것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만 하던 우리들이었다.


저질 악질 쓰레기 선생들 많았지만

(물론 좋은 선생님도 아주 많으셨어요)

돌이켜 보면 필기만 시켰던 무기력한 선생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학생을 뭘로 본 거지?

그 치욕을 떠올리니 견딜 수 없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나에게 따져 묻고 싶다.

왜 그냥 병신같이 가만히 앉아 있었냐고?

왜 모든 규칙과 그래야 하는 것 그래 왔던 것에

가만히 순순히 따라왔냐고?

나는 종종 이 미국고딩 브이로그를 보면서

억압된 학창 시절을 그냥 가만히 보낸 것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 같다.

어떤 무기력의 형태가 날 찾아올 때

그 시절의 뒷짐을 떠올려 본다.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시절을 끄집어 내 쓰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잊지 않고 간직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시험문제를 푸는 기술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

그걸 못한다고 해서 독서실에 앉아 애쓰지 말라고

그 대신 니가 좋아하는 점심방송에

전교생을 뒤집어 놓을 웃긴 사연을 소개하고

요상한 선곡을 하고

방송반 활동에 미쳐 집에도 안 들어가고

학교에 엄마를 불려 오게 해서

“공부 말고 방송반에 미쳐있어서 큰일입니다.”

이런 소리를 듣게 만들어도 괜찮다고

  

무엇에 어떻게 정신이 나갈지

그 시대를 읽어내는 감각을 키우는 키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미국 이민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던 일을 계속해나가고 싶다.

이게 지금 내 인생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내가 자꾸 이 유튜브를 보는 이유는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싶어 진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진다.


유학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막상 그런 기회를 가진 지금이 되니까

대학원 따위에 가고 싶다는 욕심은 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많이 공부한 교수에게서 지도를 받는 것보다

아직 배운 게 많지 않은 유튜브 속의 고딩에게서

더 소중한 것들을 배우는 것 같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어떤 학교를 나왔다는 타이틀보다는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욕망하는지를 뾰족하게 찾아내은 것이다.

   

타인의 성취를 동경했던 가짜 감정들을 걷어내고

'오로지 진짜 내 마음을 울리는 욕망'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10년 뒤에 어떤 모습일까?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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