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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ul 28. 2021

불멍 말고 잼멍, 좋아하세요?

블루베리가 날 비웃던 순간

시 엄마가 두고 간 어마 무시한 양의 블루베리 때문에

전전긍긍 발을 동동거렸다.

냉동으로 얼리는 건 죽기보다 싫다.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블루베리를

잼으로 구제하기로 했다.


잼을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바보처럼 보였다.

그깟 잼 하나 만드는데 많은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잼 하나를 사면 유통기한이 끝날 때까지

다 먹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다.      

숟가락으로 곰팡이 쓴 잼을 걷어내고

병을 씻기가 귀찮아서

이제 잼 같은 건 사지 말자 다짐했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잼을 만들게 됐다.


블루베리를 씻고 물기를 털어내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리고 설탕을 듬뿍 넣는 것

이렇게 많은 설탕이 들어간다는 것에 경악했지만

적게 넣으면 빨리 상한다고 했다.

계량은 하지 않았다. 그건 왠지 시시하다.

내 눈대중의 느낌으로 설탕을 쏟아부었다.

실패하더라도 나만의 잼을 만들고 싶다.

잼 만들기 쯤이야 언제든 망할 준비가 되어있다.     


설탕과 블루베리를 섞어 불을 켰다.

한 10분쯤 지났나?

누가 여기다가 마술이라도 부린 건지 대홍수가 났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몰랐어?’ 라듯이 본색을 드러냈다.

세상에! 블루베리가 이렇게나 많은 수분을 품고 있던 거였다.

이미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몰랐던 거다.  

그 순간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부풀어 오른 내 무기력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노아의 방주 feat.블루베리


블루베리가 날 놀래 켰듯이

나는 그런 블루베리가 되고 싶었다.

그 물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블루베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설탕을 만났기에 가능성이 뽑혀 나왔다.

설탕과 엉겨 붙어야 새로운  태어난다는 거다.

그렇다면 내게 설탕은 남편일까? 아니면 포틀랜드일까?     


잼을 졸이면서 좋았던 건 어린아이처럼 계속 돌봐야 한다는 거다.

혹시나 탈까 봐 조심스레 저어야 하는 손길이 꼭 나 자신을 돌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좋았던 건 팔팔 끓는 물에 병을 소독하는 과정이다.

그걸 보고 있으면 머릿속의 온갖 잡념들이 수증기와 함께 날아간다.     

잼을 졸이는 건 시간낭비가 아니라 요상하게 빠져드는 휴식이었다.

드디어 잼멍의 맛을 알게 됐다.

지금 나는 이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진을 전송하면서

어서 집에 굴러다니는 과일로 잼을 졸이라고 난리를 쳤다.

“불멍보다 잼멍이 최고야.”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잼을 만들어 봤다.

남이 만든 잼을 먹는 나와

직접 졸인 잼을 먹는 나는

너무도 달라졌다.

역시 내 몸을 직접 통과한 경험만이 내 것이 된다.     


만약 내가 오늘을 놓치고

먼 훗날 잼을 졸이게 됐더라면

오늘처럼 이런 감격은 느끼지 못했을 거다.

한아름 물기를 숨기고 있던 블루베리의 반전이

내 무기력을 비웃고 있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되었다.     


블루베리는 언제든 잼이 될 수 있지만

잼은 다시 블루베리가 될 수 없다.

잼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으면

과감하게 망설임 없이 잼을 졸여야 한다.    

 

과일을 잼으로 졸이는 과정은 글쓰기와도 비슷한 것 같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자신에게는 특별나게 기묘한 순간들이 있다.

나만의 의미를 간직하고 싶어 잼을 졸이듯 글을 짓고 있다.

신선한 블루베리가 버려지는 게 두렵듯이

일상의 생생한 감각들이 잊혀 질까 두려워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를 찰나들을

말로 표현하기에 도저히 어렵고 복잡한 감정들을

나는 계속 써 나가고 싶다.     

 

남편은 잼을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며

팔아도 되겠다며 좋아했다.

(맛에는 까다로운 모진 독설 전문가)

혼자 신이 나서 다음엔 딸기잼을 만들어 보란다.

좋아하기 때문에 팔고 싶지 않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뮤지션이 되지 않았듯이

글쓰기를 사랑하지만

밥벌이가 되긴 싫다.    

  

‘좋아하는 감정’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싶다.

이런 겉멋을 여유롭게 부리고 싶지만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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