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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09. 2021

까치발을 들어 손을 뻗어야 닿는 높이를 좋아해

이방인의 입장권

집에서 10분을 걸어가면 한인마트가 있지

나는 그 장 보러 가는 길을 마치 서울로 여행 가듯 준비를 해

놀 준비는 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해     


오늘은 그 길에서 기차를 봤어.

그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거 말고

동시에 각자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기차들

그러니까  기차들이 서로를 스쳐지나  거지     


무심코 펼친 책에 밑줄을 긋다가

하염없이 얼어붙을 때처럼

그런 순간이었어

‘무언가가 시작되어 버린 느낌’

나는 그런 찰나를 수집하려고 태어났어

도저히 인스타 같은 곳에선 나눠가질 수 없는 전율이나 떨림     


돌아오는 길목 블랙베리가 탐스럽게 익어 있길래

까치발을 들어 손을 뻗었어

나는 그 높이를 좋아해

그냥 손이 닿는 건 시시하거든     


그건 외계인의 디저트였어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았는데

내가 이만큼 멀리 떠나왔구나 실감했어     


어떤 세계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다른 세계로 처박히는 일


뿌리를 내리려는 안간힘이 없어도 괜찮아

꼭 연고지를 떠나야만 되는 것도 아니야

까치발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방인이 될 수 있지     


P.S. 바다가 보이는 마을 <마녀 배달부 키키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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