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입장권
집에서 10분을 걸어가면 한인마트가 있지
나는 그 장 보러 가는 길을 마치 서울로 여행 가듯 준비를 해
놀 준비는 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해
오늘은 그 길에서 기차를 봤어.
그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거 말고
동시에 각자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기차들
그러니까 그 기차들이 서로를 스쳐지나 간 거지
무심코 펼친 책에 밑줄을 긋다가
하염없이 얼어붙을 때처럼
그런 순간이었어
‘무언가가 시작되어 버린 느낌’
나는 그런 찰나를 수집하려고 태어났어
도저히 인스타 같은 곳에선 나눠가질 수 없는 전율이나 떨림
돌아오는 길목 블랙베리가 탐스럽게 익어 있길래
까치발을 들어 손을 뻗었어
나는 그 높이를 좋아해
그냥 손이 닿는 건 시시하거든
그건 외계인의 디저트였어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았는데
내가 이만큼 멀리 떠나왔구나 실감했어
어떤 세계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다른 세계로 처박히는 일
뿌리를 내리려는 안간힘이 없어도 괜찮아
꼭 연고지를 떠나야만 되는 것도 아니야
까치발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방인이 될 수 있지
P.S. 바다가 보이는 마을 <마녀 배달부 키키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