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도 못가는 똥쟁이들

꿀의 안부

by 보리차


[날 생각하면 무지개 색 중에 무슨 색이 떠올라?]

[똥색]

[아니 무지개 색 중에서 고르라고!]

[노란색]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심리 테스트인데

남편에게 문자로 물었더니 대답이 똥색이란다.

그런데 나는 똥색이 좋다.

누가 볼까 남사 시럽 긴 한데

우리 둘은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히죽거리는 꼬마들처럼 자주 똥똥거린다.

서로 질세라 똥을 끄집어 내려 달려든다.


결혼하고 한 달쯤이었나 아직은 서로를 탐색 중이라 여기던 때였다.

쇼핑 가던 길이었는데 남편이 급히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성급하게 이 중대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처럼.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그는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똥이다.


보통사람이라면 거의 다 도착한 쇼핑몰 화장실에 가지

왜 굳이 집까지 왔냐고 물었겠지만

나는 그의 컴백홈을 격하게 지지한다.

그가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 것에 요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에게 똥을 위한 최선의 공간을 주고 싶다는 점

그게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어떤 것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점


그 사건으로 우리의 우정은 더 끈끈해졌다.

똥을 향한 세계관이 이토록 일치하는데

그런 우리에게 어떤 갈등이 있을까?


미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게 사실 공공 화장실이었다.

칸 아래 부분이 넉넉히 뚫려있어 옆사람 발이 훤히 보인다.

나만의 작업에 몰두가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으며 견뎌왔다.

그런데 그가 똥을 위해서 차를 돌려 달려오는 사람이란 걸 그날 알았다.

만약 내 얼굴이 꽃이었다면 그 순간 활짝 피었을 거다.

‘그 느낌을 나도 좋아해’

어떤 설명 없이도 같은 마음이라는 게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


정리는 하지 않고 살지만 화장실 변기는 매일 닦는 인간이 나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내게 화장실 공포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건 무인도 촬영 때다.

진짜 무인도여서 화장실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간이 화장실을 세웠다.

간이 화장실이란 단어만 들어도 질겁을 한다.

그 안을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싫다.

5일 동안 아침에 배를 타고 들어가 해질 때 나와야 했었다.

그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물을 먹지 않고 버텼다.

그 섬에서 두 끼의 도시락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무슨 광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진짜 내가 화장실을 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나 자신이 무너질 거 같았다.

아마 백 명이 넘은 스태프 중에 화장실을 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나였을 거다.


지금도 지나가다 간이 화장실을 보면

어떤 무언가가 나를 짓누른다.

동시에 ‘세상이 나한테 왜이래’싶을때

저기 안들어 가는 게 어디야 하며

갑자기 행복해지기도 한다.

포틀랜드 공원에선 그 간이 화장실이 자주보인다.

“현진아~허니버켓이다!!!”

남편은 이게 보이면 나를 놀리느라 신이 난다.

간이 화장실 회사 이름이 기가 막히다.

꿀단지라니…

우리는 저 회사의 네이밍센스에 감탄하며

그 이후론 우리도 그것을 꿀이라 부른다.

“살찌니까 꿀 닦기 힘들어.”

“나 오늘 꿀 두번쌌어”

이런 식이다.


전쟁이 나도 대포를 피해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똥을 쌀 인간들이다.

이 동질감이 주는 위안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이 안 된다.

똥 얘기는 무한 공유하지만 냄새는 절대 비밀이다.

집에선 각자 변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지만 여행을 가면 고역이다.

그런데 얼마전 스위트 룸을 업그레이드 받게 되면서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맞이 하게 됐다.

화장실이 두개인 것의 쾌적함, 그 어떤 가치보다 우리에겐 컸다.

그 별것 아닌 편리함에 갑자기 우리는 생의 의욕이 치솟았다.

열심히 살아서 꼭 여행은 스위트 룸에서 자자고 대동단결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캠핑이 두렵다.

포틀랜드만큼 캠핑하기 끝내주는 곳도 없다.

아직은 화장실이 두려운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답사라는 걸 가봤다.

때마침 화장실을 갈 수밖에 없어서 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우리는 자고 오는 캠핑 말고 잠시 머물다 오는 캠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건 그것대로 매력 있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화장실보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것이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타인이 보면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본인도 같은 입장인 사람과 함께 살아 다행이다.

이 별것 아닌 충만함이 오늘 하루를 채운다.


엄마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중환자실에서

아빠는 의사를 붙들고 물었다.

다름이 아닌 엄마 '똥의 안부'를


당시 우리는 엄마가 곧 숨을 거둘 거란 걸 전혀 모른 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 전전긍긍했다.

그런 절박한 순간임에도 피식 웃음이 났다.

처음엔 온갖 갖은 깔롱을 다 부린 남녀로 만났다가

마지막엔 상대 똥의 안부를 물어보는 전우가

부부 사이라니...

그게 결혼의 구질구질한 특별함 아닐까

어쩌면 그 순간이였던 것 같다.

'내 똥의 안부를 물어봐줄 누군가가 평생 곁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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