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코로나라 고마운 게 있어
“내일 닦으면 돼.”
자기 전에 이 안 닦고 자려고 갖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침대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안 나오는 아이를 보면
오은영 박사는 뭐라고 할까?
껍데기만 어른이고 속은 꼬맹이랑 산다.
저걸 못 고친다 해도 좋다.
제발 이유라도 알고 싶다.
“이 안 닦고 자는 사람이랑 친구 하기 싫어, 말 걸지 마!”
아침부터 묵언수행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는다. 수를 내고야 말겠다!
“내가 킹덤 쓴 김은희 작가가 아니니까 이러지?
도서관 다니는 한량이라 내 말은 안 듣는 거지?”
남편은 킹덤의 광팬이다.
요즘 내가 미는 유행어가 저 말이다.
나는 마치 미국에 와버려서 드라마를 못 쓰는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이걸 반복하다 보니 나 스스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 자신이 맘에 안들 때마다 남편의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낸다는 거다.
그러니까 남편은 꾸준히 이를 안 닦고 자는 사람인데
그것에 화를 내는 날은 내 자신에게 화가 난 날인 것이다.
이걸 알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거다.
종종 생각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벌써 한국으로 갔을 거라고...
분노조절에 서툰 나는 화가 나면 일단 빛의 속도로 도망을 간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게 진심인가에 대한 통과의례가 생겼다.
코로나 검사 결과지를 가져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충동적 입국은 불가다.
그 시스템이 우리의 안전장치가 됐다.
사실 이민 온 날 , 그날은 내 인생에서 특별했기에
남편이 미리 나와서 꽃다발 들고 기다릴 줄 알았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는 너무 일찍 도착했고
나는 짐을 들고 그를 기다려야 했다.
지나고 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그 순간만큼은 요상하게도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 꼬라지가 왠지 우리의 앞날을 상징하는 거 같아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짐을 내팽겨 치고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택시처럼 아무거나 잡아타고 가면 될 것 같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친구들이 놀리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왔네?”라고
우리 아빠만큼은 날 응원할 것 같았다.
그런데 코로나라서 출발하는 비행기도 없었고
있다 해도 코로나 검사 확인증이 필요했다.
텅 빈 출국장 앞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가 달려오면서 슬라이딩으로 무릎을 꿇는데
바닥이 얼음판인 줄 알았다. 어쩜 그렇게 부드러워? 바로 남편이었다.
세상에 이런 걸 잘하네? 그 장면이 진심으로 웃겨서 울다가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런 소동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
서로가 발견해주지 않으면
평생 드러날 일 조차 없는 찌질함을 마주할 때
결혼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남편은 수틀리면 확 저지르는 분노 조절장애 인간이랑 사는 요령을
조금 터득한 것 같다.
미국이라고 해서 더 넓은 세상에 던져질 줄 알았다.
여름이면 열리는 포틀랜드의 다양한 축제 중에
누드 자전거 대회는 꼭 가보고 싶었다.
팬데믹으로 손발이 묶여버린 지금 내가 느끼는 세상은
미국에 있는 개미 똥구멍만 한 한국에 와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라 다행인 점이 있다.
결혼식은 생략했다.
우리 같은 외톨이들에겐 결혼식에 부를 친구도 없지만
그런 절차와 형식에 질겁한다.
파티 같은데 초대되면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인간들이 우리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아주 훌륭한 핑계가 우리를 도왔다.
긴 설명 필요 없이 그냥 그 한 단어면 해결되는 심플함.
진짜 다행인 건 상견례의 생략이다.
이불집 아들과 스펀지 집 딸이 만나 결혼했다.
우리 둘 다 장사꾼의 집에서 자랐지만 너무 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침구를 호텔식 올 화이트로 바꾸려 하는데
“이불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걸 써?” 하길래 나는 너무 놀랬다.
“이불집 아들은 자기 집 이불만 덮어야 해?
나 스펀지 집 딸인데 우리 집에서 만든 소파만 앉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이다.
구닥다리 상견례 같은 걸 했으면 어쨌을까 싶게 아찔하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못하게 된 코로나를 사랑한다.
그런 걸 하지 않고도
각 집안마다의 고유의 분위기를 신기해하며,
충분히 존중해 가며 결혼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건물이 헐리면서
평생 집안에 빚 한줄기 들어오지 않은 집에
햇빛이 들어오는 단편영화가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햇빛으로 인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코로나 시대, 우리 같은 외톨이들의 결혼을 생각하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언뜻 보기엔 가슴아픈 일이 일어난 건 맞지만
그 안에서는 새로운 의미들이 자라나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