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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11. 2021

코로나 아니었음 어쩔 뻔했어!

사실 코로나라 고마운 게 있어

 

“내일 닦으면 돼.”

자기 전에 이 안 닦고 자려고 갖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침대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안 나오는 아이를 보면

오은영 박사는 뭐라고 할까?

껍데기만 어른이고 속은 꼬맹이랑 산다.

저걸 못 고친다 해도 좋다.

제발 이유라도 알고 싶다.     


“이 안 닦고 자는 사람이랑 친구 하기 싫어, 말 걸지 마!”

아침부터 묵언수행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는다. 수를 내고야 말겠다!     


“내가 킹덤 쓴 김은희 작가가 아니니까 이러지?

도서관 다니는 한량이라 내 말은 안 듣는 거지?”     

남편은 킹덤의 광팬이다.

요즘 내가 미는 유행어가 저 말이다.

나는 마치 미국에 와버려서 드라마를 못 쓰는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이걸 반복하다 보니 나 스스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 자신이 맘에 안들 때마다 남편의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낸다는 거다.

그러니까 남편은 꾸준히 이를 안 닦고 자는 사람인데

그것에 화를 내는 날은 내 자신에게 화가 난 날인 것이다.

이걸 알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거다.


종종 생각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벌써 한국으로 갔을 거라고...

분노조절에 서툰 나는 화가 나면 일단 빛의 속도로 도망을 간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게 진심인가에 대한 통과의례가 생겼다.

코로나 검사 결과지를 가져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충동적 입국은 불가다.

그 시스템이 우리의 안전장치가 됐다.     


사실 이민 온 날 , 그날은 내 인생에서 특별했기에

남편이 미리 나와서 꽃다발 들고 기다릴 줄 알았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는 너무 일찍 도착했고

나는 짐을 들고 그를 기다려야 했다.

지나고 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그 순간만큼은 요상하게도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 꼬라지가 왠지 우리의 앞날을 상징하는 거 같아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짐을 내팽겨 치고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택시처럼 아무거나 잡아타고 가면 될 것 같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친구들이 놀리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왔네?”라고

 우리 아빠만큼은 날 응원할 것 같았다.


그런데 코로나라서 출발하는 비행기도 없었고

있다 해도 코로나 검사 확인증이 필요했다.

텅 빈 출국장 앞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가 달려오면서 슬라이딩으로 무릎을 꿇는데

바닥이 얼음판인 줄 알았다. 어쩜 그렇게 부드러워? 바로 남편이었다.

세상에 이런 걸 잘하네? 그 장면이 진심으로 웃겨서 울다가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런 소동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   

  

서로가 발견해주지 않으면

평생 드러날 일 조차 없는 찌질함을 마주할 때

결혼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남편은 수틀리면 확 저지르는 분노 조절장애 인간이랑 사는 요령을

조금 터득한 것 같다.

     

미국이라고 해서 더 넓은 세상에 던져질 줄 알았다.

여름이면 열리는 포틀랜드의 다양한 축제 중에

누드 자전거 대회는 꼭 가보고 싶었다.

팬데믹으로 손발이 묶여버린 지금 내가 느끼는 세상은

미국에 있는 개미 똥구멍만 한 한국에 와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라 다행인 점이 있다.   

  

결혼식은 생략했다.

우리 같은 외톨이들에겐 결혼식에 부를 친구도 없지만

그런 절차와 형식에 질겁한다.

파티 같은데 초대되면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인간들이 우리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아주 훌륭한 핑계가 우리를 도왔다.

긴 설명 필요 없이 그냥 그 한 단어면 해결되는 심플함.     


진짜 다행인 건 상견례의 생략이다.

이불집 아들과 스펀지 집 딸이 만나 결혼했다.

우리 둘 다 장사꾼의 집에서 자랐지만 너무 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침구를 호텔식 올 화이트로 바꾸려 하는데

“이불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걸 써?” 하길래 나는 너무 놀랬다.

“이불집 아들은 자기 집 이불만 덮어야 해?

나 스펀지 집 딸인데 우리 집에서 만든 소파만 앉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투성이다.

구닥다리 상견례 같은 걸 했으면 어쨌을까 싶게 아찔하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못하게 된 코로나를 사랑한다.

그런 걸 하지 않고도

각 집안마다의 고유의 분위기를 신기해하며,

충분히 존중해 가며 결혼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건물이 헐리면서

평생 집안에 빚 한줄기 들어오지 않은 집에

햇빛이 들어오는 단편영화가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햇빛으로 인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코로나 시대, 우리 같은 외톨이들의 결혼을 생각하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언뜻 보기엔 가슴아픈 일이 일어난 건 맞지만

그 안에서는 새로운 의미들이 자라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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