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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12. 2021

당신의 독립기념일은 언제 인가요?

솔로운전의 기쁨

“현진의 독립기념일은 언제야?”

남편은 유튜브를 보다가 뜬금없는 질문을 종종 한다.

자기 계발 비스무리한 영상 같은데

포인트는 모두가 돈 버는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의 독립기념일을 생각하며 그 시점을 정하라는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은퇴가 그들이 말하는 독립기념일이었다.   

  

나에겐 독립이란 조금 다른 의미다.

은퇴가 아니라 자립!

사실 얼마 전에 그걸 느낀 요상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좀 겉멋을 부리고 싶어서

“내 독립기념일은 내 돈으로 테슬라 차 사는 날이야.”

라고  얼떨결에 말해버렸다.     


얼마 전, 사촌동생 집을 나오자마자 남편이 사라졌다.

그리곤 우엑하는 소리가 났고 주변은 고요해졌다.

한국이었으면 대리기사를 불렀을 텐데

술 먹고 토한 남편을 옆에 태우고

종종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안개 가득한 기묘한 새벽이었다.      

‘내 남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내 사람의 안전을 내가 책임지는 기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평소 옆에서 운전 훈수를 두는 남편이 자고 있는데

신기한 평온함이 감돌았다.

생각지 못한 솔로운전이었는데

그 순간 ‘독립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이면 니가 사고 싶은 차 몇 대는 샀겠어.”

여행으로 탕진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한 마디씩 했다.

“메인작가가 되니까 차 없으니 좀 그렇더라고.”

각자 차를 사는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다.

“회사에 운전면허증을 내야지 기름 값을 지원해줘.”

차를 사지 않아도 면허를 따는 친구도 있었다.     

“운전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려.”

그런 말들에도 전혀 차를 사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나는 뚜벅이 택시 중독으로 살았다.

걸을 수 있을 땐 걷고 나머지는 택시를 타는 생활이 편했다.

그런 장롱면허가 미국에 와서 운전을 하게 됐다.

아니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로 던져졌다.     


“운전은 잘해봐야 본전이다 단디 해라.”

20년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아빠에게 배운 걸로 면허를 땄다.

너무 오래돼서 액셀이랑 브레이크가 뭔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그런 내가 미국에 와서 깜빡이 넣는 거 라던지

주행선을 지키며 커브를 돈다던지 등등을

남편에게 하나씩 배워나갔다.  

   

옆집 고등학생이 운전하는 걸 보면

내가 저 나이 때부터 운전을 했으면

내 인생은 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한다.     

잠든 남편을 태우고 솔로 운전을 한

그날 이후에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참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있었다.

‘부산의 이기대 코스’

한참 투병을 할 때 그 코스를 매일 3번 돌아야 했다.

화장실에 들러 휴지를 뜯어야만 그날의 욕구가 해소되었고

그건 엄마 병세를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일과였다.

그 당시도 난 장롱면허라 운전할 생각은 안 했고

늘 뒤에 앉아 수동적으로 엄마를 간호했다.

단 한 번도 아빠나 동생의 수고를 덜어주려

내가 운전할 생각은 안 했던 거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한다는 건 삶의 근사한 추억이다.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맛이 있고

그때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있다.

‘검사할 때 아빠가 골프 치러가서 서운했지?’

‘오늘은 진짜 요양원에 들어가기 싫지? 나랑 둘이 그냥 도망갈까?’

둘이서 아빠 뒷담화도 하고

이런 장난도 치고 속 이야기들을 했을 텐데

이제야 그런 걸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그걸 내가 운전을 하게 되니까 비로소 알게 됐다.

엄마를 태우고 단둘이 드라이브 가지 못한 게 못내 후회스럽다.     


친구가 돈 때문에 차를 살까 고민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아무런 조언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솔로 운전을 한 이후로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남편이 술 먹고 뻗었을 때 데리러 갈 수도 있고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땐

드라이브 뜨루로 커피를 사서

좋아하는 음악 틀고 그냥 달리면 나아진다고’     


이딴 말 대신 나는 한마디로 축약했다.

“니가 아끼려는 돈보다 더 큰 걸 얻어. 당장 사”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확장되는 인생의 스펙트럼은 놀랍기만 하다.  

   

“와! 이제 필기시험 없이 한국 면허증이랑 교환이 가능하데!”

미국은 주마다 운전면허 취득조건이 다르다.

5월부터 오레곤주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이 사라졌다.

한국어로도 볼 수 있는 필기시험이었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절차라 생각됐다.

내가 넘어야 하는 허들이 사라진 기쁨, 너무 후련하다.

아직은 SSN이 없어서 미국 운전면허를 받지 못하지만

그것만 생기면

이제 한국 면허증을 바로 미국 면허로 바꿀 수 있다.   

  

미국 운전면허가 나오면

혼자 드라이브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이 내 진정한 독립기념일이 될 것 같다.     


포틀랜드는 도시 전체가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유화 그림처럼 아름다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상 속 드라이브가 곧 여행이다.     

물론 지금도 갈 수는 있지만

만약 경찰이 내 차를 멈추게 했을 때

남편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혼자 독립적으로 해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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