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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13. 2021

포틀랜드는 노숙자도 책을 읽는다.

포틀랜드 외톨이들

오늘은 남편이 다른 방향으로 차를 세웠다.

도서관에는 주차장이 여러 개인데 이쪽은 처음이다.

여기 풍경은 사뭇 달랐다.

유리창을 빽빽이 메운 생활의 도구들,

차박을 하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근데 요상하게 힙한 이 느낌은 뭐지?

왜 내 눈에는 이게 즐거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우린 집은 없지만 심리적으로 기댈 곳은 있답니다.’

일자리를 잃고 집은 없지만 도서관에서 책 빌려 보는 건

지속 가능한 인생들이다.

미국에 찜질방이 없는 게 조금 아쉽다.

그랬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망했다고? 그럼 우리처럼 새롭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아’라고 내게 일러주는 것 같았다.

모두가 누구나 언제든 저럴 수 있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코로나 난리 통에 미국의 부채는 사상 최고로 늘고 있다.

계속 달러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막고 있다.

책리뷰 블로그에서 읽은 프론티어 개념이 피부로 와닿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변경(프론티어)을 향해 끊임없이

무자비한 정복을 하면서 미국을 팽창시킨다는 개념이다.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싸우지 말고

필요하면 프론티어로 가서 원주민에게 땅을 빼앗고

새로운 자원을 착취하면 모든 것은 해결되는

양아치 논리를 가지고 미국은 성장했다.

난 그 개념을 알고 나서 원주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봤다.

“완전 양아치네?”

그런데 나는 어쩔 수 없이 미국땅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방인 처지다.

반칙인데 반칙이라 말 못하는 심정이 이런걸까?

미국이 양아치라고 해놓고도 이 방법이 아니고서야

다른 뾰족한 수가 있나 싶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미국인들은 비빌 언덕 하나씩을 더 가진 채

반칙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돈이 많이 풀려서 집값은 올라가고

실업수당 덕분에 사람들은 일을 안 하고 논다.

스타벅스고 맥도널드고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다.

여기서 아이러니 한 건

소수의 사람들은 일을 안 해도 통장은 두둑해지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기만의 행복을 느끼게 됐다는 거다.     


미디어에서는 이 빚잔치의 마지노선이 9월이라 했다.

그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이

실업수당이 끊기고 커다란 혼란이 올 거라고 했다.

이런 불안함과 불확실을 다들 얼마큼 실감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진짜 미국이 망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미국이 망하는 일이나

백인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일 같은 건

여태껏 실제 겪을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없으라는 법은 없잖아?     


IMF를 겪어 봐서 조금은 알 것 같다.

망해보지 않은 미국인은 어떨지 모르겠다.

저런 뉴스를 들을 때 남편은

‘설마 미국이 망하겠어?’라는 표정으로

늘 하던 대로 깨벗고 실컷 자고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의 태평함이 내 걱정을 비웃는 것 같다.


위기에 처하면 지원금을 팡팡 쏴주는 나라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긴장감, 치열함, 살아남기 위한 불타는 의지 같은 건 없다.

반면에 나는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살지 않으면

벌 받을 거 같은 걱정으로 종종거리며 도서관에 온다.

아무리 역병이 창궐해도 여기 앉아있을 때만큼은 마음이 평온하다.  나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온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진짜 망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계획을 세워 본다.

성냥이 그어지기 직전의 초조함,

내 몸에 불이라도 붙은듯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서울의 한강 격인 워터프런트 강,

여기도 코로나만큼 텐트촌이 무섭게 번졌다.

도서관 차박 사람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집이 없어도 손에 책이 들려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윤기가 돌았었다.


푸드트럭으로 넘쳐나던 자리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기 어려운 폐허들이 널려있다.

텐트 좀비 영화 촬영 장소를 누가 세팅해두고 간 것 같다.

이와 중에도 난 “여기야 말로 한국의 찜질방 도입이 시급하다” 생각한다.    

 

다운타운의 높은 건물을 보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지도 6개월이 됐구나 실감한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웠던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

지금은 전혀 다른 무대로 와버렸고 그 전환기에 코로나가 덮쳤다.

시차 때문에 더욱 왕래가 더뎌진 친구들의 문자.

짧은 메시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 더 멀어져 간다.

결혼을 앞둔 친구의 결혼식 고민과

미국이 망할 것 같은 나의 걱정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친구의 고민은 해결점이 있지만

내 걱정은 걱정을 할수록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신은 내게 ‘외톨이로 살아가 주시오’라는 지령을 내린 것 같다.

이 지령의 이유를 오직 임무 완수를 끝냈을 때만이

비로소 알게 되는 그런 미션.     

누군가는 배를 빌려 춤판을 벌이고

누군가는 먹을 걸 구걸하고 있다.

아무 날도 아니었는데 괜히 행복해지는 여름밤이었다.

내겐 저런 호화 요트는 없지만

아이스크림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는

양아치 미국인이 있다.


아이스크림 만끽하기

어쩌면 그게 오늘의 최선이 아닐까?

외톨이 동지인데 참 다른 외톨이다.

 웃음의 광채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다운타운을 점령한 텐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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