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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14. 2021

드라마로 뺨 맞아 본 적 있으세요?

치매가 주는 선물

     

가끔 남편이랑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난 오빠보다 먼저 죽을 거야

왠지 먼저 하늘로 가는 사람이 위너 같아 “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례식 한번 안 가본 남편은

저 말이 뭔지 모른다.

그런 주제에 우리 집에 인사하러 처음 올 때

엄마 납골당에 먼저 가야 한다며, 그런 겉멋은 부릴 줄 안다.   

  

”어릴 적부터 이쁘고 좋은 건 니 엄마가 다 했어

마지막까지 혼자 끝까지 남는 것 보다는

니 엄마처럼 이렇게 사람들 배웅 전부 다 받고 먼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니 엄마가 먼저 하는 거는 분명 좋은 거야. “   

  

장례식장에서 이모가 저 말을 하는 순간 소크라테스 같았다.

나도 동생을 바라보는 느낌이 딱 저건대,

‘좋은 건 지가 다해’

저런 철학적인 말을 할 줄 알다니

역시 우리 엄마의 언니답다 생각했다.

    

요즘 나의 최애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인데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내 하루가 엉망이 되어 버려서


어떻게 저렇게 인간들이 완벽해?

현실에 있는 척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우아한 판타지다.

저걸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소설이 쓰고 싶듯이

나도 저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혀 버리는 드라마다.

저런 드라마? 그게 뭔데?     


이번 회차엔 ‘치매였음 어쩔 뻔했어!’ 하고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평범한 장면이 내겐 상처가 됐다.

왜 뺨 맞은 것처럼 얼얼하지?


치매가 어때서? 저 장면은 분명 내게 모욕을 줬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여러분들아, 그렇지 않나요? 나만 그랬나요?

나는 치매가 불행하기만 하고 치욕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게 싫다.     


치매에 걸린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게 아니다.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족이 치매에 걸려서 좋은 점도 있다.

치매로 인해 엄마를 잃었다기보다는

우리는 새로운 엄마를 얻었다.

엄마가 어린이가 되고 나중에는 강아지가 되는데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다.


엄마 몸속에 잠들어 있던

여러가지 에너지와 만나게 된다.

놀이터에서 잡기 놀이도 할 수 있고

엄마가 얼마나 장난꾸러기 인지도 알게 된다.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계속 생겨난다.

엄마가 내 기저귀를 갈아 줬을 때와 비슷한 각도로

기저귀를 갈아 줄 수도 있다.

씻기 싫다는 엄마를 잡으려고 레슬링을 할 수도 있다.

머리를 말리면서 바나나 우유에 집착하는 순수함 같은 걸

엄마의 얼굴에서 볼 수도 있다.

그 얼굴은 불가항력으로 사람의 억장을 뭉개뜨린다.

엉엉 우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고 싶은 순간마다 요리조리 피해 가는 꿀 팁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떼쓰는 엄마를 볼 수도 있다.

겉옷 입기 싫다고 기어코 어깨에 걸쳐놓는 카디건이

날 웃기기도 한다.

요양원을 탈출해서 혼자 택시를 타고

우리 집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기적을 겪을 수도 있다.

비밀번호 같은 거 다 잊은 사람이 어떻게?

기적인가? 아니면 엄마가 우리를 가지고 놀았던 거 아닐까?

엄마에게 초능력이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도 갖게 된다.  

   

막연했던 한가지 생각이 격렬하게 명확해 진다.

엄마가 많은 걸 잊어도

딸이 작가였다는 건 기억할 때

죽을 때까지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 진다.


어떤 병마가 사람을 망가뜨려도

유머감각은 손대지 않아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엄마가 후원하는 들꽃마을 아이들을

내가 후원하게 되어 부담스러운 일을 무리하게 해 나갈 수도 있다.


길에 걸어다니는 보통의 아줌마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고 우는 아빠를 볼 수도 있다.

아무리 아빠가 난리를 부려도

엄마가 받는 관심과 애정은 따라갈 수 없다.

뭘하든 엄마가 무조건 주인공이다.

더이상 엄마를 응원하지 않아도

영원히 아빠를 이긴  같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겪지 못할 이 모든 일이

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 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그냥 감동만 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내 뺨을 때리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뺨 때리는 드라마를 어서 빨리 쓰고 싶다는 마음이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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