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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16. 2021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들

트위터에서 '결혼하기 전에 상대에게 체크해야 할 리스트'라는 피드가 유행이다.

언행일치, 건강관리, 갈등 해결 등     

서로 조언해주고 난리가 났다.

코웃음이 났다.

예전에 내가 딱 저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그걸 미리 체크해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란 걸 해보니

저런 리스트 같은 건 다 소용없고

변하지 않는 건 ‘유년시절 들었던 플레이리스트’ 정도인 것 같다.

그거 빼곤 조금씩 어떤 방식으로든 변하게 된다.

나는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어두는 걸 못 참는다.

물을 내릴 때 변기 뚜껑을 무조건 닫아야 한다.

안 그러면 변기 안 세균이 온 집안으로 튀는 게 상상돼서 아무것도 못한다.

그랬던 인간이 그딴 거 상관없는 인간이랑 살게 되니 조금씩 무뎌진다.

좋은 거, 싫은 거, 모든 게 확 달라진다기보다는 미세한 결이 달라진다.      


그런데 음악은 아니다.

그 시절 좋아했던 음악은 마음에 각인이 되어

버린다. 새겨져 버리니까 우리는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이 33살이 넘으면 새로운 음악을 듣기보다는

기존에 들어왔던 음악을 가지고 평생 살아간다고 했다.

진짜 그런 것 같다.

남편에게 아무리 좋은 ‘잔나비’라든지 ‘빌리어코스티’

‘악동뮤지션’을 들려줘도 소용이 없다.

A.I 가 취향에 맞게 자동으로 선곡해 주는 서비스가 전혀 안 먹히는 인간이다.    

  

남편은 자기가 결혼할 사람의 조건으로

‘나이가 비슷했으면 좋겠다’ 정도였다고 했다.

그 이유가 젝키 음악을 같이 듣기 위해서 라고 했다.

“뭐? 젝키?”

젝키는 그 시절 내 베프가 온몸으로 좋아했던 가수다.

나는 딱히 hot를 좋아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쪽 파로 몸담게 됐다.

그런데 그가 강성훈의 팬이라는 말엔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다가도 도통 취향을 알 수가 없었다.


젝스키스는 자기가 닮고 싶은 아티스트,

폼생폼사와 같은 세계관이 다 들어있었다.

 

그는 젝키 노래를 같이 들을 수 있는 여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걸 자주 들을 순 없었다.

둘 다 유튜브 중독이라 그런 걸 보기에 바빴고

겨우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구간이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유년시절 주크박스를 틀곤 했다.

그걸 듣고 있으면 정말 그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찌찔하지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그 시절,

각자 다른 곳에 있었지만 젝키 CD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우리였다.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겨울날

브라운 아이드 소울 노래가 나왔고 그날 두 눈을 의심케 할 노루 떼를 만났다.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제 우리는 그 기묘한 노루 떼 이야기를 한다.    

 

캐나다 밴쿠버 국경을 넘는 톨게이트였다.

토이 노래가 나와서 우리는 흥분했고

노래 듣다가 엉뚱한 입구로 들어갔다.

국경 불문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노래가 토이다.

토이를 들으면 나는 구질구질한 바보가 된다.     


우물쭈물하다가 방문객이 아닌 통근자 구멍으로 들어갔다.

초행이라 난 아무것도 몰랐고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들은 여권을 가져갔고 우리 차를 압수 수색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영문을 모르겠는 사람들 무리가 초조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남편도 처음 겪어본다. 그 와중에도

“넌 그냥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

라며 겉멋을 부리며 장난을 쳤다.


갑자기 억울하게 마약 밀매단으로 몰리게 되면서

해외 옥살이를 하는 무시무시한 영화도 생각났다.

순간 차 안에 가루 같은 건 없는지 걱정이 됐다.

얼굴 세안제 가루가 있는데 그게 문제 되면 어쩌지?

시나리오 작법에는 주인공이 꼭 한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겨야만 하는데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이게 바로 내 인생에서 맞닥뜨린 최고의 두려움이었다.

내가 초조해 하자 남편은 에어 팟으로 노래를 들려줬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폐부로 쳐들어 오는 멜로디

순간,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귀동냥으로 들은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독재자 같은 리더를 원한다고 했다.

백인들은 불안했고 트럼프가 필요했다.

그 불안을 이민자 같은 소수집단을 향한 차별이나 비난을 하며

잠재우려 한다 했다.

그런 똥 리더십 말고는 대안이 없는 건가?


이 사람들아, 난 불안할 때마다 토이를 들어.

그 시절 나의 리더는 토이였다.

불안했던 시절 이 노래를 듣고 통과했으니

헤쳐나가는 감각이 노래에 묻어 있다고 해야 할까?     

나 자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누가 말해주기보다는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냥 용기 같은 게 나와 버렸던 것 같다.     


작가 아론 소킨도 글 쓰다가 막히면

유년시절 좋아했던 노래를 들으라고 했다.

실제 그 노래와 어울릴 장면을 쓰고 요리조리 붙여보라 했다.

그가 좋아했던 곡이 뭐였는지 궁금하다.

특히 <머니볼>을 쓸 때 막히는 순간 어떤 음악을 틀었는지..     

아마 <소셜 네트워크>를 썼을 때와는 조금 다르겠지?


‘유년시절 플레이 리스트’는 은근히 실용적이다.

생각보다 꽤 많은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에게 자꾸

새로운 곡을 들이댄다.

윤종신의 <처음 만날때처럼>과 잔나비 버전을

비교해서 들어보라면서 졸졸 따라 다니며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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