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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20. 2021

절대 남편의 개수작에 놀아나선 안돼!

오뚝이 증후군


도서관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집에 남편의 사촌동생이 놀러 왔다고 했다.

나는 집 대신 스타벅스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혼자 있는 걸 원했기에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혼자이고 싶을 때 혼자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지상 최고의 행복이다.     


내가 어디까지 혼자되어 본 적이 있냐면

고기 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 먹는 걸로 사람들이 놀라는데

사실 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건

‘라식수술 혼자 하러 간 인간’ 같다.


가는 내내 스타벅스로 도망가는 내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너 이래 가지고 진짜 일은 어떻게 한 거야?’

이런 인간이 자기가 일하던 필드가 그립다며

미국 와서 커리어가 끊겨서 슬프다는 인간 맞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한테 짜증이 나는 날이 있다.

바라는 게 더럽게 많다.


‘혼자 있고 싶은데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은 하고 싶어’

이 요상한 감정이 날 힘들게 했다.

나 자신에게 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무기력의 본질이

바로 이거였다.

나는 이걸 오뚝이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아무 데나 갖다 놔도 번쩍하고 다시 일어나는데

짧은 시간 너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어떤 날은 꿈쩍 않고 웅크린다.

배우자 따라 거주지를 옮긴 이방인 모두가

이런 무기력을 앓고 있겠지?     

   

나는 뼛속까지 내향형 인간이다. 이걸 여기 와서 알게 됐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고 외톨이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다.

집에 있는 데도 집에 가고 싶은 인간이 딱 나다.

그런 걸 떠올려 보니 남편을 만나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

내 잠재의식 속엔 정말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욕망이 컸던 것 같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는 내가 따돌리고 싶은 세계로부터

도망친 것일 수도 있다.

그 대가로 인생의 일부를 잃었다. 전부를 잃은 건 아니다.   

  

내 의식은 내가 원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의식은 아닌 것 같다.

종종 꿈을 꾸는데 항상 일하는 꿈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큰 프로젝트를 버겁게 맡아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헤매다가 끝나는 꿈.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욕심을 부리다 끝나 버린다.

지지고 볶고 서로의 아이디어가 뒤엉켜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던

현장이 그리운 것 같다.


롤러코스터가 싫다 했잖아?

그런데 회전목마만 타고 있자니 미친 듯이 그립다.   

어쨌든 나는 롤러코스터와 회전목마 둘 다 타고 싶은 인간이다.

그 결합이 가능한지 나 혼자만의 실험에 들어간다.

‘넌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질 거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내가 궁금하다.

나만의 답을 찾는 프로젝트를 매일 도서관을 오가며 하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각각이 하는 말을 다 들어줘 보려 한다.     


결혼이 출산이 그 무엇이 내 커리어를 막는 건 싫다.

지금 내 커리어를 막는 건 한계에 무릎 꿇는 내 자신이다.

내가 만들어낸 종합소득의 숫자는 섹시하다.

안영미는 미국에 남편을 두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신보라는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와 결혼생활을 한다.

나는 신보라가 되었다가 안영미가 될 수도 있다.     


남편은 내가 왜 커리어 고민을 하는지 자체를 이해 못한다.

그냥 내가 가진 시간에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내란다.

진짜 한번 그래 볼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안 되는 인간이다.

그거 너무 재미없지 않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글 쓰는데?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넌 하루키도 아니고 글을 안 써도 살아갈 수 있잖아?'

진짜 나 자신아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만든 결과물의 피드백을 받고 그 감촉을 느끼고 싶다.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 난 그것에 굶주렸다.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실감하고 싶다.

나는 그게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이다.

이 선천적 애정결핍은 신이 내린 '둘째의 저주'이다.

‘다음 생엔 막내로 태어나고 싶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둘째로 태어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어떤 말을 해도 들어주는 첫째와 막내를 동경하며 살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첫째와 막내를 이길 수 없다는 것에 굴복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둘째라서 이모양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주기는 싫다.

선천적 애정결핍이 축복인 걸 증명하고 싶다.

그 마음 때문에 나는 이렇게 동동 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와 다르게 둘째의 그늘 따윈 없이

항상 해맑은 남편을 보면 짜증이 난다.   

   

남편이 방으로 쪼르르 들어와 인공지능 로봇에게 말을 건다.

엉덩이를 조명 쪽으로 쭉 내밀더니

“알렉사~턴 온 더 라이트(불 켜).”

마치 엉덩이로 쏘아 올린 발사 로켓이

불이 켜지는 것처럼 쇼를 한다.

그 순간 너무 웃겨서 머리가 리셋됐다.

싸이 노래 ‘난 그대의 연예인’이 생각났다.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지 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능력이다.

이 최선을 다하는 엉덩이가 날 꿈꾸게 한다.     


자기 전에 양치 안 하고 자는 인간!

내가 저런 인간이랑도 사는데 못할게 뭐야? 싶다가도

이런 인간이랑 살아서 다행이다 싶다.

남편을 갈아치워도 커리어는 유지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다.

자기 전에 양치하고 자는 인간은 많아도

이런 식으로 날 웃기는 인간은 지구 상에 단 하나다.

그의 엉덩이는 대체 불가라

어지간해서는 갈아치우기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수작에 놀아나선 안 된다.

기댈 곳은 오직 내 등뼈뿐이라 했던가?

운동 가자고 날 재촉하며 오뚝이는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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