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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23. 2021

내안의 괴물을 본 유일한 목격자

살풀이의 톤앤매너

 

누구나 자신의 밑바닥엔 한강의 괴물 같은 게 잠복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이라는 걸 하면 이 괴물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갑자기 튀어나와 휘몰아쳤고

남편은 내 안의 괴물을 본 유일한 목격자였다.     


며칠 전 남편은 구강 전문병원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철심 두 개를 잇몸에 박았다.

보통 치과에서 거부할 정도로 큰 수술이었다.

담배 때문에 일 년 동안 미뤄진 임플란트 수술이었다.

이쯤 되면 보통의 인간이라면 담배를 끊지 않나?

그는 맹구가 되더라도 담배의 노예로 살았다.    

 

어릴 때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가장 중요한 앞니 치아 두 개를 잃게 됐고

그 뒤로는 평생 자전거만 봐도 머리가 얼얼해지는 어른이 되었다.


제발 임플란트가 자리 잡는 동안만이라도

담배를 끊자고 어린애 타이르듯 사정했다.

그런데, 수술 다음날 테라스에서 담배를 명랑하게 피우고 있는 걸

본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이 되돌이표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더 이상 이 꼴을 못 보겠다는 선언이 필요했다.     

테라스에 있는 담배꽁초가 들어있는 생수병을 차에 던졌다.

테이블을 던져서 유리가 깨지는 바람에 손에서 피가 났다.

이걸로 살이 다 풀어지지 않았다.

이 앙금을 다 털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안으로 들어가 집어던질 걸 탐색했다.

식탁 위에 올려진 비타민 따위 뭉치들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비타민은 최적의 도구였다.

유리처럼 깨지지도 않고 소리는 크고 유난스럽다.

여기서 손목의 각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멀리 던지는 것보다

바닥에 튕겨지는 강도가

내 분노의 크기를 보여준다.


갑자기 내 앞에 다람쥐 한마리가 잽싸게 움직인다.

내가 던져서 어지럽히는 속도와

남편이 잽싸게 치우는 속도의 일치감 때문에 웃음이 날 뻔했다.

독보적인 스피드였다.

숨겨왔던 수줍은 실력이 드러났다.  

이게 바로 중학교 테니스 선수시절 다져진 순발력인가?


여기서 꿀 팁 하나를 정리해 두자면

절대 상대의 눈을 봐선 안 된다.

눈을 보면 마음이 풀어지기 때문에

시선처리가 중요하다.     

 

던지는 살풀이

이 톤 앤 매너를 잃고 싶지 않았다.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들고 다시 테라스로 나갔다.

반성 의자가 반성을 하게 하듯이

그 의자가 담배를 피우게 했다.

계란을 던져 그 꼴 보기 싫은 의자를 망가뜨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계란이 3개뿐이라 신중하게 던져야 했다.     


이 살풀이가 끝나고 난 후

그가 겪었을 고통이 조금 짐작이 되었다.

그 철심을 박고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 내내

자전거 타고 넘어진 그때의 아픔이 기억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피워서 그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 부분에 대해 다른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담배를 피우면 부작용이 나서

그 철심을 다시 빼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나는 그 점 때문에 정말 남편을 때릴 뻔했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패악질을 부렸는지 생각해 봤다.

'그래, 맹구로 살고 틀니로 살고 다시 재수술하고 그러면 되지

내가 괴물이 되지는 말자'

나는 이게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인지 생각해 봤더니 이유는 엄마였다.

엄마는 뇌질환 판정을 받고 대대적인 임플란트 공사도 같이 했었다.

그 수술 일정은 보통사람이 받기에도 길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엄마는 새로 한 치아를 써보지도 못하고 하늘로 갔다.

그걸 생각하면, 이렇게 갈 줄 알았다면

그 힘든 치과 치료 안 시켰을 텐데..

그 치과치료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의 허망함과

가슴에서 났던 천불, 그 감정이 남편에게 투영됐던 거다.      


결혼은 어른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상처 받고 깨진 소년소녀가 만나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모르고 넘어갔을 모든 상처의 이름을,  

그리고 그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상대를 통해 나 자신을 재발견 하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해볼 가치가 있고

가성비 높은 자아 성찰 도구인 것 같다.

    

뭔가를 집어던지면서 화를 내본 건 처음이라 했더니

남편은 이렇게 까지 화를 참아본 건 처음이라 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처음을 경험했다.

내가 이성을 잃고 뭔가를 집어던졌을 때

남편이 같이 싸웠다면 어땠을까 싶다.

경찰차가 오고 막 그랬겠지? 장르는 하드코어.

나의 살풀이는 결국 시트콤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내 안의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

자기 안의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방어했던 것 같다.   

  

같은 방법은 싫다.

또 내 안의 괴물이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

만약을 대비해서 더 크리에이티브한 소동을 연구해야겠다.

비염에 임플란트 수술에

와이프의 살풀이에 항생제와 진통제까지

오늘 많은 게 힘들었을 텐데

남편이  고는 소리의 리듬은 여전히 경쾌하다.

‘오늘 내 인생에서 이런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따위의 티는 내지 않는다.

반면에 나란 인간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일러바쳐야 직성이 풀릴  같다.


내 인생은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 같고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나

곰곰히 생각해보려 했으나,

  고는 소리가 웃기고 태평해서

그런생각은 다 잊고 그저

이 인간보다 더 명랑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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