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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29. 2021

낄끼빠빠 개인플레이 타이밍을 아는 인간

잠재적 매력이 반짝 튀어나오는 순간

결혼하고 첫 여행을 떠났다.

샌프란을 가야만 했던 건

코로나가 터지긴 전 예약하고 결제해 두었던 것들을

한 번쯤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억지 여행이었지만

거기서 나는 요상한 계기로 인생의 사명을 알게 됐다.     


이걸 절대 신혼여행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내 신혼여행의 로망은 유럽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 프리퀄 정도 될 것 같다.

포틀랜드에서 샌프란까지는 차로 10시간이 걸린다.

말 만들어도 토가 나온다.

LA까지 20시간 운전해서도 다니던 남편은

이건 별거 아니라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인에게 이 시간은 너무 아깝다.

‘왜 길에서 소중한 시간을 써?’

도저히 이런 개고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편이 다운받아둔 가요 만곡을 랜덤으로 틀었다.

올드한 노래 듣는다고 앞에서 욕하던 나였다.

그거 들으면서 노래 좀 불렀더니 9시간이 됐다.

다음 곡이 뭐가 나올까 설레고 궁금했다.

고립된 외톨이 생활 한지 언 6개월.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데

노래만 한 도구가 없는 것 같다.

멜로디 위에 실어 나오는 마음의 똥!

그런 시간이 내게 필요했던 거다.      

혼자서 9시간을 운전한 후 그 재미에 푹 빠져 들었다.

이걸 자동차 노래방이라 해야 하나?

노래방인데 풍경과 공기가 달라져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레곤주와 캘리포니아주를 넘던 경계선에서의 짜릿함,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 주는 고요한 긴장감,

노래에 묻은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감각을 만끽하며

그렇게 나는 장거리 운전 추종자가 되었다.     


호텔 체크인 후 방에 짐을 풀려고 하는데

남편이 방을 바꿔야 한다고 잠깐만 기다리라 했다.

혼자였다면 고민 없이 바로 짐 풀고 씻었을 거다.

나는 9시간 운전해서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씻고 누울 수 있는 곳이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남편은 어지간하면 내 의견에 동의하는 편인데

이번엔 적극적으로 고집을 부렸다.

“여기서 자면 내가 포인트에 공들인 의미가 없잖아”

우리는 아주 성실히 포인트를 쌓아 하야트 글로벌리스트가 됐다.

글로벌 리스트들에겐 스위트 룸이 업그레이드된다.

그런데 직원의 실수로 일반 방을 배정받았다.

“그걸 그럼 미리 체크 안 했어?

아까 키 받을 때 체크했으면 시간을 아꼈잖아.”

호캉스에 진심이지만 피곤하니까 스위트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이방에서 짐 풀고 시간을 아끼자고 했다.     


호텔 어플이 먹통이 돼서 다시 깔고

또 아이디 비번 찾는데 한나절, 직원이랑 통화하는데 한나절.

정말 내 소중한 시간이 방 바꾸는데 쓰였다.

나는 그 옆에서 시간이 아까워 동동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아주 침착하게 방을 바꾸고 새방으로 날 안내했다.     

스위트의 장점은 널찍한 거실보다도 화장실이 두 개 인 점이다.

더 이상 모닝 똥을 위해 1층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모닝 똥을 위한 최고의 쾌적한 환경이며

나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는 느낌이 좋았다.

‘방 안 바꿨으면 어쨌을 뻔했어!’

시간을 아끼려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이건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리되었다.

한 시간을 허비했지만 어마어마한 의미를 얻었다.

앞으로도 여행만큼은 스위트룸으로 준비해

나 자신을 보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샌프란에 와본 경험이 있어

이쪽저쪽 날 데리고 다니면서 가이드 놀이를 했다.

정작 내가 관심이 있는 건 공원과 책방, 커피나 그릇

현지인들이 노는 곳인데

보통 관광객들이 몰리는 랜드마크에 자꾸 데려가서 좀 짜증이 났다.     


샌프란엔 차이나타운이 유명한데 중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 눈엔

그냥 중국 그 자체였다. 중국이 정말 거기 있었다.

역사 덕후인 남편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금문교 건설 때 대규모의 중국 노동자들이 투입되었기에

그 바로 옆에 차이나 타운이 생겼다고 한다.

청나라가 2차 아편전쟁에 패배해

승전국 미국이 중국 노동자들을 보내라 요구했다고 한다.

이런 노동자들을 쿨리하고 부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금문교 건설에 투입되었고 희생되기도 한 슬픈 역사가 있다고 했다.

나는 금문교 자체의 미감이나 사진 찍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걸 듣고 나니 금문교가 달라 보였다.     

돈 벌로 타국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이방인들의

쓸쓸함이 안개처럼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난 그냥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온것 뿐인데

남편이 말하길 예전 골드러시때 처음으로

샌프란에서 리바이스501청바지가 탄생했다고 했다.

금캐던 광부들에겐 튼튼한 바지가 필요했다.

그 청바지가 상징하는 자유, 독립, 서부의 개척정신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자꾸 내 여행에 개입해 설명을 더해주는 남편때문에

더 많은 것이 눈이 들어왔다.


샌프란의 첫인상은 브로콜리를 닮은 나무들이

건물들과 어울어져 신기했다.

“나중에 부자 되면 우리 이 나무 왕창 사자.”

건물을 사고 싶은 적은 있어도 나무를 사고 싶은 건 처음이었다.

“저거 포틀랜드에선 저렇게 안 자랄 걸?”

정말 여기에서만 뿜어낼 수 있는 자태였다.

샌프란의 바람 공기 햇빛이 만들어낸 독보적인 나무의 매력에

매료되고야 말았다.

오르락내리락 운전하기 더러운 이 길이 나는 그저 좋았다.

이 나무들이 주는 요상한 에너지에 매료되었다.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다녔다.

혼자가 편했고 편리했다.

누구에게 의견을 물을 일도 동의를 구할 일도 없었다.

끌리는 책방에 갔다가 너무 좋으면 거기 하루 종일 처박혀 있고

어제 갔던 공원이 좋으면 다시 또 찾아가는 바보 같은 여행을 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여행을 하는 것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의 시선밖에 가질 수 없었다.

이번 신혼여행 프리퀄에서 확실히 느낀 건

두 개의 시선이 여행하고 있다는 거다.

두 개의 인생이 만나 케미가 파바박하고 터지는 게 바로 여행인 것 같다.     


남편도 사촌이나 친구들이랑 여행했던 샌프란과

나와 여행하는 샌프란은 너무도 다르다고 했다.

나의 세계와 남편의 세계가 만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여행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나 혼자였다면 관심조차 안 두었을 건물들에 대해

남편이 설명을 시작했다.

“샌프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뭔 줄 알아?

세일즈포스라고 20년밖에 안 된 회사야”     

고객 관리를 대행해 주는 업체로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만족시키고

잠재고객을 찾는 게 주 업무였다.     


그 설명을 듣고 있는데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더 많은 여행지를 확보하고 서로를 만족시키고

잠재적 매력을 찾는 게 우리의 주요 업무가 아닐까 싶었다.  

참 요상한 순간에 알게 된 인생의 사명이다.

이걸 느끼라고 여행의 신이 우리를 여기로 보낸 것 같다.    

   

잠재력 매력?

일상에선 꽁꽁 숨겨져 있다가 여행에서 반짝 튀어나오는 무언가 들이 있다.

방을 바꾸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미리 다 공부해서 직원과 대화하는 젠틀함

영화 속에 나온 장면을 미리 찾아 놓고 똑같은 장소와 비교해서 보여주는 자상함  

그릇에 미친 와이프가 그릇 구경할 때 낄끼빠빠 혼자 알아서 놀 줄 아는 개인 플레이어

여행 왔다고 겉멋 부리다가 구두 신고 산에 가서 발등이 다 까지는 귀여움     


이런 잠재적 매력을 한꺼번에 말고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어쩌면 배경을 바꿔가며 서로라는 세계를 여행하는 재미가

결혼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PxhUy7EdC6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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